[너섬情談] 올림픽 경기, 인간 최고의 발명
우여곡절 끝에 도쿄올림픽이 열렸다. 틈틈이 선수들 경기를 보면서 주말을 보냈다. 역사상 최초의 무관중 올림픽이다. 응원도, 함성도 없기에 기합을 내질러 스스로 용기를 불어넣는 양궁 전사 김제덕의 선전이 인상적이다.
올림픽 메달 획득보다 국내 예선 통과가 더 힘들다는 양궁 선발전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감동을 준다. 이전의 기록도, 학벌도, 경력도 무시하고 그 순간의 기록을 통해서만 선수를 선발하는 것은 경기 정신의 구현이자, 정의와 공정의 상징이다. 양궁 대표팀이 매번 선전할 수 있는 이유도, 이를 보는 시민들이 기꺼워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경기를 고대 그리스어로 아곤(Agon)이라 한다. 인류학자 로제 카유와의 ‘놀이와 인간’(문예출판사)에 따르면 아곤은 속도, 힘, 기억력 등 인간 자질의 우월을 놓고 기량을 겨루는 경쟁 형태의 놀이다. 아곤의 승자는 그 자질에서 ‘최고의 인간’이라는 영예를 얻는다. 아곤은 현실 권력이 뒤집히는 쾌감을 준다. 지위가 높거나 혈통이 좋거나 돈이 많아도 엄청난 노력 없이 아곤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이것이 아곤, 즉 경기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경기는 현실의 위계나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 시공간에서, 극도로 단련된 기량 없이 충족할 수 없는 규칙에 따라, 그 과정과 결과가 미리 정해지지 않은 채 수행된다. 현실 권력이 개입하는 위반 행위는 경기 자체를 파괴한다. 그래서 모든 경기 단체는 승부 조작, 약물 복용 등 규칙 파괴자에게 출전 정지, 자격 박탈 같은 강도 높은 처벌을 가한다. 올림픽 종목은 더 엄격하다. 수영 종목에서 전신 수영복 착용 등 기술 도핑을 금지한 것은 놀라울 뿐이다. 자본과 기술의 격차가 경기에 영향을 못 미치게 하고 순수한 인간 자질만 겨루게 함으로써 이들이 아곤의 원리를 수호한 것에 큰 박수를 보낼 만하다.
경기의 기본 원칙이 공정히 지켜질 때만 참여자들은 타고난 자질을 한계까지 끌어올린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더 강하게, 더 힘차게, 더 멋있게, 더 정확하게, 더 끈질기게…. 경기를 통해 선수는 자기 역량의 끝자리를 확인하는 기쁨을, 관중은 최선을 다하면 인간이 무엇을,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경기는 우리에게 자기 한계가 확장되는 듯한 숭고한 기쁨을 줌으로써 인간 존재를 찬양하게 만든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인간이야말로 얼마나 걸작인가!” 이것이 경기의 두 번째 특징이다.
아곤에서 파생된 말인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는 이를 잘 보여 준다. 고대 희랍의 올림픽에선 연극, 시가, 변론술 등도 겨루었다. 프로타고니스트는 연극의 주역을 뜻한다. 프로토(proto, 맨 앞의)와 아곤을 합친 말에, 접미사 이스트(ist, 사람)가 붙어서 이루어졌다. 아곤의 주인공은 맨 앞에서 싸우는 사람 또는 싸워 이겨서 맨 앞에 선 사람이다. 인간 걸작, 즉 주인공은 저절로 될 수 없다.
경기에서 이길 만큼 자신을 단련하려면 극도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괴로움을 견뎌야 한다. 아곤의 파생어 중 하나가 아고니아(agonia, 고통)다. 월계관의 주인공은 고통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월계관을 쓰려면 누구나 경쟁자를 모두 무찌를 만큼 단단해질 때까지 자신을 이겨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아곤에 나선 이들의 임무를 한 줄로 정리했다. “인간은 극복해야 할 무엇이다.”
경기는 인간을 끝없이 향상한다. 패자는 승자의 영예를 존중한다. 그러나 돌아가자마자 그는 승자를 뛰어넘는 자신을 창조하려 애쓴다. 패자는 설욕을 위해서만 승자를 인정한다. 승자 역시 패자의 노력을 알기에 날마다 자기를 이겨간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인간은 강해지고 기록은 더 좋아진다. 경기는 인간 최고의 발명이다. 날마다 경기의 주역들을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오늘의 나는 이들처럼 어제의 나를 극복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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