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스폰서' 포토라인 세운 국가, 초상권 침해.. 1000만원 배상"

이경원 2021. 7. 2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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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질문에 대답한 것은, 비굴한 모습 안 보이려는 선택으로 보여"
과거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던 모습. 최현규 기자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고교 동창이자 그의 ‘스폰서’로 불렸던 사업가 김모씨가 과거 자신이 강제로 포토라인에 세워져 초상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공적 인물의 범위, 검찰이 수사 현황을 언론에 밝힐 수 있는 예외적 상황, 피의자 신원 특정이 공공의 이익으로 인정받는 경우 등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판사 이숙연)는 지난 23일 김씨가 대한민국 및 검찰 공무원들을 상대로 5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는 김씨에게 손해배상금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김씨를 공적 인물로 보긴 어렵고, 재범 방지나 범죄 예방을 위해 신상을 공개할 필요가 있지도 않았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당시 검찰 관계자가 언론사 기자들에게 김씨의 구속영장 집행과 관련한 구체적 경위를 알려 ‘공보준칙’을 위반했고, 김씨의 초상권이 침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판단도 제시했다.

소송의 쟁점은 수사 중 도주해 ‘검사 스폰서’ 사실을 폭로한 피의자가 검거된 뒤 포토라인에 서서 기자 질문에 답한 일을 국가의 위법행위에 따른 초상권 침해로 볼 것인지의 여부였다. 이 사건은 김씨가 물품대금 편취 사기, 회사 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2016년 4월 고소를 당한 일로부터 시작된다. 사건을 접수한 서울서부지검은 2016년 5월 김씨의 횡령 자금 일부가 김 전 부장검사에게 흘러갔을 가능성을 파악했고 대검찰청 감찰부에 비위 사실을 보고했다. 김씨는 그 이후인 2016년 6월 검찰에 출석해 김 전 부장검사와의 유착 및 금전 제공 사실을 말했다.

검찰은 2016년 8월 26일 김씨에 대해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나오지 않았고 서울서부지법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장 발부 이후 도주한 김씨는 언론에 자신과 현직 검사의 유착 관계를 제보했다. 2016년 9월 5일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언론 보도가 있었고, 김씨는 이날 원주시에서 검거돼 서울서부지법으로 호송됐다. 호송차량이 도착할 때 기자 다수가 김씨 취재를 위해 청사 출입문 부근에 대기하고 있었다.

김씨는 당시 수사관들로부터 ‘포토라인에 서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거부 의사를 보였다. 얼굴과 수갑을 가릴 물품을 요청했고 흰 수건을 제공받았다. 김씨의 팔짱을 끼고 있던 수사관들은 기자들이 김씨 주위를 둘러싸고 질문을 던질 때에는 뒤쪽으로 물러났다. 결과적으로 김씨가 호송차량에서 내리는 모습, 선 채로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는 모습이 촬영됐다. 김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들은 언론 보도 과정에서 ‘모자이크’ 처리가 됐지만, 윤곽과 이목구비가 드러나 어느 정도 김씨임을 식별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법원은 봤다.

김씨는 검찰 공무원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도되게 함으로써 초상권을 침해했으며, 따라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은 김씨가 스스로 김 전 부장검사와의 유착 관계를 언론에 폭로해 관심을 유도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2심은 “김씨가 일부 언론사에 검사들의 비위 등을 제보한 경위와 그 내용 등에 비춰 보면 스스로 언론의 관심을 받거나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1심과 다르게 판단했다.

소송을 당한 검찰 공무원들은 당시 김씨가 호송차량에서 내린 뒤 기자들의 질문에 스스로 답변했으며 그가 ‘담담하다’고 말했던 점을 거론했다. 김씨가 촬영을 거부했다고 보긴 어려우며 오히려 묵시적으로 동의한 장면이 아니냐는 반론이었다. 검찰이 흰 수건을 제공했으나 김씨가 얼굴이 아닌 수갑을 가렸었다는 점도 같은 취지의 반론으로 제기됐다. 1심은 이 점도 판단에 고려했다. 하지만 2심은 이러한 김씨의 행위를 놓고 “신체가 결박돼 자신의 힘으로는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비굴하거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과거 판단,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수사준칙’ 등을 들어 국가의 위법행위를 설명하기도 했다. 원칙적으로 ‘범죄사실’ 자체가 아닌 ‘피의자’ 개인에 관한 부분은 널리 알려야 할 공공성을 지닌다고 할 수 없고,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사업가인 김씨를 공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당시 김씨는 이미 구속영장이 집행된 상황이라서 공개 수배나 검거를 위한 신상 공개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공소제기 전 수사 사건에 대해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혐의사실 및 수사 상황을 비롯해 그 내용 일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당시의 공보준칙 규정이 위반됐다고도 판단했다. 공보준칙은 2019년 10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면서 2019년 12월 폐지됐지만, 주요 내용은 이 법무부 훈령에 그대로 포함돼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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