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도.. 남편과 저는 매일 '정직한 운동'을 합니다

장순심 2021. 7. 2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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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함께 가는 세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과 가장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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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심 기자]

 운동
ⓒ pixabay
 
남편의 하루 일과가 밥 먹고 운동하고 간식 먹고 운동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암을 이겨내고 살아 남기 위한 운동이기도 하고 일상의 삶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기도 하다. 특별하지도 격렬하지도 않다. 굳이 말한다면 '정직한 운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움직인 만큼 건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운동. 아주 천천히 걷는다. 그도 힘들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 때문인지 회복하기 위해 기를 쓰고 걸으려고 한다. 무리가 되지 않는 선을 지키고 통제하는 것이 옆에서 걷는 나의 역할이다.

무더위에 오늘도 무기를 장착하듯 복대를 둘렀다. 덥다고 복대를 풀어놓고 다닌 지 이틀 째 되던 날, 병원에서 환자에게 알려주는 동영상에서 탈장의 위험이 있으니 반드시 복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놀란 마음에 더 단단히 여미게 되었다. 불긋불긋 올라오는 땀띠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오늘도 곳곳을 걸었다. 느리지만 마음만은 전장에 나가는 사람 이상으로 비장하다. 더위는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는다. 햇볕이 내리쬐는 곳은 뜨겁다 못해 따가움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그래도 걷는다. 차가운 물병 하나, 수건 한 장, 헐렁한 티에 반바지 차림으로.

30분 정도를 걷고 30분을 쉰다. 호흡이 가쁘도록 걸었던 때가 언제였나 싶게 아득하다. 공원 내의 나무 그늘에 앉으면 시원한 바람이 분다. 흐르는 땀이 쏙 들어갈 정도는 아니어도 열기를 식힐 정도는 되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남편은 금세 미지근해진 맹물을, 나는 방금 공수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들이켠다. 원래도 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한 모금의 유혹은 있는 것 같다.

과즙이나 주스 종류도 피해야 한다고 했지만, 간절할 때 한 모금은 괜찮다고 영양사는 말했다. 정말 한 모금의 달콤한 만족을 위해 방금 짠 오렌지 주스를 세 병을 사 와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무더위지만 생각 없이 먹어 치울 만큼 애들은 어리지 않았고 오로지 남편을 위해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 짠하면서도 고마웠다.

달라진 식탁 

냉장고는 남편을 위한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사실 전부가 남편을 위한 것이다. 죽 식사를 겨우 벗어난 남편은 밥의 씹는 식감이나 소화에 아직 부담을 느낀다. 몇 번을 환자용으로 따로 지었지만, 정신이 없어 이도 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엔 밥을 통일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남편이 먹는 진 밥을 두말없이 먹는다.

반찬도 남편이 먹는 허연 음식을 먹는다. 남편이 먹는 맑고 기름기 없는 국과 남편이 먹는 심심한 장조림에, 남편이 먹는 나박김치를 먹는다. 미식가들은 오감을 동원해 먹는다지만, 우리에게 오감을 동원한 식사는 없다. 환자를 위한 식단이라 타박할 법도 한데, 건강한 식단이라며 준비하는 나를 오히려 응원해 준다.

오늘처럼 아이스커피를 마실 때 남편도 시원한 음료를 마실 수 있으면 좋겠지만, 커피숍이나 생과일 전문점이라고 쓰인 곳에서도 순수하게 과일로만 판매하기는 어려운 것 같았다. 베리류나 씨앗이 든 것은 무조건 제외한다. 그나마 편히 먹을 수 있는 과일은 수박이지만, 수박주스도 씨가 들어간 채로 갈리면 안 되니 그도 마음 편히 선택할 수는 없다. 향을 내기 위한 분말이나 시럽이 들어가는 것도 피한다. 그러니 마실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없다.

내 사정이 이러니 '가격을 좀 올려도 세심하게 배려한 생과일주스를 판매하면 안 되는 걸까' 생각만 한다. 주방에 있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반찬을 할 때면 '암 환자를 위한 반찬가게는 왜 없는 것일까? 있으면 일주일에 두세 번 배송해서라도 대놓고 사서 먹을 텐데...' 역시 생각만 한다. 나의 필요에 따라 영업 종목이나 영업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겨나지만 아직 소문을 못 들은 것을 보면 수익성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에 방송에서 자장면으로 유명한 맛집이 나왔다. 무려 6개월을 문을 닫았다 다시 열었는데도 여전히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방송 중간에 문을 닫아야 했던 사연이 나왔다. 주방장이자 사장님이 폐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6개월, 수술하고 복귀하기까지의 시간 동안 손님들은 기다려주었다고 했고, 다시 시작한 가게는 손님이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건강해졌으니 장사를 하겠구나 싶어 부러웠다. 건강해 보였지만, 수술 후 짧은 시간에 생활 현장에 복귀해서 나 홀로 주방에서 그 많은 손님들을 맞기 위해 애쓴다는 사실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주문이 비는 시간에 중간중간 빈 테이블에 털썩 앉아 쉬는 모습이 여러 번 보였고, 앉자마자 새로운 주문 때문에 바로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바쁜 마음 

6개월은 항암치료 일정이었다는 사실을 방송 다음날 병원에 다녀오고 미루어 짐작하게 되었다. 보호자로서는 첫 외래 진료 이후 두 번째로 담당 의사를 대면하는 날이었다. 의사는 그간 못 만난 것에 대한 보답을 하듯 수술의 전 과정과 이후의 치료 과정을 차근차근 말해 주었다. 수술의 결과도, 전이 여부도, 앞으로의 치료 일정도, 이후의 예상 결과까지.

혹시라도 궁금한 것을 놓칠까 싶어 두서없이 질문을 메모해서 갔는데, 의사의 말에 대부분 궁금증은 풀렸다. 그 밖의 궁금한 것들도 묻고 대답을 얻었다. 병원이나 의사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을'의 자세가 되었다. 다행히 '을'에게도 친절한 의사 선생님 덕분에 못 만날 때의 불안과 짜증이 단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남편의 항암치료는 6개월, 12회 차로 진행된다고 했다.

2주 간격으로 3~4일 정도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백신을 맞았는지 물었고, 다행히 지난 5월에 잔여백신 신청해서 1차 접종은 했고 2차 접종이 8월로 예정되어 있던 중이었다. 항암치료는 백신 접종 이후에 시작하자고 했다. 코로나 세상에서는 코로나 검사나 백신 접종은 모든 치료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퇴원 후 10일이 되던 날, 남편은 직장에 나갔다. 그것도 운동한다고 한 시간 반을 걸어서. 당연히 무리가 왔고 그날 오후의 컨디션은 꽝이었다. 정직한 운동은 걷는 방법에도 적용된다. 방법이 잘못되니 몸이 견디질 못했다. 밥을 먹는다고 다 나은 것이 아니라고 하나 마나 한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마음은 다 나은 것 같다고 하는데, 몸은 아니라고 즉답을 보내왔다.

자장면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나 남편이나 가장의 마음은 바쁘고 무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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