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한민족→타국, 영화 속 북한 접근이 달라지고 있다
1945년 해방 직후, 남과 북이 갈리고 반세기의 역사가 지나는 동안 끊임없이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쏟아졌다. 남북 관계나 통일 문제에 상상력을 가미해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한 것이다.
북한과 관계를 다룬 영화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휴머니즘으로 접근해 상황을 해석했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면서 함께 변화한 카메라의 시각으로,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군사 정권아래 있었던 1980년대까지는 반공주의를 표현하려는 목적과 지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영화들이 제작됐다.
1954년에 제작돼 한국 영화 최초로 키스신이 삽입된 영화로 알려진 '운명의 손' 은 여간첩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북한의 간첩 마가렛(윤인자 분)이 우연히 만난 고학생 영철(이향 분)을 구해준 뒤 사랑에 빠지지만, 영철이 방첩 장교란 사실을 알게 된 후 사랑과 국가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과정에서 당시의 반공 분위기를 반영했다.
이 외에도 '성벽을 뚫고'(1949), '전우'(1949), '애정산맥'(1953), '운명의 손'(1954), '죽엄의 상자'(1955) 등의 간첩영화는 반공 영화를 기반한 상징이 됐다.
1960년대 들어서 전쟁영화와 간첩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상업적인 장르로 전성기를 누렸다. '5인의 해병'(1961)으로 시작하는 1960년대 전쟁영화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을 거쳐 '빨간 마후라'(1964), '남과 북'(1965)에 이르러 인기 장르가 됐다.
반공 영화는 전쟁 신을 통해 아군과 적군의 대립을 확고히 드러내며 북한군은 예외 없이 악인으로 담았다. 국가의 뜻을 저버리는 자는 비참하게 죽이는 반면, 국가의 뜻을 제대로 소화한 인물에게는 희생정신과 영웅적 면모를 부여했다.
이 중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다. 외피는 반공 영화를 취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드라마적인 요소로 북한을 적대적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전쟁의 비극을 휴머니즘으로 녹여냈다. 이후 이만희 감독은 '7인의 여포'(1965)에서 중공군에게 겁탈 당할 위기에 처한 여포로를 인민군이 구해주는 영화에 담았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가 차기작 '군번 없는 용사'로 용공을 부추긴다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70년대는 정부의 지원 아래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울지 않으리'(1974), '태백산맥'(1975),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등을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남북을 소재로 한 영화들 속 등장인물들은 미화된 전투담의 영웅 혹은 도구로 쓰였다.
그러다 남북 영화의 분기점 역할을 한 작품은 강제규 감독이 최초로 제작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쉬리'(1999)였다. '쉬리'는 단순히 북한을 악으로 그리지 않고 첩보원 이방희(김윤진 분)에게 임무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서사를 입히며 분단국가의 비극을 강조했다. 이는 이후 북한 영화를 다룬 영화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에 들어와 분단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는 더욱 다양해지며 한국 영화를 견인해왔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 '실미도'(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웰컴 투 동막골'(2005) '의형제'(2010) '고지전'(2011) '베를린'(2013)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공조'(2017) '강철비'(2017) '공작'(2018), '강철비2:정상회담'(2019)에 이르기까지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들이 다양한 장르와 형태로 관객과 만났다.
우리나라 정서나 역사적 사건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남북 분단은 현재의 영화인들에게 여전히 필승 아이템으로 쓰이고 있으며 흥행으로 이어졌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는 각각1174만6135명, 1174만 6135명을 기록했고, '웰컴 투 동막골' '의형제'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공조' 등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다. '강철비'는 인기에 힘입어 '강철비2:정상회담'까지 내놨다.
특히 '의형제, '간첩', '베를린', '용의자', '공조', '공작' 등 남한에 투입된 북한 공작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의 흥행이 눈에 띄었다. 이념이나 문화가 달라 적으로 인식하지만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연민과 우정을 느끼는 이야기가 주 골자가 됐다. 후반부 이별을 해야하는 장면들은 분단 국가의 비극을 한 번 더 강조하는 장치가 되곤 했다.
올해도 남북 관계를 중심으로 한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고립된 남북 대사관 공관원들의 탈출 실화를 모티브로한 영화다.
영화의 시대 배경이 되는 1991년은 대한민국이 유엔(UN) 회원국에 가입하지 못했던 시기로 UN 가입을 위해 대한민국과 북한이 투표권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각자 외교 총력전을 펼친다. 내전이 있기 전, 남한과 북한은 평행을 달리는 관계로 꼼수를 쓰며 서로의 외교전에 방해공작을 펼친다.
하지만 중, 후반부 대처하던 상황에서 이념을 떠나 '오로지 생존'을 위해 손을 잡으며 이야기가 빠르게 흘러간다. 정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색을 걷어내고 인간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그리며 휴머니즘을 취한다는 방식은 이전의 우리가 봐왔던 영화들과의 자세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북한 사람들의 말에 자막을 입히고, 흔히 말하는 감동을 위한 작위적인 '신파'를 유도하지 않으며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했다. 이는 '베를린' 연출 당시 발음이 잘 안들렸다는 지적을 보완한 것이기도하지만 젊은 세대가 북한을 바라보는 달라진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류 감독은 22일 열린 영화 ‘모가디슈’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말투는 단어를 구사하는 방식이나 발음 체계들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대중문화에서 북한 말들이 많이 들렸는데 지금은 적어졌다. 다른 채널에서 여전히 볼 수 있긴하지만 희화화 된 경우가 많다"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북한을 다른 나라로 느껴서 더이상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고 북한말을 자막처리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북한을 예전 관점처럼 통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표현하려고 했다. 소말리아 모가디슈가 여행금지 국가라서 가지 못한다. 이는 북한 평양도 마찬가지"라며 "북한을 온전히 타국으로 인지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인물들을 이해하기가 빠를 것 같았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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