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곰탕 한 솥 끓인 어머니.. 아들이 찾은 해결책 [세대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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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구 기자]
▲ 곰탕 솥 옆에 있는 냄비는 라면 용. 족히 10배는 돼 보인다. 군대 짬통만 하다. |
ⓒ 이상구 |
어머니의 곰국
늦은 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곰국이다. 엊저녁 어머니는 나에게 지난 음력설에 사 냉동실에 얼려 둔 사골을 물에 담가 놓으라 하셨다. 아침나절엔 당신의 '절친 후배'와 통화하시는 걸 들었다. 어머니가 부탁하면 언제든 손을 내주시는 분이다. 그 둘이 함께 '작업' 하신 모양이다. 무더위에 대비하는 어머니의 전략이다.
주방엘 가보니 가스레인지 위엔 대형 찜솥이 놓여 있다. 군대에서나 보던 '짬통'을 연상케 할 만큼 크다. 그 안엔 기름기 싹 걷어낸 뽀얀 육수가 넘칠 듯 출렁인다. 그 양이 압도적이다. 일 도와주신 아주머니도 한 통 퍼갔을 터인데 이리도 많이 남았다. 두 식구 먹기엔 지나치게 많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저걸 먹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먹는 즐거움보단 먹을 걱정이 앞선다.
그건 어머니만의 방식이다. 이유를 물으면 늘 '그리해야 깊은 맛이 나기 때문'이라신다. 기왕 하는 거니 많이 해 두고두고 먹자고도 하신다. 깊은 맛도 좋고 영양보충도 좋지만 이젠 식구라야 어머니와 나, 달랑 둘 뿐이다. 그럴 수도 없지만 하루 세 끼씩 먹어도 이 정도면 족히 한 달 이상 먹을 양이다. 벌써부터 느끼함이 올라오는 것 같다.
그렇게 어머니의 음식스케일은 남다르다. 수술하시기 전에 담가 놓은 오이지는 아직도 반 통 넘어 남아있다. 카레 한 번 하면 대자 양파와 당근, 감자를 각각 한 개씩, 거기에 햄 한 통을 다 넣으신다. 미역국은 산후조리원에 납품해도 될 만큼 끓이신다. 수술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게 된 이후에도 그 '절친 후배'를 동원해 '거사'를 벌이시곤 한다.
그러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도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머니와 나, 둘이 먹는다고 열심히 먹지만 미처 다 비우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그럴 땐 참 많이 속상하다. 그래서 뭘 하실 때마다 그러지 마시라고 사정하고 읍소하고 짜증도 내 보았다. 물론 별무소용이었다. 앞에선 알겠다고 대답만 하시곤 돌아서면 금방 또 '사고'를 치시곤 했다.
언젠가 막내 이모에게 하소연을 했다. 이모님은 '어릴 적 못 먹고 자란 기억 때문이기도 할 것'이란 분석을 내 놓으셨다. 가난한 집 셋째 딸로 위, 아래 아들 형제들에게 치이며 구박데기로 자랐으니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못 먹었던 '한' 같은 게 있을 것이란 말씀이었다. 그 얘길 듣고 나니 그 심정이 더 이해가 됐지만 그래도 문제는 문제였다.
그 연유가 무엇이건 그건 어머니의 오랜 시간 동안 다져진 생활습관이자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건 사람마다 다 다르다. 함부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 할 문제가 아니다. 한 번 먹을 만큼만 하자는 나나, 모자라지 않게 넉넉히 하자는 어머니나 틀린 말들은 아니다. 둘 다 나름대로의 일리는 있다. 더군다나 그게 법에 어긋나는 것도 도덕을 벗어나는 주장도 아니다.
그건 또 일종의 신념이자 주관이다. 어머니는 이날 이때껏 그리 사셨다. 생전의 아버지와도 그 문제로 종종 불화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당신은 전혀 바뀌지 않으셨다. 그런 건 어머니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다. 아무리 가르치고 잔소리하고 심지어 폭력을 써도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이나 소신 따위를 쉽게 바꾸려 들지 않는다.
사람은 다 다르다
공자께선 유상지여 하우불이(唯上知與 下愚不移)라 하셨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똑똑한 사람은 교만해서, 어리석은 자는 생각이 부족해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경험칙상으론 그런 극단의 사람들만 그러지는 않는다. 사람은 거개가 그렇다. 적어도 내 주위 사람들은 100%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거기엔 나도 포함된다. 적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숱한 시도를 해 봤다. 제대로 이루어진 건 없었다. 아주 잠시 변한 듯 했다가도 이내 제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특히 그 못된 성격이나 오래된 습관 등은 뿌리가 무척 깊고 단단했다. 심리학계에서도 대체적으로 사람은 쉬 변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 가치관, 신념 그리고 주관과 습관까지. 그게 법을 어긴다거나 윤리적이지 못한 게 아니라면 마땅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과 행위가 제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함부로 그걸 고치려거나 가르치려 들면 안 된다. 선의로 시작하겠지만 갈등으로 이어지고 결국 관계는 무너지고 만다. 그건 심각한 폭력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늘 언성부터 높였다. 그걸로 한동안 집안 분위기를 가라앉히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부터 달라져 볼 생각이다. 일단 저걸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머니의 진심과 정성만 생각하며 최선을 다 해 먹는 거다. 한 방법으로만 먹으면 질릴 테니 고춧가루 풀어 육개장도 하고, 된장찌개도 끓이는 거다. 그래도 남으면 얼리면 된다. 냉동실에 얼리면 백년도 간다.
그렇게 해결 방법과 대안은 그 안에 늘 있다. 그걸 찾기보다 감정을 먼저 들이밀어 사달이 나는 거다. 감정을 죽이고 이성적으로 그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그런 연후에 차분히 대화하는 거다. 그게 서로의 '차이'에 대처하는 가장 현명한 자세다. 평화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서로의 인격과 주관과 소신을 존중해주는 최선의 길이다.
남편도 어쩌지 못했던 당신의 소신을 아들 따위가 어쩔 것이냐. 그러니 나는 내일 아침 짜증을 거두고 맛나게 곰탕 한 그릇을 비울 것이다. 정말 진국이라며 칭찬도 잊지 않을 테다. 그러면 우리의 관계는 한층 더 부드러워질 거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면 우린 놀랍도록 건강하고 비대해진 몸에 피부마저 육수처럼 뽀얗게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산수시간에 1더하기 1은 1이라 대답했다. 등굣길에서 이슬 방울 하나에 다른 이슬 방울이 더해져 좀 더 큰 이슬 방울 하나가 되는 걸 본 까닭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걸 이해 못하고 아이의 손바닥을 때린다. 그 사건을 계기로 숫자를 버리고 언어를 선택한 아이는 훗날 시인이 된다. 어른이 돼서도 앙금은 남았다. 그는 과거의 선생님께 단호히 항변한다.
'삶은 숫자가 아니라고 / 행복은 다 다르다고 / 사람은 다 달라서 존엄하다고 (박노해 <다 다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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