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집에서 냉커피 받고, 꽈배기집에서 대리 변제.. 이게 시장이지 [장터, 오늘을 사는 사람들 터전 ]

박진희 2021. 7. 2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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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산성시장에서 상인들의 따스한 마음씨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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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기자]

 〈뚝방시장〉 문화광장이 시작되는 곳부터 배수지가 있는 곳까지 제민천 뚝방에 점포가 나란히 늘어서 있음을 볼 수 있다. 공주사람들은 이를 흔히 '뚝방시장'이라 불렀는데, 이 상점들은 공주시가 노점상을 정리하기 위한 대안으로 설립한 것이라 한다. 1987년에 작성된 「제민천변 가건물 건립 관련 서류」가 남아 있는데, 위 서류에 따르면 공주시는 당시  89칸의 상점을 뚝방에  지어  노점상들에게 무상으로 분양하였다. 최근 제민천 및 시장 정비계획에 따라 뚝방시장 철거문제가 여론화되고 있으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쉽지 않은 모양이다. 뚝방시장 상가는 공주시 소유이나 그동안 권리금 형태로 여러 차례 전매가 이루어져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철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 한다.
- 산성동지(山城洞誌)에서
 공주시를 남북으로 관통하여 흐르는 도심 하천, '제민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뚝) 위에 점포들이 들어섰다. 공주시는 2014년 3월 25일~ 2017년 9월 3일, 이곳의 점포들을 철거하고 도로를 개설한다.
ⓒ 공주시
 2010년, 학생들이 자주 들렀던 분식점이 쭉 들어서 있던 먹자골목이 없어지고 '공주산성시장 문화공원'이 준공되었다.
ⓒ 공주시
 들어갈 것 다 들어간 김밥이 두 줄에 3000원이다.
ⓒ 박진희
 
얼마 전, 40년 가까이 공주산성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사장님께 다녀왔다. 공주산성시장에 문화공원이 들어서기 전까지 '먹자골목'의 터줏대감이셨는데, 공원이 조성되면서 산성시장1길로 가게를 이전해 새로이 자리를 잡고 계시다.

한 달 전쯤인가? 모처럼 공주산성시장을 찾았었다. 기름집에 볼일이 있어 가는 중이었다. 멀리서 얼핏 봐도 분식집 사장님으로는 안 보이는 인물이 떡하니 가게 앞 매대를 지키는 게 포착됐다.

'아르바이트생을 들였나?' 궁금하여 기름집 볼일이 끝나자마자 분식집으로 내달렸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늘 서 계시던 자리에서 여느 때처럼 김밥을 말고 계시고, 의문의 여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잘못 봤나?' 의심을 풀려 해도 왠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지만, 궁금한 걸 꾹 눌러 참고 주문부터 했다.

"김밥 2팩만 주세요. 6000원 드리면 되죠? 요즘 물가가 조금씩 다 올라서...."
"우리 집은 안 올랐어. 올리고 싶어도 '착한가격 모범업소'라 올릴 수도 없고."

점포 안으로 들어가 공주페이로 결제를 마치고, 사장님이 건네주시는 검은 봉투를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 김밥을 꺼내려다 봉투 안을 보고 또 보고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이상하다. 분명히 2팩만 달라고 했는데....' 몇 번을 확인해도 봉투 안에는 김밥 한 팩이 더 들어 있다. 군만두라도 먹고 가라고, 찐빵이라도 주냐고, 물으실 때 눈치챘어야 했다. 뒤늦게 사장님이 김밥을 싸며 하신 말씀을 곱씹게 됐다. 

"가끔 바쁠 때는 옆집 뻥튀기집 사장이 나 대신 김밥을 말아 줘. 그래서 오늘 김밥이 좀 잘아." 

뻥튀기집 사장님은 제민천 뚝방에서 옷가게를 했었다. 점포와 가건물이 철거될 때 분식집 옆으로 이사 와 뻥튀기를 팔기 시작했으니, 옷 장사에 뻥튀기 장사한 세월을 도합하면 시장판에서 14년을 보낸 분이다.

분식집 사장님은 뻥튀기가게 사장님이 싼 김밥 굵기가 평소만 못하다고 판단하셨던가 보다. 어쩌면 내 경우만 그랬는지 모른다. 하지만 판매대 위에 뻥튀기집 사장님이 싼 김밥이 산더미였으니, 모르긴 몰라도 다른 손님들도 주문한 김밥보다 한 팩씩을 더 받아 갔을 게 분명하다.

주문한 김밥보다 한 팩이 더 보태진 한 달 전 사연이 이러하다. 감사 인사를 드릴 겸 재차 들러, 김밥 두 팩을 시키고 나서 여쭤봤다.

"지난번에 김밥을 한 팩 더 넣으셨데요?"
"잘아도 너무 잘아서 제값 받고 팔 수가 있어야지."

남해에서 특별히 공수한 김에 질 좋은 쌀로 밥을 짓고, 다른 김밥집에서 파는 속재료는 전부 챙겨 넣은 이 댁 김밥은 두 줄에 3000원이다.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김밥이 실하든 잘든 손님들은 개의치 않았을 게다. 분식집 사장님만 계속 신경이 쓰이셨던가 보다.

또 오겠노라, 인사를 드리고 가려는데 잠시만 기다려 보란다. 옆집 카페에다 아이스커피 한 잔을 주문해 놨으니 먹든지 가지고 가든지 하라는 거다. 극구 사양해도 소용없다. 너무 고마워서 주는 거라는데, 뭐 한 게 있다고 그리 말씀하시는지... 드리고 와도 모자랄 판에 염치없이 손에 쥐어 주는 냉커피를 들고 자리를 떴다.
 
 5000원 하는 막과자를 사러 꽈배기집에 들른 할머님이 3000원 밖에 없으시다고 하니, 꽈배기집 사모님은 다음에 오셔서 줘도 돼고 잊으시면 안 주셔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 박진희
 
분식집을 나와 자주 가는 꽈배기집으로 향했다. 수십 일 전부터 사장님 대신 가게를 지키는 뉴페이스가 궁금했다. 팥도너츠를 주문하고 모바일 결제를 하려니, 통신 장애로 자꾸만 접속이 지연됐다. 한쪽으로 비켜나 차례를 미루다 보니, 본의 아니게 꽈배기집 뉴페이스와 다른 손님들을 관찰하게 됐다. 

"장사 잘 되쥬?"

근처 직장에 다닌다는 남자 손님을 시작으로 손님 대부분은 꽈배기집 영업 현황부터 체크한다. 그만큼 이물없는 사이란 얘기다. 꽈배기집이 문 연 지는 채 2년이 안 되는데, 얼마나 손님들한테 잘했는지 안 봐도 비디오다.

잠시 후 할머님 한 분이 오셔서 막과자를 가르키며 가격을 묻는다.

"저거 한 봉지에 얼마유?"
"5000원이에요."
"3000원 밖에 없는데... 다음에 와야겄네."
"3000원만 주셔요. 안 주셔도 되고요."
"그러면 안 되지. 잊어불고 못 줄 것 같어."

2000원이 부족해 그냥 돌아서는 할머님을 끌다시피 모셔왔다.

"할머님이 안 갚으시면 제가 대신 물어 드릴게요."

뉴페이스에게 대리 변제 약속을 다짐하고, 3000원에 막과자 한 봉지를 할머님께 안겨 드렸다. 어르신께서 시장에 한 번 나오시려면 큰맘 먹어야 하는 걸 뻔히 아는데, 2000원 때문에 사고 싶은 걸 못 사고 빈손으로 가시게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남성 한 분이 오더니, 대뜸 질문부터 쏟는다.

"사장님 안 계신가유? 사모님, 고혈압 없지유?"
"바깥양반은 딴 일 다녀요. 저는 고혈압 없고요. 왜 그러세요?"
"아, 누가 자몽 주스를 한 병 줬는데, 자몽이 고혈압 환자한테 안 좋다네. 내가 혈압이 조금 있거든. 그래 생각나서 들고 왔슈." 

자몽 주스 한 병은 뉴페이스 손에 넘겨졌다. '아~ 사모님이구나!' 뉴페이스가 손님들이 주문한 꽈배기보다 한 개씩을 더 얹어 건넬 때부터 짐작은 했다. 사장님 내외의 장사 스타일이 어쩜 이리 똑같을까.

"오늘은 한 개씩 더 드리고 싶은 날이에요"라니... 이쁜 말솜씨도 내외가 어찌 그리 닮았는지. 결제를 하며 물으니, 코로나19로 매상이 시원찮아 사모님이 직장을 그만두고, 사장님은 벌이가  나은 곳에 취직한 상태란다.

어디를 가든 힘들다는 하소연뿐이다. 모처럼 내 단골집에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 덕에 달달한 '장터이야기'를 기분 좋게 들이킨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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