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암살..MBC 올림픽 중계 자막, 해외서도 비판
영국 가디언 등 외국 언론도 보도
2008년 베이징 때도 방통위 주의
"중계 조사해달라" 국민청원도
MBC가 도쿄 올림픽 개막식 생중계 때 참가국을 소개하는 부적절한 사진과 문구를 사용해 큰 논란과 비판을 불렀다. 구체적인 내용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됐고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여러 언론에도 다뤄졌다.
MBC는 23일 개막식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입장할 때 화면 한쪽에 각종 국가 정보와 함께 체르노빌 발전소 사진을 띄웠다. 체르노빌은 구소련 시절인 1986년 원전 폭발 사고로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난 비극의 현장. 소셜 미디어 등에선 시청자들의 비판이 일었다. 러시아 출신의 귀화 방송인 일리야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했을 때 세월호 사진”을 넣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뿐이 아니다. 각국 선수단 입장 때 엘살바도르는 이 나라가 최근 법정통화로 지정한 비트코인 이미지를, 아이티는 현지 폭동 사진과 함께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란 문구를, 마셜제도는 ‘한 때 미국의 핵 실험장’이라는 문구를 붙였다. 아프가니스탄은 양귀비 운반 사진을, 시리아는 ‘10년간 이어진 내전’이란 문구로 부정적 측면을 내세웠다.
또 노르웨이 선수단 입장 때에는 연어, 이탈리아는 피자, 터키는 아이스크림 등 음식 사진을 국가 소개에 띄우고 루마니아 입장 땐 ‘드라큘라’ 사진을, 사모아는 사모아 출신 할리우드 배우 드웨인 존슨 사진을 썼다. 스웨덴을 소개할 땐 ‘복지 선진국’ 대신 ‘복지 선지국’이라고 자막 오타를 냈다.
논란이 일자 MBC는 23일 중계방송 말미에 사과하고 24일에도 사과문을 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우크라이나에 체르노빌, 이탈리아에 피자’를 사용한 한국 방송국이 사과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MBC 올림픽 개막식 중계를 조사해달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선거 개표방송 때처럼, 지상파 3사가 서로 재치있는 방송을 하려고 시도하다 황당한 아이디어를 그대로 쓰면서 실수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며 “시청자에게 흥미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교적 결례를 범할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민간 방송사의 실수지만, 한국이 외교적으로 쌓은 좋은 이미지를 깎아내린다는 측면에선 아픈 실수”라고 말했다.
황용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스포츠국이 ‘재미’ 위주의 콘텐트에 집중해 만들면서, 올림픽 개막식의 규모에 비해 가볍게 접근한 게 그대로 방송됐다”고 짚었다. 한규섭 교수는 “올림픽 같은 큰 행사는 역량을 쌓은 인력이 투입돼야 하는데, 최근 MBC는 주요 인력이 바뀌는 상황이 많아 업무 연속성이 떨어진다”며 “예전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MBC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도 ‘조세회피지로 유명’,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 ‘오랜 내전으로 불안정’, ‘살인적 인플레이션’ 등 각 참가국을 폄하하는 자막을 사용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주의’를 받았다. 방송이 국제친선과 이해의 증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MBC는 24일 국·영문 사과문에서 “국가별로 입장하는 선수단을 짧은 시간에 쉽게 소개하려는 의도로 준비했지만, 당사국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크게 부족했고 검수 과정도 부실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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