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메모리즈㊴] 명배우들의 격투법..'모가디슈 '순두부 터치' VS 추격자 '개싸움'

홍종선 2021. 7. 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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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 스틸컷. '순두부 터치'의 주인공 조인성 ⓒ이하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모가디슈’(감독 류승완, 제작 덱스터스튜디오·㈜외유내강,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지난 22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류승완 작품’이라는 영화 속 자막에 걸맞게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과시했다.


실화라고 믿기지 않는, 너무나 잘 쓴 시나리오라고 말이 될 것 같은 긴장과 반전과 열정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시나리오 속 캐릭터를 살아 숨 쉬는 인물로 탄생시킨 배우들, 어제의 역사를 오늘의 생생한 영화로 완성 시킨 감독의 역량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목숨을 건 탈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 ⓒ

특히, 대한민국의 UN 가입 찬성표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 오지에 대사관을 꾸렸다가 심각한 내전으로 소말리아에 고립된 대사관 일원들의 숨 막히는 탈출에 집중함과 동시에, 소말리아 정부군과 시민군 어느 편에 서지 않으면서도 전쟁의 참상을 드러낸 감독 류승완의 연출적 균형감과 역사의식이 ‘모가디슈’의 큰 그림을 제대로 그렸다. 그 바탕 위에서 김윤석을 비롯해 조인성, 김소진, 허준호, 정만식, 김재화, 구교환, 박경혜 등의 배우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뛴다.


오랜만에 심장박동을 느끼며, 머리로 쏠리는 뜨거운 피를 느끼며 영화를 봤다. 간담회가 시작되고도 버둥거리는 심장을 느끼고 있을 때, 배우 구교환의 발언들이 이완 작용을 했다. 독립영화에서는 ‘프린스’였던 그가 영화 ‘반도’에 이어 ‘모가디슈’ 같은 블록버스터에 오니 신인 배우 태가 폴폴 나는 가운데, 간담회에서도 자유로운 화법으로 천진무구한 면모를 발산했는데 다음의 말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구교환의 익살. 기막힌 카체이싱으로 한 몸이 된 '내 차'를 소말리아에 두고 온 것 같아 그립다고 넉살을 부렸는데, 선배 허준호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 면허를 딴 초보로 촬영 틈틈이 '운전연습'을 했다고^^ ⓒ

“순두부 같은 터치였어요. 조인성 선배의 킥이 너무 부드러워 안전하게 촬영을 마쳤습니다, 하하하하하.”


총탄 쏟아지는 내전의 틈바구니에서 벌어지는 목숨을 건 카체이싱이 ‘모가디슈’ 액션의 백미인데, 또 하나 꼽자면 남과 북의 참사관인 강대진(조인성 분)과 태준기(구교환 분)가 벌이는 육탄 충돌이다. 대한민국 대사 한신성(김윤석 분)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 림용수(허준호 분)이 정치외교적 전략과 전술로 눈에 보이지 않는 대립으로 긴장감을 조성한다면, 정보기관 소속의 훈련된 요원인 참사관들은 의견과 감정을 혈기 왕성한 몸의 대결로 표현한다.


할리우드 대작 ‘본’ 시리즈에서 종종 봤던 맨몸과 주변 기재를 활용한 격투인데, 훈련받은 사람들답게 절도 있는 공수를 주고받기도 하고 영화 내에서 가장 뜨거운 피를 가진 사내들답게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부딪히기도 한다. 싸움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가운데, 조인성이 긴 하체를 이용한 돌려차기와 제압이 압권이다. 당연히 그 롱킥을 당한 이는 구교환인데, ‘순두부 터치’라는 애교 넘치는 표현으로 부상을 염려한 기자들을 안심시켰다.


영화 '추격자' 포스터 ⓒ이하 ㈜쇼박스 제공

구교환의 말을 들으며 13년 전 대한민국을 신선한 스릴과 공포에 몰아넣었던 영화 ‘추격자’(감독 나홍진, 제작 영화사비단길, 배급 ㈜쇼박스)가 생각났다. 주연배우가 김윤석으로 같아서 연상된 측면도 있을 텐데, 구체적으로 떠오른 건 배우 하정우의 말이었다.


소년으로 시작해 악마로 끝나는,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소년기의 잔상과 사이코패스의 악마적 개성을 동시에 지닌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 분). 비리 경찰 출신의 악랄한 포주지만 눈길에 넘어진 사람을 자꾸만 만나는 날이라면 한 번쯤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인간성을 내면에 지닌 엄중호(김윤석 분). 김윤석과 하정우는 어두운 밤 골목을 달리고 또 달렸고 세 번은 직접 물리적으로 부딪힌다.


곡괭이, 망치(이상 추격자)에 이어 돼지 족뼈(황해), 무엇을 들어도 완벽히 소화하는 배우 김윤석 ⓒ

첫 번째는 “4885, 너지!”의 밤, 두 번째는 경찰 취조실. 두 번 모두 지영민이 흠씬 맞았다. 가녀린 체격의 연쇄살인마 지영민이 풍채도 좋고 범죄수사 현장에서 다져진 한 방이 있는 엄중호를 당해내기란 중과부적. 세 번째 충돌은 지영민의 홈그라운드라 할 아지트(김미진 역의 서영희가 탈출한 집)에 엄중호가 찾아왔을 때 벌어진다.


이미 두 번 맞아본 지영민은 엄중호의 물리적 우위를 익히 알고 있다. 송곳으로 찌르고 달아날 짬을 보려던 건데, 지영민은 엄중호에게서 틈을 본다. 이만하면 붙어볼 만하다. 그리고 시작되는 몸싸움. 훈련받은 자들의 합을 맞춘 절도가 느껴지는 ‘모가디슈’ 격투와는 사뭇 다른 양상. 핏빛 지옥을 뒹구는 두 마리 짐승처럼 두 사람은 본능적 액션과 리액션을 주고받으며 그야말로 육탄전을 벌인다.


공포의 개미수퍼. 선글라스를 썼기에 더욱 제어장치 없어 캐릭터의 악마성을 뿜어낸 배우 하정우 ⓒ

하정우의 표현을 빌면 ‘개싸움’. 멋진 호랑이나 사자 두 마리의 싸움이 아니라 개싸움이다. 어찌나 치고 박고 얽혀 넘어지고 뒹굴고 미끄러지는지 두 배우의 부상이 염려될 정도의 리얼한 대결이고, 누구 하나 나가떨어져야 끝날 것 같은 징한 싸움이었다. 지영민의 도구인 망치를 엄중호가 잡은 역설, 신체의 우열을 전복하려는 듯 지영민은 골프채를 휘두르며 사납게 격돌했다.


“아뇨, 전혀 다치지 않았어요. 아마추어인가요. 합을 다 맞춰서 한 싸움인데, 보시는 분들께서는 진짜 싸움으로 보시게 하는 게 연기자들의 몫이죠.”


“물론 계획한 대로 딱, 딱 되지는 않죠. 그래서 서로, 상대가 중요해요. 김윤석 선배님은 영화 시작 전에 뵀을 때부터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좋은 연기를 하시는구나, 알게 됐죠. 말씀하신 격투 장면 찍을 때도, ‘잘해 보자, 서로 다치지 않게’라고 얘기하셨고요. 그 장면뿐 아니라 선배님은 자기 연기를 위해 상대 배우에게 부담을 주는 배우가 아니세요. 작품과 연기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비슷해서 아주 편히 찍었습니다.”


실화보다 실감 나는 영화. 시나리오와 감독의 생각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제1열에 선 배우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추격자’의 김윤석이나 하정우, ‘모가디슈’의 조인성이나 구교환, 장르는 다르고 격투 액션의 양상은 달라도 그 배우들의 격투법은 동일하다.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마음, 관객에게는 실감 나는 타격감을 주는 진짜 연기. 이것이 프로페셔널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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