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120시간 노동'과 18세기 굴뚝청소 어린이
[이한솔 기자]
▲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포스터. |
ⓒ tvN |
<나의 아저씨>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되기까지
여기, 힘들었던 성공 스토리가 있다. 하루에 21시간 촬영을 한다. 3시간 단체버스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촬영을 이어간다. 휴일은 단 하루. 일주일에 126시간을 작업해서 이번 주 드라마를 내보낸다. 시간은 속절없다.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드라마는 편성돼야 하니, 쉴 틈 없이 다시 126시간 촬영의 일주일이 반복된다.
드라마가 유명해지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받는다. 드라마를 총괄한 PD는 고강도 촬영 시간이라는 역경의 성공담을 '라떼' 한 잔 마시며 풀어낸다. 2018년 수많은 시청자를 위로했던 <나의 아저씨>의 일화다.
감동적인 미담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이제는 없을 것이다. 힐링 드라마의 뒷맛은 오히려 공포물에 가깝다. 드라마 현장에서 PD는 절대 갑, 사실상 '사장님'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을 멋지게 만든답시고, 직원인 스태프들의 뼈를 깎고 몸을 망가뜨려 가며 역경을 극복하는 것이 아름다울 리 없다. 오죽하면 방송 현장 종사자들이 하루에 8시간도 아니고 12시간까지만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을까.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제도가 사회 전반에 정착되면서, 방송업계의 노동환경도 조금은 나아졌다. 장시간 촬영 시간을 비판하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드라마 특성을 모른다'며 무시하던 방송국 관계자들은 자취를 감췄다. 압축적으로 촬영하지 않아도 좋은 작품이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나의 아저씨>와 같은 방송국에 편성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일주일에 한 편만 제작하고 있지만, 시청자들의 관심은 여전하다. 한류 드라마의 영향력은 노동이 존중되는 가운데 더욱 확장되고 있다.
▲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전 검찰총장). 사진은 6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
ⓒ 국회사진취재단 |
2021년이 맞는지 의심했다. 52시간의 노동시간 제한을 두고, 정치인들이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시작은 야권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다는 대선후보가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였다. 좋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논의를 하며, 정부의 52시간 제한을 비판한 것이다. 시대에 뒤처진 발언으로 인해, 여야의 정쟁이 한바탕 이어졌다. 문제의 발언을 한 사람은 '들은 이야기를 전했을 뿐'이라면서 자신의 발언을 왜곡하지 말라는 입장을 내보냈다.
한국 굴지의 대표적 게임업체에서 과로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4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쿠팡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네이버를 비롯한 IT 기업들의 과로 문제가 수면 위에 오른 지 고작 두 달이 지났다. 2017년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8시간으로, OECD 국가 중 2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한 해에 500명 안팎의 노동자가 과로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120시간의 과로를 허용하라고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CEO들의 고충을 듣는답시고, 한국 사회의 비극적인 현실을 한마디의 말로 뭉개버리는 것이 대한민국 대선 후보의 현주소다.
정치는 사람을 갈아 넣는 '사장님'들의 욕망에 반응한다. WHO와 ILO가 제시한 장시간 노동의 기준인 55시간은커녕, 휴일 없이 하루에 17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120시간을 두고 논박이 오가고 있다. 그들의 언쟁 속에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편안한 퇴근길을 가지고 싶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삭제되고, 불평등한 구조에서 마이크를 쥐고 있는 소수 사장님들의 목소리만 주목한다.
플랫폼, 비정규직, 계약직, 프리랜서, 비전형 노동자의 산재 문제가 제기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2021년의 여야의 대선 주자 누구도 분명한 철학과 해결방안을 꺼내지 못한다. 소소한 정책은커녕, 노동 현실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는 정치인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누군가는 오늘도 다치고 죽고 있다. 대선이라는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분명한 과제를 숙의하지는 못할망정 '120시간'이라는 먼지 쌓인 역사책 속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이래놓고 청년들에게 희망이니 공정이니 말할 염치가 있는지 묻고 싶다.
▲ 산업혁명 시대 당시 런던의 한 굴뚝 청소 아동 노동자를 그린 삽화. |
ⓒ historic-uk.com 갈무리 |
산업혁명 시기, 석탄 사용이 증가하자 굴뚝 청소가 필요해졌다. 두세 뼘 남짓의 좁은 굴뚝을 청소하기 위해서 몸집이 작은 아동들이 동원됐다. 심지어 굴뚝 청소 중 불을 지피는 일도 있어서 청소하던 유아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도 꽤나 많았다. 아동 노동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정치인들은 특정 연령 이하는 굴뚝 청소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는데, 그 나이가 고작 8살이었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는 사장님들의 욕구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아닌 다른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정치인, 그것도 대선 주자가 고민 없이 이러한 욕구에 그대로 동조하는 것은, 5살짜리 아이를 50cm 짜리 굴뚝으로 밀어 넣는 공장 사장의 욕구를 지지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서라면 때때로 120시간을 일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21세기 한국의 모습은 8세부터는 굴뚝청소를 해도 된다고 밀어 넣는 18세기 영국과 닮았다. 쉬는 시간은 없어도 노력하면 하루에 6시간 정도는 잘 수 있으니 충분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짧은 분량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더라도, 일상의 편리함이 줄어들더라도, 일터의 노동자를 지키겠다는 정치가 필요하다. 300kg의 무거운 컨테이너에 깔려 세상을 떠난 평택항의 노동자 이선호씨, 월 40만 원에 하루 14시간을 일하며 스마트폰 만보기에 하루 5만 보가 찍히는 청담동 노예 패션스타일리스트, 2020년 세상을 떠난 수십 명의 택배노동자. 정치가 귀기울여야 할 사람들은 여기에 있다.
대통령 선거까지 반 년 정도 남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다치고, 아프고, 죽어갈 것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대선 주자의 모습을 보고 싶다. 제발.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한솔씨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