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열돔'.. 시·그린란드·숲살이 읽으며 식혀 볼까?

김남중 2021. 7. 2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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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독서가들 추천 '올 여름의 책'
일러스트=게티이미지


올해 책을 낸 저자 중 독서가로 소문난 이들에게 여름휴가 때 읽어볼 만한 책을 한 권씩 추천받았다. 휴가철은 시작됐지만 코로나19가 극성이라 야외 활동이 쉽지 않은 상황. 책과 함께 시원한 쉼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은혜(‘읽는 직업’ 저자·글항아리 출판사 편집장)


2021년 여름은 현생인류인 우리가 쓴 시(詩)다. 견딜 수 없이 뜨겁고, 숨 막히고, 옆에 아무도 없는, 역사상 가장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의 작품이다.

여기 당신의 삶이 한 편의 시라고 말해주는 책이 있다. 49명이 함께 쓴 ‘누가 시를 읽는가’(프레드 사사키 외·봄날의책)이다. 철학자 리처드 로티의 말처럼 “풍부한 어휘를 가진 문화는 그렇지 못한 문화보다 짐승의 상태로부터 더 멀리 있”다. 그러니 좀더 인간적이 되도록 시의 파편들을 생애 속으로 끌어와 보자고 이 책은 권한다. 마음이 가라앉아 끌어올리고 싶은 이들은 시를 읽어 도파민을 분비시킴으로써 마음이 많은 일을 하도록 독려해보는 건 어떨까. “재귀적인 수다스러움”이 지배하는 인터넷은 잠시 끊고, 이성적이고 인과율적인 텍스트 세계와도 잠시 떨어져서, 삶의 밑바닥에 깔린 ‘무언가’를 끄집어 올릴 수 있도록 시를 읽어보자.

시인이 아닌 과학자, 의사, 가수, 배우 등이 이 책을 썼다는 사실은 시에 문외한이어서 시에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당신에게 용기를 북돋워 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김영민 김유태 두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여름을 나태하게 나지 않으려고. 습관의 규칙에서 벗어나 더 놀라운 삶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임명묵(‘K를 생각한다’ 저자·서울대 학생)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역사는 흘러간 과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역사는 상대편 정치 세력을 악마화하고 자신의 정치 세력을 숭고한 이들로 포장하는 데 사용되는 최적의 무기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조지 오웰의 경구는 ‘1984’의 오세아니아에서만큼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진실이다. 한국에서 각 정치 세력은 자신의 정파적 이익을 위해 한국 현대사를 자신들만을 위한 신화로 개조하고자 한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 제3자의 시선이다. 그들은 한국사를 지배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 우리처럼 절박하지 않다.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그렉 브라진스키·책과함께)는 그런 맥락에서 한국 현대사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나침반 같은 책이다.

브라진스키 교수는 독립, 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며 한국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국가인 미국과 관계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적 신화를 넘어 한국인의 주체성과 미국인의 영향 간 상호작용을 통해 탄생하고 발전한 ‘냉전의 우등생’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보며 스스로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어떨까.

정명원(‘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저자·대구지검 검사)


누구와도 숨을 섞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전 인류가 마스크를 둘러쓰게 된 지 1년이 넘었다. 서로의 숨을 경계하며 사람들이 간격을 넓힌 공간마다 유독 뜨거운 2021년의 폭염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떠들썩한 휴가도 분주한 왕래도 없이 이 여름을 어떻게 보내나. 이럴 땐 그저 내가 아는 가장 시원한 공간에 등을 기대고, 이곳으로부터 가장 먼 곳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찾아 읽어 보자.

‘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김인숙·브릭스)는 더할 나위 없이 딱이다. 2015년부터 그린란드에 살고 있다는 저자는 우리를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이 도는 그린란드의 설원으로 데리고 간다.

허리춤까지 눈이 차오르는 출근길 이야기나 죽은 영혼들이 바다표범의 해골을 갖고 공놀이를 하는 것이라는 오로라 이야기도 모두 흥미롭지만 압권은 빙하 녹은 물로 만든다는 그린란드의 맥주 이야기다. 만년설이 녹아든 맥주라니,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마가 쨍하다. 이르면 8월 말에 첫눈이 내리기도 한다는 그린란드의 짧은 여름에, 냉장고에서 차게 식은 잔이나마 꺼내 들고 ‘까수따!’(그린란드어로 건배를 뜻한단다)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구정은(‘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 저자·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사냥을 해야 할까. 길바닥에 죽어 있는 동물을 구워 먹어도 될까. 나무에서 떨어지는 저 이파리들은 어쩜 저렇게 경이로울까. ‘상쾌하고 맑고 영원한 마법에 싸인 세상’으로 돌아가길 꿈꾸며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은 어느 생물학자의 은둔일기.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정은석 옮김·더숲)는 저자가 고향인 미국 메인주의 숲에서 1년간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담은 기록이다.

숲속 은둔자의 기록으로 읽든, 생물학자의 자연관찰기로 읽든 다 재미있다. 커피 한 잔을 데우기 위해 나무를 고르고 쪼개고 오두막으로 들고 와 물을 데우느라 하루를 보내고, 시간에 대한 스스로의 집착을 깨닫고, 단풍잎 몇 개를 주워들고 난데없는 감상에 젖으며 그는 생각하고 느끼고 깨닫는다. 결국은 멸종해버린 동물들을, 자연의 풍요로움을 감상하는 방법을, 그리고 인생이란 결국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누구나 한 번씩 생각은 해보지만 실행하기 힘든 숲살이. 책 속의 사계절은 아름다웠고, 읽는 내내 부러웠고, 틈틈이 끼워 넣은 익살스러운 구절들에 혼자 웃었고, 산길을 달리는 이 생물학자를 보면서 덩달아 신났다.

김민영(‘온라인 책 모임 잘하는 법’ 저자·독서공동체 숭례문학당 이사)


여름 불볕의 흔적만큼 몸에 타투가 새겨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거리에서 사라지고 텅 빈 여름만이 홀로 불타오를 때, 코로나 종식을 알리는 승전보가 울려 퍼질 것이다. 소설 같은 해피엔딩을 상상하며 고단한 여름을 버티는 중이다.

“잘 지내요”란 안부조차 민망한 요즘, 무더위라도 식힐 방법을 찾는다면 답은 무아지경의 책읽기다. 여름 독서가 갖춰야 할 첫째 자질은 재미다. 열기와 습기까지 흡입할 고성능 재미여야 한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주노 디아스·문학동네)은 독자를 끌어당기는 재미 넘치는 소설이다. 덕질을 즐기는 독자라면 더욱 열광할 이야기다. 독서광 오스카와 그의 누나 롤라, 어머니 벨리시아, 조부까지 ‘레온 가족’의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 유니오르의 유려한 입담이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펼쳐진다. 독재자 트루히요의 통치 아래 살아남은 개인들의 생존기는 아이스박스처럼 서늘하면서도 묵직하다.

“난 세상에 저주 따윈 없다고 대답하겠다. 삶이 있을 뿐.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기, 삶이 있기에 버티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소설이다. 2008년 퓰리쳐상 수상작.

백창화(‘숲속책방 천일야화’ 저자·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시골길에선 종종 홀로 떠돌아다니는 개를 만난다. 유행을 따라 끝이 잘린 꼬리나 귀 부분을 살짝 탈색해 멋을 낸 걸 보면 도시 아파트에서 사랑받던 아이 같다. 그러나 잔뜩 헝클어진 채 진드기가 들러붙어 있는 털을 보면 시골 바닥을 떠돈 시간이 짧지 않으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저 개는 왜 이 낯선 곳을 헤매고 다니는 걸까. 시골 마을에는 여름 휴가가 끝나고 나면 부쩍 이런 개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사회성 짙은 만화들을 그려온 김금숙 작가는 시골로 이사한 후 이런 개들과 마주치면서 개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만화 ‘개’(김금숙·마음의숲)는 아이 없는 부부가 ‘강아지’라는 이름으로 그들에게 와준 당근이, 감자와 함께 살며 마을에서 마주친 여러 개에 대한 이야기다.

지구가 인간들의 세상이 되면서 터전을 잃고, 자유를 잃고, 양육되거나 혹은 버려지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늘 가슴 아프다. 자기를 갖다 버린 주인에게 되돌아가서는 또 버려지고, 버려진 그 자리에서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개들의 이야기를 초복 중복 말복이 지나가는 이 여름에 모두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인간이라는 성스러운 은혜를 받고 태어난 우리는 나무 물고기 숲 새 등 지구상의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는 인디언 격언이 마음에 부딪혀오는 책이다.

김병권(‘진보의 상상력’ 저자·정의정책연구소 소장)


코로나19가 재유행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비대면 생활로 다시 들어간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줌으로 회의나 세미나를 한다. 지인들과는 SNS로 관계를 유지하고 주문 앱으로 식사는 물론 음료나 간식까지 주문한다. 이렇게 필수적인 온라인 플랫폼을 공짜로 제공해주니 구글 페이스북 등은 얼마나 멋진 회사인가.

그런데 공짜를 즐기는 데 취해 지금 완전히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가 왔음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엄중하게 경고한 책이 있다. 2019년 출간돼 세계를 놀라게 한 ‘감시 자본주의 시대’(쇼샤나 주보프·문학사상)가 바로 그 문제의 책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거대 온라인 플랫폼 회사들과 ‘지독한 파우스트적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나의 정보, 내가 움직이며 행동하는 모든 정보를 줄 테니, 검색하게 해주고 SNS하게 해달라는 계약”이다. 그 대가로 우리의 모든 행동이 그들에게 파악 당하게 되고, 심지어 조종당하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다.

“당신이 구글을 검색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구글이 당신을 검색한다.” 이 구절이 본문만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이 책의 핵심일 터인데, 올여름 휴가에 가장 도전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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