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버블보다 두 배 잘나간다..K-스타트업 전성시대

노승욱·나건웅·반진욱 2021. 7. 2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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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벤처 붐을 뛰어넘는 제2벤처 붐 시대가 왔다.”

지난 4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창업 생태계 30년의 변화 분석’ 보고서에서 내린 진단이다. 스타트업으로 몰리는 투자금은 물론, IPO(기업공개)나 M&A(인수·합병)를 통해 엑시트에 성공한 사례까지 스타트업 생애 주기별 양적·질적 성장세가 곳곳에서 뚜렷하게 감지된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코스피 시총 TOP10 반열에 오른 기업도 세 곳이나 된다(3위 네이버, 4위 카카오, 10위 셀트리온).

불과 반세기 전까지 존재조차 안 했던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아마존이 그랬듯, 조만간 시총 TOP10의 과반을 스타트업 출신 글로벌 기업이 채울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곳곳에서 조짐이 보인다.

설립한 지 5년도 안 된 카카오뱅크는 시중은행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받는다. 온라인 쇼핑 업계에서는 네이버와 쿠팡의 거래액이 롯데, 신세계를 가뿐히 제쳤다. 외식 업계에서는 배민이,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사실상 대기업이다.

미국에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이 있다면, 국내에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가 약진하는 모습이다.

스타트업이 제2전성기를 맞았다. 사진은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가 버스정류장 광고를 한 모습. <윤관식 기자>

▶K-스타트업, 어디까지 왔나

▷제1벤처 붐 때보다 모든 지표 2배 성장

최근 K-스타트업 열기는 수치로 증명된다. 2000년대 초반 벤처 붐과 비교해 거의 모든 지표가 2배 가까이 성장했다. 2000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던 스타트업 수는 2008년부터 회복을 시작, 2018년 처음으로 10만개를 돌파했다. 지난해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12만개를 넘어섰다. 총 12만3305개로 2000년(6만1535개)보다 100.4% 늘었다.

스타트업 육성의 마중물인 투자자금이 몰린 덕이 크다. 2008년 7200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벤처캐피털의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2016년 2조원 돌파에 이어 지난해 4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2000년(1조9705억원)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서는 액수다.

이제 수천억원 이상 투자를 받은 한국 스타트업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 스타트업 데이터베이스(DB) 플랫폼 ‘더브이씨(THE VC)’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누적 투자액이 1500억원이 넘는 스타트업이 30여곳에 달한다.

지난 3월 뉴욕 증시 상장에 성공한 쿠팡이 1위다. 상장을 통해 5조원 자금을 끌어모은 쿠팡은 지금까지 총 9조3992억원 누적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누적 투자액 2위와 3위는 모두 해외 기업 매각에 성공한 케이스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4조6389억원), 영상 메신저 앱 ‘아자르’를 운영하는 하이퍼커넥트(1조9452억원)가 쿠팡 뒤를 이었다.

IT에 치중됐던 2000년대 초반과 달리 요즘 스타트업은 사업 분야도 다변화되는 모습이다. 투자 유치 1~3위인 쿠팡(쇼핑), 우아한형제들(배달), 하이퍼커넥트(메신저)는 모두 사업 분야가 다르다. 4위 야놀자(1조3975억원)는 여행·레저, 토스를 운영하는 5위 비바리퍼블리카(9630억원)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6위 눔(헬스케어, 7303억원), 7위 컬리(식품, 6428억원), 8위 크래프톤(게임, 6056억원), 9위 래디쉬미디어(콘텐츠, 5790억원) 등도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밖에도 스타일쉐어(12위, 3533억원)·무신사(13위, 3200억원) 등 패션 스타트업, 자동차 렌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쏘카(14위, 3040억원), ‘산타토익’을 운영하는 교육 스타트업 뤼이드(16위, 2809억원), 부동산 플랫폼 직방(22위, 2265억원) 등이 누적 투자 유치 상위권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공유오피스 사업을 하는 스파크플러스(1150억원)와 패스트파이브(1090억원),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880억원) 등 공간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스타트업이 대기업 제친 비결은

▷산업 구조 재편·기업가정신·빠른 속도

쟁쟁한 대기업을 제치고 스타트업이 잘나가는 이유는 뭘까.

먼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 구조 급변이 원인으로 꼽힌다. 대기업으로 대변되는 전통 산업의 강자들은 대체로 20세기 성공 방정식에 최적화돼 있는 편이다. 오프라인 시장, 규모의 경제, 부동산 투자, 정경 유착, 제조·유통업, 상명하달식 수직적 조직문화 등이 대표적인 키워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런 공식이 모두 뒤바뀌었다. 온라인·모바일 시장, 단계별 투자, 네트워크 효과, 소비자 참여, 서비스 플랫폼, 상향식 수평적 조직문화 등이 대표적이다.

스타트업 창업자의 ‘기업가정신’도 대기업이 따라 하기 힘든 강점이다.

벤처캐피털 대표나 심사역은 스타트업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창업자의 열정과 끈기, 전문성을 가장 눈여겨본다. 스타트업은 기존 시장의 통념이나 규제를 깨고 파괴적 혁신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고단한 과정을 견뎌낼 기업가정신이 있는지를 보는 심사에서 통과한 창업자에게 거액의 투자가 집중,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 창업자는 최대주주로서 자신의 지분과 인생을 걸고 사업에 임한다. 말로만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라’ 요구받는 대기업 임직원과는 동기 부여의 수준이 다른 것이다.

한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음식점 추가 출점 여부를 결재받는 데만 2개월이 걸렸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임원들의 관료주의, 대기업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보수주의 때문에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시도조차 못하게 하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토로했다.

규모가 작다는 스타트업의 약점은 갈수록 급변하는 시장에 빠르게 적응하고 ‘피벗(사업 모델 변경)’할 수 있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세 번이나 사업 모델을 바꾼 스타트업 ‘뉴빌리티’가 대표 사례다. 뉴빌리티는 게임용 글러브 회사로 시작해 전기스쿠터 안전 모듈 회사로, 다시 공간 데이터 수집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회사로, 또다시 카메라 기반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배달로봇 통합 플랫폼 기업으로 피벗했다.

현재 뉴빌리티는 SK텔레콤 등 여러 대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공동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상민 뉴빌리티 대표는 포브스 선정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 중 한 명에 뽑히기도 했다.

한 VC 관계자는 “대기업이라면 임원이나 전문경영인이 남은 임기라도 채우기 위해 실패를 자인하지 않고 버티다 정기 인사에서 물갈이 되기 일쑤다. 스타트업은 창업자와 VC 몇 명만 뜻이 통하면 빠르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어 대기업 같은 ‘대리인 비용’이 절약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버블 논란도

▷고평가·쏠림 현상 vs 생태계 고도화

한쪽에서는 국내외 스타트업 몸값에 지나치게 거품이 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투자 수요는 넘치는데, 투자할 만한 ‘괜찮은’ 스타트업은 귀하니 일부 스타트업에 투자가 필요 이상으로 몰리는 ‘쏠림 현상’과 ‘오버 밸류(고평가)’가 잇따른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은 기존 계획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투자받는 경우가 잇따른다. 일례로 320억원 규모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한 서비스 매칭 플랫폼 ‘숨고’는 당초 200억원 규모 펀딩을 계획했다 투자 수요가 몰려 금액을 높인 사례다. 배달대행 플랫폼 ‘바로고’도 500억원 투자 유치 계획을 800억원 규모로 키웠다.

한 VC 대표는 “훌륭한 커리어를 가진 창업자와 개발자만 있어도 초기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20억원부터 시작한다. 유망 스타트업을 다른 VC에 뺏기지 않기 위해 심사역이 투자 심의를 거치지 않고 바로 투자할 수 있도록 10억원까지 전결권을 주기도 한다. 그것도 모자라 시리즈B~D 단계에 투자하던 VC가 A 단계와 액셀러레이터까지 내려와 입도선매하고, 증권사나 사모펀드가 VC로 업종을 변경해 투자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스타트업 생태계가 고도화되는 과도기의 단면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동안은 국내 VC들이 리스크가 큰 시드 투자에는 소극적이었다. 투자할 만한 유망 스타트업의 범위도 좁고, 실리콘밸리처럼 성공한 스타트업 한 곳이 20~30배 투자 수익을 안겨주는 경우도 별로 없었던 탓이다. IPO 단계에 가서 시총이 수천억원에 달해도 수익률이 잘해야 2~3배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좋은 성과를 거둔 스타트업이 속출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산업 재편이 촉발되며, 산업의 중심추가 급격하게 혁신 기업으로 쏠리고 있는 만큼 K-스타트업은 지속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임정욱 대표의 생각이다.

노승욱·나건웅·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8호 (2021.07.21~2021.07.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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