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 천국' 일본의 교훈

임상균 2021. 7. 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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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칼럼
우주에서 지구의 밤 사진을 찍는다면 가장 밝은 국가는 어디일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와중에 설득력 있는 답변은 ‘일본’이다. 일본 전역에 있는 자판기 조명이 밤새도록 비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0년 데이터이기는 하지만 일본 전역 자판기 숫자는 508만대다. 같은 시기 미국이 691만대로 더 많지만 인구 수와 국토 면적을 감안하면 일본이 세계 제일의 자판기 왕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일본은 자판기 종류도 상상 이상으로 많다. 음료수나 담배 자판기는 기본이고 튀김, 햄버거, 과일, 아이스크림, 스시 등 온갖 먹을거리를 자판기로 살 수 있다. 곤충이나 종이접기, 우산, 속옷 등을 파는 자판기도 있다고 한다. 웬만한 식당에서 주문은 식권 자판기로 이뤄진다.

자판기는 일본 경제와 생활 방식 곳곳에 스며든 무인 경제의 가장 단순한 사례일 뿐이다. 우리도 최근 생기기 시작한 무인 편의점은 일본에서는 10년 전에 이미 시작됐다. 일본의 유명한 셀렉트숍 어반리서치는 2014년부터 무인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무인 만두 가게도 있는 것을 보면 일본 경제에서 무인화는 이제 대세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일본 무인 경제는 다양한 배경이 있지만 높은 인건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진보와 노동 중시 성향이 강한 민주당 집권 시기에 집중적인 인상이 이뤄졌다. 도쿄 기준으로 볼 때 2008년 3.7%, 2009년 3.3%, 2010년 3.8%씩 올랐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최저임금 시간당 1000엔 공약을 내세웠다가 일본 경영계와 충돌하기도 했다. 일본 민주당의 가장 큰 세력은 우리의 민노총 격인 렌고(連合)다.

일본 무인 경제를 촉발한 민주당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자녀수당, 결혼수당, 고교 무상교육, 유류세 폐지, 고속도로 통행료 폐지 등 수백조원의 재원이 필요한 인기 영합적 공약을 대거 내세웠지만 재원 조달 방법은 없었다. 무턱대고 내세운 공약에 국가 재정이 망가졌고, 결국 공약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자 일본 국민들은 3년여 만에 포퓰리즘 정권을 갈아치웠다.

정권은 끝났지만 경제에 미치는 후유증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집권할 당시인 2009년 6월 860조엔이었던 국가부채는 정권을 내준 2012년 12월 928조엔까지 급증했다. 당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219%인데,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250%를 훌쩍 넘는다. 정권이 자민당으로 바뀌었지만 한번 포퓰리즘에 길들여진 국민들의 입맛을 거스르지는 못한 것이다.

최저임금을 크게 올렸다고 경제가 나아진 것도 없다. 아베 신조 정권이 장기 디플레에서 벗어나겠다고 2013년부터 막대한 양적완화 등 경제 활성화 대책에 나섰지만 일본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2% 미만이다. 아무리 자극을 줘도 좀체 살아나지 않는 무기력증에 빠진 경제가 돼버렸다.

문재인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42%나 급등했다. 자영업자들은 키오스크를 도입하고 직원을 줄이며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민주당 포퓰리즘 정책 이후 일본 정치·경제의 변화 모습이 한국에서도 재연될지 두고 볼 일이다.

주간국장 sky221@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8호 (2021.07.21~2021.07.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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