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어 바이든도, 중국 반도체 숨통 조이기

이승호 2021. 7. 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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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장비 EUV 대중 수출 못하게
유일한 생산국 네덜란드 압박
중국, 자체개발 하려면 최소 10년
WSJ "네덜란드, 미·중 냉전 피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트럼프 정부에 이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반도체 핵심 장비를 중국에 팔지 말라고 네덜란드 정부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이 전했다. NYT는 “첨단 반도체 장비 업체인 네덜란드 ASML이 중국의 ‘기술 굴기’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미국 정책 관계자들에게 핵심 지렛대로 급부상했다”고 평가했다.

ASML의 EUV 노광장비. EUV 장비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사진 ASML 홈페이지]

네덜란드 정부는 2019년 6월 이후 자국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이 만든 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에 대한 중국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네덜란드 정부에 ASML 장비의 대중 수출을 제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EUV 장비가 ‘귀한 몸’이다. 반도체 원판(웨이퍼)에 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의 회로를 새길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장비가 EUV다.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7나노 이하 반도체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도 ASML 장비 덕분이다. 1년에 생산되는 물량은 40~50대에 불과하다. 한 대 가격이 1억5000만 달러(약 1712억원)에 달해도 삼성전자와 TSMC, 인텔, 애플 등이 치열하게 장비 확보를 위해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미국의 네덜란드 압박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시작됐다. WSJ은 “지난 2019년 찰스 쿠퍼먼 국가안보부 보좌관은 네덜란드 외교관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좋은 동맹국은 이런 장비를 중국에 팔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2019년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당시, 빚어질 파장에 관한 기밀문서까지 보여주며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네덜란드 측에 같은 문제를 거론했다. WSJ은 “ASML 장비의 대중 수출을 지속 제한하는 방안은 설리번 보좌관의 최우선 업무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ASML 지역별 매출 비중.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국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쉬훙(徐宏) 네덜란드 주재 중국 대사는 지난해 1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네덜란드가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계속 정치화한다면 양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항의했다. 그럼에도 네덜란드의 입장 변화를 끌어내진 못했다.

ASML은 최첨단 EUV 노광장비를 올해 42대, 내년 55대 각각 생산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중 중국으로 수출할 장비는 없다. 중국은 2020년 ASML 전체 매출의 15~17%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는 EUV가 아닌 구형 장비 판매가 포함된 수치다.

수입 장벽이 높아지자 중국은 베이팡화촹(北方華創) 등 자국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EUV를 대체할 장비를 개발하려 한다. 한계는 뚜렷하다. WSJ은 “전문가들은 중국이 자체 노광장비를 개발해도 ASML 기술을 따라잡으려면 최소 10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중국 시장을 놓치고 있는 ASML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다른 기업 수요가 높아 대중 수출 제한이 회사 사업엔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서도 “수출 규제가 남용될 경우 중기적으로 혁신을 더디게 만들고 단기적으로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WSJ은 “네덜란드는 광범위한 미·중 기술 냉전에서 부수적인 피해를 보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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