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14년 갔다온 女변호사 "여성징병? 불순한 의도 있다"
“여성징병은 군사·안보 전략상 필요하면 하고, 필요 없으면 안 하는 겁니다. 판단은 국방부 자신들이 해야지요, 왜 (핑계로) 사회적 합의를 따집니까”
군대를 14년 갔다 온 여성 변호사가 있다. 이지훈(44) 변호사다. 그는 ‘여성징병제’ 논란에서 "사회적 합의"를 거론하며 명확한 의견을 내지 않은 국방부를 이렇게 질타했다. 또 “젠더 갈등이 여성징병제 논의 출발점이어선 안 된다”며 “철저하게 병력 운용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라고 했다.
웬만한 남성보다 군대를 잘 아는 그는 2005년 4월 법무관으로 입대했다. 경북 영천 훈련소엔 여자 화장실과 여탕이 따로 없었다. 화장실은 남성들과 칸을 나눠 썼고, 목욕은 시차를 두고 남녀가 같은 탕을 썼다. 훈련소에서 그는 항상 ‘손님’ 같았다고 했다. “군(軍) 법조인이 매력적이라서” 군복을 입었다는 그는 육군본부 법무실 장교부터 군수사령부와 국방부 법무실장 등을 거쳐, 재작년 14년 군 생활을 마쳤다.
‘군잘알’ 여성 변호사는 최근 군대 성범죄 사건들과 여성징병제 논란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는 냉정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Q : 최근 ‘이 중사 사건’, 창군 이래 처음 특임검사 투입했다.
A : 큰 사건 터졌다고 평소랑 달리 대응하는 그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특검 임명은 사후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번에 특검으로 해결하면 다음에도 특검할 건가. 군 사건 처리는 절차대로, 예측할 수 있게 진행되는 게 이상적이다.
Q : 군 성범죄는 남성중심의 군 조직문화 탓이 클까.
A : 경험하고 느낀 바로는 군대에 남자가 많아서 성범죄가 많은 건 아니다. 이유는 구조와 제도에 있다. 민간과 다른 처벌 방식이 큰 문제다. 여기서 고통이 시작된다. 군은 경찰·검찰·법원이 다 한 조직 안에 있다. 그들은 모두 군인이고 동일한 지휘계통에 있다. 수사·기소·재판 등의 사법절차가 군에서 독점된다. 피해 구제가 어렵고 2차 피해를 양산하는 구조다.
Q : 군 성범죄만 민간에서 처리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A : 그것만 해결돼도 피해자에게 좋다. 성범죄 숫자를 못 줄여도 정당한 처벌과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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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징병하면 군대 성범죄가 줄어든다?
Q : 여성징병제 도입하면 성범죄 줄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A : 남군을 가해자, 여군을 피해자로 전제한 말이다. 여군이 늘어나면 성범죄가 해결된다는 건 어떤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 또 이런 주장은 가해자 직급이 높으니 상위직급 여성 간부를 늘리자거나, 상위직급 여성 할당제를 두자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본질과 멀어진다.
Q : 여성 간부가 늘면 상황이 그나마 개선 되지 않을까.
A : 편견이다. 경험적으로 남성 친화적인 조직에서 여성이 진급하려면 누구보다 남성 중심 문화에 융화하고 적응해야 한다. 단지 ‘여성’ 대령, 장군이라고 성인지 감수성이 뛰어나지 않다. 성(性)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 문제다.
Q : 성범죄 문제가 아니라도 최근 ‘여성징병제’ 논의에 불이 붙었다.
A : 국가적 필요 때문에 논의가 시작된 게 아니다. 일부 여성들이 남성의 군 복무를 비하하며 군 복무 이슈가 남녀 성(性) 대결 양상으로 옮아갔다. 그래서 ‘여성도 그럼 군대에 가라’는 이야기가 나온 거고. 그렇게 여성징병제 논란이 커졌다. 근데 여기서 국방부가 “여성징병은 사회적 합의로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잘못됐다. 국방부는 논할 가치가 없으면 아무 말도 안 하면 된다. 논할 거라면 책임 부처로서 정확한 의견을 내야 했다. “사회적 합의”라는 단서를 꺼내면 안 됐다. 이건 ‘(사회가) 여성징병제 하라고 하면 우리는 그냥 하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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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해병대 캠프?…희화화에 반감 커”
Q : 여성징병제 도입, 사회적 합의 안 거칠 수 있나.
A : 법을 바꾸면 할 수 있다. 근데 이건 군사·안보전략 차원에서 국방부가 필요하면 (여성 징병을) 추진할 일이다. ‘젠더 갈등에서 불거졌으니 검토하겠다’ 이런 접근은 안 된다.
Q : 국방부가 ‘여성 징병’ 눈치를 본다는 건가.
A : 눈치를 보지 않을까. 모든 부처가 소신 있게 의견을 내지는 않겠지만, 국방부는 다르다. 이런 문제라면 의견을 내야 하는 부처다. 남성 징병제는 국가가 선택한 징집제다. 국방부가 ‘사회적 합의’를 말하는 건 현재 징병제 자체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그리고 애초에 남성 징병제를 비꼬며 깎아내릴 때 우려를 먼저 냈어야 한다. 그럴 땐 아무 말 없다가 논란되고 여성징병제 이야기까지 나오니 “사회적 합의”를 말하는 건… 14년을 군대에 있었다. 병사들이 강제로 끌려와서 정당한 보상 없이 헌신하는 걸 봤다. 또 목을 맸다가 간신히 숨이 붙은 채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 결국 숨지는…안 알려져서 그렇지 이런 일이 엄청 많다. 군대를 안 왔다면 안 생길 일이다. 군은 생각보다 굉장히 위험한 곳이다. 이런 군대를 해병대 캠프처럼 희화화하는 데 반감이 크다. 우린 무정부 국가가 아니다. 어떤 일은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 논의를 끌고 가기도 해야 한다. 논란으로 세상이 들썩이는데 가만히 있거나 동조하는 건 우려스럽다.
Q : 군 가산점 부활? 월급 인상? 어떤 방법이 정당한 보상일까.
A : 민간은 두고 공무원 시험 보는 일부 남성에만 주어지는 가산점 혜택은 차별이다. 정당한 보상이 아니다. 이런 발상 자체가 보상 의지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 전체가 대가를 치르는 게 정당한 보상이다. 모든 의무 복무 군인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월급 인상이다. 돈 적게 주니까 땅 파는 일을 시킨다. 돈을 많이 주면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겠지…. 군의 사기·효율·인권을 고려해도 월급 인상이 효과적이다.
Q : 결국 모병제가 답인가. 우려도 크던데.
A : 직업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맞다. 싫은 사람은 억지로 갖다 놓는 건 그냥 벌주는 거다. 영창제가 효과적이었던 건 복무 기간을 연장하는 처벌 때문이다. 우린 대부분 군대 가는 걸 벌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편한 군 생활 했다고 하면 욕을 먹기도 한다. 여기서 무슨 전투력을 기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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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징병’ 논란의 시작, 젠더갈등
Q : GS25 사태 같은 젠더 갈등이 여성 징병제 이슈를 더 크게 키웠다.
A : 그 포스터를 본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상하지 않았을까. 보통 그렇게 (집게손가락으로) 물건을 잡지 않는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그 표현은 양을 표시할 때 쓰지 않나. ‘이만큼 적다. 이만큼 밖에 안돼’ 이런 표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소시지를 그렇게 잡는 건 일상적이지 않다.
Q : 객관적인 근거는 없는 판단 아닌가.
A :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다. ‘정말 저렇게 (소시지를 집는다고) 생각을 하나’라는 의문들.
Q : GS25 사태가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반발)’ 아니냐고도 한다.
A : 인간 집단은 스펙트럼이란게 있지 않나. 가운데가 볼록하고 넓은 분포 곡선. 흔히 말하는 ‘메갈리아’나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식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거기에 포함되진 않는다. 분포곡선 양 끝단에 있는 사람들이다. 가운데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어렵다. 왜냐하면 가운데 공간은 많은 부분이 검증됐다. 또 검증이 가능하다. 그곳에 담긴 생각은 깊이도 깊고 너비도 넓다. 그래서 이들은(일베나 메갈리아) 신념과 상관없이 양극단을 선택하고 들어가서 전혀 새로운 주장을 펼친다. 적은 노력으로 전문가 지위도 부여받는다. 아무래도 새로운 이야기니까 사람들 관심도 사며 권력화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여기에 동원되고 이용당한다. 경계해야 한다.
Q : 극단화되는 젠더 갈등 문제는 뭘까.
A : 젠더 갈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인 것도 사실이다. 남녀가 평등하게끔 제도를 만드는 건 좋다. 근데 젠더와 상관없는 영역까지 남녀갈등을 확산시키는 건 우려스럽다. 특히 군대 문제. 입법자들이 남성만 징집한다고 결정한 거고 그럼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해주는 게 급선무다. 그게 국가의 역할이다. 근데 이건 안 하고 오히려 젠더 갈등의 장으로 나서서 논란을 끌고 오니까 문제다.
Q : 정치권도 갈등을 부채질한다.
A : (정치권이) 지금껏 아무것도 안 하다 젠더 갈등이 이슈되니 정책을 급히 내놓는다. 깊은 고민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얘기들이다. 또 여성 징병 도입 이야기하며 남성징집 제도에서 외면해온 금전적 보상의 필요성을 꺼내며 모병제를 끼워판다. 이러면 평등과 무관한 논의가 된다. 이는 현 징집제를 굉장히 우습게 만들 뿐이다. 불순한 의도가 다분하다.
Q : 갈등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A : 휘말리지 않으려면 내가 바로 서야 한다. 논쟁이 발생하면 논쟁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나만의 기준을 잡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게 없으면 나도 피해를 받지만 사회 전체가 무너진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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