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혹시 여름 싫어하세요? 이 글을 읽으면 생각이 바뀔 걸!

이마루 2021. 7.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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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김사월이 말하는 여름은 매년 돌아오지만 뜨거운 계절이다
「 한여름의 나 」

얼마 전, 집에서 아주 얇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도 공기가 후텁지근하게 느껴졌다. 5월은 한여름만큼 무덥고 화창하지만 초가을의 문턱처럼 스산하기도 하다. 날씨가 변덕스럽게 느껴지는 걸 보니 곧 여름이 올 것이다. 더 더워지기 전에 해야 할 것 같아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에어컨 청소 업체 기사님을 불렀다. 지금 사는 반전셋집의 구형 벽걸이 에어컨을 1년에 한 번씩 청소하고 낡은 부분들을 조금 손보기 위한 것이었는데 당연하게도 먼지와 곰팡이가 많이 쌓여 있었다. 청소를 위해 에어컨 리모컨을 눌러봤지만, 건전지가 다 닳아 있었다. 기사님은 “건전지가 없지요. 보통 그렇더라고요” 하며 익숙한 듯 웃었다. 이렇게 돌아보면 1년은 정말 짧은 시간만은 아니구나. 익숙하고 고맙게도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모든 생명이 숨을 고르고 자신을 숨기는 겨울을 살아갈 때면 추운 곳에서 느끼는 작고 간절한 온기들이 고맙다.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는 씨앗처럼 작고 훈훈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서 불을 쬐고 따끈한 것을 먹으며 한기에 얼어붙은 손가락과 귓바퀴를 잠시나마 잊는다. 겨울에 깔린 스산함과 앙상함은 어쩌면 영원히 봄이 오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침잠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편안한 우울감 속에 봄을 잊고 지내다 어느덧 새싹이 돋고 햇볕이 따스해지면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건 금방이다. 금세 땀을 흘리고 키가 커진다. 뜨거워지고 풍성해진다. 어느 계절을 살아도 마음속에는 메마른 겨울 텃밭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외부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이 반갑고 또 부럽다. 나도 괜히 올해는 싹을 틔울 수 있을 것 같고, 열매를 맺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렇게 활기찬 에너지를 동경하고 따라 하다 엉겁결에 싹을 틔운다.

그래서 사랑하는 여름 풍경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은 유리잔에 맺힌 차가운 물방울들을 손가락으로 스윽 훑는 것, 조금 쑥스럽지만 과감한 민소매와 반바지를 입고 길을 나서 얇고 가벼운 옷차림의 멋지고 매력적인 여름 사람들 무리와 비슷한 척하는 것, 금방 따라내 거품이 희고 두껍게 피어오른 맥주의 첫 모금과 쉽게 미지근해져 잔 바닥에 찰랑하게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고 다음 잔을 우렁찬 목소리로 시키는 일, 올려다본 하늘에 걸린 금방 태어나 연한 녹색 이파리를 달고 살랑거리는 가로수를 보는 것. 생명력이 와글와글한 이 시간을 보내는 건 마치 예쁘고 착한 친구들이 모여서 까르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소파에 비스듬히 졸면서 듣고 있는 듯 몽롱하고 행복한 마음과 비슷하다.

오래 투병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 열차에서 내려 차를 타고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간다. 산과 들에 풀들은 이리도 울창한데 누군가는 생을 다하고 누군가는 태어난다는 감각이 어지러웠다. 삶이 무한한 듯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아직도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어렵다.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을 앞으로 100번도 더 만나지 못할 수도 있고, 내게 남은 여름도 많아 봤자 50번 정도일까.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든 일은 정해진 수만큼만 일어난다는 걸 아직도 믿을 수 없다. 내 삶이 한여름을 지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은 젊고 풍성하지만 이내 익어가고 사라지는 가을이 올 테고, 혼자만 남는 겨울에 도달할 것이다. 할머니들은 자신이 알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을 떠나보내고도 살아가는 존재였구나. 그 많은 사람과 기억들을 보내고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무것도 자신이 없다.

한여름의 강렬한 햇살에 잠깐 눈을 감고 싶다. 민소매를 입은 내 몸은 아직 푸르다. 이 몸이 저물어갈수록 내가 사랑한 수많은 것과 이별할 수밖에 없다. 헤어짐 앞에서 사랑해야 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사랑할 시간은 지금밖에 없구나.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생생하게 깨어 있게 된다. 땀에 젖은 손을 바지에 쓱쓱 닦아가며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연인을 생각한다. 피어나고 저물어가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의 운명이지만 괜히 지금은 영원할 것 같은 사랑과 생명의 계절을 올해도 맞이한다. 이번 여름도 끊임없이 사랑하고, 지겹도록 실패하기를. 그런 한여름을 보내면 어느덧 무성한 수풀은 고요한 겨울 텃밭으로 변해 있을 거다. 그러나 내 청춘이 흘러가도 여름은 매년 돌아올 테지. 그 사실이 조금은 마음을 뜨겁게 한다.

김사월 메모 같으면서도 시적인 노랫말을 쓰는 싱어송라이터. 2020년 에세이 〈사랑하는 미움들〉을 썼고, 세 번째 솔로 앨범 〈헤븐〉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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