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거지 두려움에 떠는 韓 MZ세대 'FOMO 사피엔스'

명순영 2021. 7. 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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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월급을 모아 직장 근처에 집을 살 수 있을까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청년이 이렇게 물었다고 치자. 만약 10년 전 이 질문이 나왔다면 기성세대는 이처럼 답했을 것이다.

“성실하게만 일하면 된다. 월급을 차근차근 모아 종잣돈을 만들어라. 은행 도움 받아 작은 집을 먼저 사고 계속 평수를 키워나가면 된다. 아무 문제없다.”

2021년 7월에도 똑같이 답할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고 답할 인생 선배가 많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결혼을 준비하던 김 모 씨(32)는 신혼집을 구하다 깊은 좌절감을 맛봤다. 김 씨와 예비 신부는 결혼을 앞두고 서울 6억원대 아파트를 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7월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통과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 집값이 갑자기 급등하더니 한 달 새 4억원이 뛰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 씨와 직장인인 예비 신부 급여를 합치면 월소득이 중산층은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0억원대로 올라버린 집을 사기는 어려웠다. 결국 그는 직장 근처 ‘전세’로 방향을 틀었다. 김 씨는 “괜찮은 직장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가 내집마련이 쉽지 않은 대한민국이 과연 살 만한 나라인지 묻고 싶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대출 규제 완화를 기다려 애초 계획보다 작은 아파트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급등에 따른 좌절감은 젊은 세대가 격하게 공감하는 대목이다. 198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MZ세대에게 물었더니, 10명 중 3명은 평생을 저축해도 원하는 지역에 집을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민일보가 여론조사 업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8~39세 남녀 1000명을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다.

또 다른 통계를 봐도 젊은 층의 내집마련은 요원해 보인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분석에 따르면, 현 정부 임기 4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이 2배 가까이 올랐다. 100㎡(30평)의 아파트를 서울에서 구매하려면 월급을 쓰지 않고 25년을 모아야 가능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서울 3분위 소득 가구(상위 41~60%)가 서울에 있는 3분위 주택을 사기 위해서는 17.8년이 걸린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8년 이후 최고치다. 성실히 일해 일정액씩 저축하면 집을 살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내집마련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부동산과 주식 급등세에 투자에 나선 젊은 층이 늘었다. 공모주 열풍도 ‘대박’을 노리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매경DB>
▶집값 폭등에 자포자기식 대안 찾기

▷투자 안 하면 불안한 포모 증후군 만연

집값 폭등의 후폭풍은 매우 크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10명 중 3명은 ‘비혼’을 택한다(정부 가족실태조사). 또 다른 문제는 젊은 세대에게 월급이 ‘하찮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근로소득만으로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주거’를 해결할 수 없어서다.

한편으로 젊은 세대는 새로운 대안을 찾았다. 조직에서 열심히 일해 승진하고 월급을 올려 받는 과거의 길 대신, 최대한 돈을 끌어모아 부동산·주식 등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 ‘가즈아(암호화폐 급등을 바라는 구호로 ‘가자(오르자)’에서 유래)’ 등의 용어가 양산된 것이 같은 맥락이다. 남들이 투자에 나설 때 나만 빠지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른바 포모(FOMO)형 인간으로 바뀌었다. 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줄임말로, 심리학에서 ‘나만 소외되는 것을 불안해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자산을 소유하지 못하면 벼락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이 같은 현실에서 젊은 세대가 자의 반 타의 반 택한 경제적 인간형이 ‘포모 사피엔스’다.

30대 직장인 박진형 씨도 ‘포모 사피엔스’로 분류할 수 있다. 그는 저축이 최고라는 신념으로 재테크를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부동산, 주식, 암호화폐로 떼돈을 벌었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불안해졌다. 결국 적금을 해지하고 ‘주린이’와 ‘코린이’의 길로 들어섰다. 테마주를 연구하며 짧게 짧게 자금을 운용하는 방식도 달라진 스타일이다. 그는 “회사 업무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식과 암호화폐 시세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라며 “멍청히 있다가 투자에 무능한 인간으로 남기는 싫다”고 했다.

젊은 세대의 포모 사피엔스化를 보여주는 단면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늦었다 싶지만 계속 오를 것 같은(?)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첫 번째 사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5090건) 중 30대가 1867건(36.7%)으로 가장 많았다. 20대 이하 거래(5.4%)까지 합하면 30대 이하 비중은 42.1%로 치솟는다. 청약 경쟁에서 밀리고 전세 시장 불안으로 임대료 부담이 커지는 만큼 더 늦기 전에 내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수요가 몰린 셈이다.

부동산에 목돈을 넣을 처지가 못 되는 경우는 주식으로 눈을 돌렸다. 또한 암호화폐가 또다시 급등할 것만 같아 부랴부랴 코인을 산다. 급락에 대한 불안감보다 ‘나만 별안간 벼락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로 2030세대가 몰리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2030세대는 부동산 등 기존 투자처보다 진입 문턱이 낮은 암호화폐를 마지막 ‘대박’ 기회로 삼아 올해 코인 투자 열풍에 적극 뛰어들어왔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의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 총 249만명 중 20대와 30대가 각각 81만명(32%), 76만명(30%)으로 전체의 63%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예치금 증가율도 20대가 154%, 30대는 126%로 크게 늘었다.

흥미로운 점은 사회적 배경에 관계없이 투자자들이 동일한 투자 조건과 리스크를 보유한 암호화폐, 주식을 ‘그나마 가장 공정한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5월 내부 보고서로 낸 ‘MZ세대의 특징과 금융 산업에의 시사점’에 따르면 그렇다.

▶포모 사피엔스는 해피엔딩?

▷금리 인상 눈앞…이자 눈덩이

포모 사피엔스를 택한 젊은 세대가 ‘해피엔딩’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금리가 오르면 ‘영끌’로 투자한 젊은 세대의 이자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국내 가계부채 리스크 현황과 선제적 관리 방안’에 따르면, 금융권에서 새로 가계대출을 받은 신규 차주수·신규 대출금 가운데 30대 이하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2018년 51.9%에서 지난해 3분기 기준 58.4%로, 대출 규모도 같은 기간 46.5%에서 55.3%로 상승했다. 연구원은 주로 주택 가격 상승 기대와 주식, 암호화폐 등 레버리지 투자 열풍에 편승하기 위한 것으로 진단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전까지는 주택담보대출이 주도했지만 이후로는 신용대출이 증가세에 가세했다. 지난해 말 청년 다중채무자대출 잔액 역시 전년 말 대비 16% 증가한 130조원 규모에 이르렀다. 매경이코노미 설문조사에서도 부동산·주식·코인에 빚을 내 투자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절반에 가깝다.

반면 시장은 연내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5월 “금리 정책 정상화를 서두르지는 않겠지만 실기해서도 안 된다”고 금리 인상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이후 “연내 늦지 않은 시점에서 질서 있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연내’로 못 박았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6호 (2021.07.07~2021.07.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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