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방정부와 충돌 우려되는 '기형적 자치경찰제' 손질해야

2021. 6. 2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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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찰과 책임 공방땐 주민 피해
지방정부 중심의 체제 개편 필요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자치경찰이 7월 1일 출범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사실 자치경찰제는 노무현 정부가 2006년 7월 제주도에 시범 도입했다. 외국 경험을 두루 참고했다. 국가경찰(경찰청)로부터 독립해 시·군·구 기초지방 정부가 자치경찰을 책임지는 ‘노무현식 자치경찰’은 이원형 모델이다. 제주도에서 15년간 시범 실시하는 동안 민생 치안을 주민 친화적으로 해결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식 자치경찰을 시·도 광역정부로 확대 도입을 추진해 왔던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갑자기 판을 뒤집었다. 국가경찰이 지방의 자치경찰 사무까지 집행하는 일원형 모델을 기습적으로 법제화하더니 충분한 준비 없이 전면 강행을 밀어붙였다. 이런 ‘문재인식 자치경찰’은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어느 문명국가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다. 경쟁적으로 협조했던 시·도는 곤혹스러워하고, 전문가들은 “이게 무슨 자치경찰이냐”며 반문한다. 곳곳에 갈등과 알력의 조짐이 있다.

사실 자치경찰은 국가경찰의 과부하를 해소해 국가경찰의 기능을 회복하는데 일차적 목적이 있다. 국가경찰은 모든 사소한 일까지 처리해야 하므로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 실정이다. 권력의 집중과 비대화는 필연적으로 무능·부패·오만으로 귀결된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 개혁’을 내세워 검찰 수사권을 국가경찰로 이양하면서 경찰 권력이 비대해지자 자치경찰제를 도입해 권한을 분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가정범죄·소년범 등 자치 수사 사무는 국가경찰이 직할하고, 그 외 생활안전과 교통 등의 자치경찰 사무도 모두 국가경찰이 직접 집행한다. 실질적 경찰 분권화는 0%다. 이로써 국가경찰 권력이 유사 이래 가장 비대해지면서 ‘경찰국가’라는 우려가 나온다.

자치경찰은 지역 맞춤형 치안 서비스로 주민의 체감 치안 만족도를 높이는데 존재 이유가 있다. 이는 주민과 가까운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수행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문재인식 자치경찰은 주민과 멀리 떨어진 국가경찰이 자치 사무까지 집행하도록 역주행하고 있다. 이름만 자치경찰이고 실제로는 위장된 국가경찰이다. 국가경찰인 시·도 경찰청장이 집행하는 자치경찰 사무는 법리적으로 기관 위임 사무가 된다. 시·도 경찰청장은 국가기관이지만, 자치 사무를 처리하는 범위에서 자치경찰위원회의 하급기관이 되고 그 통제를 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이중적 지위다.

법률은 자치경찰위원회의 감독권과 인사권을 규정해 자치경찰을 수행하는 국가경찰에 대한 통제권을 보장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으나, 곳곳에 이를 무력화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막강한 권력을 쥔 시·도 경찰청장이 실권도 없는 자치경찰위원회의 지휘·감독을 무시해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포장만 자치경찰이다. 갈등과 알력의 소지가 매우 크다. 이로 인해 자치경찰 사무가 표류하면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위원회는 서로 책임을 떠넘길 것이다. 자치경찰이 무책임 상태에 빠지면 결국 피해는 주민에게 돌아간다.

문재인식 자치경찰은 자치 사무에 대한 지방정부의 책임성을 본질에서 침해해 헌법상 보장된 자치권 위반으로, 위헌 소지가 크다. 주민의 다양한 치안 수요에 대응하기도 어렵다. 다른 일반 자치 사무와 연계성도 끊어져 자치경찰의 효과는 반감된다. 따라서 자치경찰 사무는 지방정부가 자기 책임으로 처리하도록 근본적인 체제 재편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국가경찰이 수행하던 사무를 지방정부에 이양했으나 아무런 재정 조치가 없어 재정 원칙에 어긋난다. 시·도에 수행 경비를 요구하는 국가경찰과 추가 여력이 없는 시·도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국가는 경찰 사무 이양에 따른 재정 이양 조치를 해야 한다. 이제라도 문재인식 자치경찰을 전면 손질해야 한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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