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신고→계좌 동결→"합의금 달라"

박수호 2021. 6. 2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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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허위신고에 떨고 있는 온라인몰

온라인몰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최근 황당한 사건을 겪었다. 본인 회사가 갑자기 보이스피싱을 하는 업체로 전락해서다. 사연은 이랬다. 흔히 온라인몰에는 사업용 계좌번호가 명시돼 있다. 그런데 이 계좌로 어떤 사람이 5만원을 입금한 후 금융당국에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그러자 해당 계좌는 동결됐다.

김 대표는 “회사 계좌가 일순간 지급정지돼 협력업체에 줄 돈도 못 주고 답답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당장 주거래 은행으로 달려간 그에게 오히려 더 답답한 상황이 벌어졌다. 해당 지점장은 이런 일이 다반사라며 조사 기간 동안에는 동결을 어찌할 수 없다고 했다.

보이스피싱을 한 주체가 김 씨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수사기관의 조사 기간을 포함하면 최소 3주 이상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대안을 찾아봤다. 최초 신고자가 신고를 철회하는 것이다. 김 씨는 최초 신고자를 찾아가 읍소하면서 한편으로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면 계좌 정지가 오래가는 한이 있어도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결국 신고자가 증거자료를 내지 못해 사건이 유야무야되면서 사흘 만에 계좌 동결을 풀 수 있었다.

범죄자들은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나와 있는 회사 계좌를 노려 보이스피싱 허위신고를 하고 있다. 온라인몰 사업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 ▶범죄자 어떻게 접근하나

▷인터넷 공개 계좌가 문제

김 대표처럼 보이스피싱 허위신고 때문에 몸살을 앓는 자영업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후문이다.

“제 사례는 그나마 다행인 편이라고 해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오히려 많은 중소기업 사업주가 이런 일을 겪는다더군요. 제도의 맹점 때문인데 이것 때문에 석 달간 문을 닫은 쇼핑몰도 있었다고 합니다.” 김 대표 부연 설명이다.

멀쩡한 소상공인이 한순간 보이스피싱 사건에 연루, 계좌 동결 사태를 맞는 이른바 허위신고 사기 사건은 어떻게 벌어질까.

보이스피싱 허위신고 사기는 제도 맹점을 활용해 저질러지는 범죄다.

우선 신고자들은 공개적으로 회사 계좌번호가 나와 있는 인터넷 혹은 모바일 e커머스 홈페이지를 노린다. 일단 해당 계좌로 소액을 보낸다. 그다음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었다고 경찰에 신고한다. 이후 이들은 피해구제제도를 신청한다.

피해구제제도란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하면 돈을 입금한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를 뜻한다. 실제 피해가 없어도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우기면서 지급정지 신청을 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노출된 계좌가 그 회사의 주거래 계좌일 경우 해당 업체는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계좌 지급정지를 풀려면 관련법상 사유를 본인이 증명해야 하고 금감원, 수사기관에 해당 계좌가 사기 이용 계좌로 이용됐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또 본인이 사기 사건 주체가 아니라는 점이 인정돼야 지급정지가 해제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신고한 이가 보이스피싱 사기 소송까지 내버린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소요 시간은 길어진다.

이 같은 피해를 당한 적 있다는 A업체 사장 B씨는 “신고자를 찾아 보이스피싱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위로금 혹은 합의금을 주면 동결 해제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금 100만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은 꼭 현금으로 받아 가니 더욱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금감원 사례 비일비재

▷잦은 허위신고…결국 법정행

올해 초 광주지법은 위계공무집행방해혐의와 사기혐의 등으로 기소된 C씨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C씨는 도박 사이트에서 돈을 잃고 난 후 앙심을 품고 도박 사이트 운영자로부터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해 보이스피싱 피해구제제도를 악용했다. 지인 6명을 시켜 수차례 ‘이 사이트에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허위신고를 하면서 사업주에게 합의금을 뜯어낸 혐의를 받았다. 도박 사이트 업주가 입은 피해 금액만 수억원에 달했지만, 불법 도박 사이트라 수사당국에 피해를 호소하기 쉽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C씨가 계속 영업을 방해하자 결국 법정에 세웠다. 허위신고를 도운 지인 6명에게도 벌금 500만~700만원이 선고됐다.

이 같은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2017년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2014~2016년 중 보이스피싱 피해를 이유로 20회 이상 유선으로 지급정지를 신청해 허위신고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70명, 이들 신청으로 지급정지된 계좌 수는 총 6922개에 달한다.

코로나19 이후 e커머스는 물론 모바일 쇼핑몰도 대폭 늘어난 터라 이런 사례는 더욱 많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135조원이었던 온라인 쇼핑 시장 규모는 지난해 150조원으로 급증했다.

시민단체 금융소비자원의 조남희 원장은 “현행법에서는 피해를 당한 업주가 오히려 ‘내가 보이스피싱을 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안은 없나

▷주거래 계좌번호 절대 노출 안 되게

대안은 없을까.

조남희 원장은 “당장은 주거래 계좌를 온라인에 노출시키지 않는 방법이 최선이다. 또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 보이스피싱 피해신고가 접수된다 해서 바로 계좌를 동결시킬 것이 아니라 에스크로 제도처럼 해당 금액만큼만 공탁기관에 맡기거나 혹은 보험 처리를 하는 방법도 검토해볼 수 있다. 지금처럼 경직된 소비자보호 정책 때문에 성장하는 온라인 쇼핑 시장만큼 범죄자가 기승을 부릴 소지가 부쩍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물론 금융감독당국도 손 놓고 있지는 않다.

여러 사이트를 돌며 100회 이상 지급정지를 신청한 범죄자가 나올 정도로 허위신고 사건이 기승을 부리자 금감원은 반복적으로 지급정지를 신청하는 이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죄질이 나쁜 이들은 ‘금융질서 문란행위자’로 등록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감독당국, 경찰에 빠른 시간 내에 알리고 신고자가 허위신고 의심자가 아닌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5호 (2021.06.30~2021.07.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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