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三中堂, 한류 그리고 대선

임상균 2021. 6. 2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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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칼럼]
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진보초 거리 큰 도로 양쪽에는 미즈노, 아식스 등 일본의 유명 스포츠 브랜드 대형 매장이 즐비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서점 약 160여개가 빽빽이 몰려 있다. 일본 사람들이 세계 최대 밀집형 고서점가라고 자랑한다. 그 틈바구니 속 작은 건물 3층에 ‘삼중당(三中堂)’이라는 한국 고서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이 있었다.

한국에 있는 동명의 출판사가 한국 문화를 일본에 알리고 싶어 1973년 개업한 도쿄지점이었다. 처음에는 도쿄역 인근 교바시에 열었는데, 곧바로 본사가 경영난에 빠지면서 매각을 하게 됐다. 이를 사들인 인물은 당시 2년 차 종업원이었던 사코 추하치 씨이고 40년 이상 고군분투하며 서점을 운영해왔다.

사코 씨는 서점을 2000년 진보초로 옮겼다. 이후 삼중당은 한국의 고서적은 물론 신간 서적, 각종 잡지, 교과서 등을 취급하는 한국 전문 서점으로 성장했다. 일본 지식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며 양국 간 지식 교류의 가교 역할을 했다. 일본의 저명한 학자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한국어를 조금 익힌 후 삼중당을 드나들며 ‘창작과 비평’을 접했고, 한국의 지성을 알게 됐다”고 삼중당을 추억했다. 서점 한편에는 한국 영화·드라마의 DVD와 K팝 CD 코너도 마련했다. 도쿄 특파원 시절 가끔 방문해보면 젊은 일본 여성들이 대거 몰려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한국 문화 전반을 일본에 소개하며 한류의 토대를 닦은 셈이다.

그러던 삼중당이 위기를 맞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 관계가 빠르게 냉각됐고, 한류는 ‘혐한’으로 급반전했다. 직격탄을 맞은 삼중당은 2014년 결국 문을 닫았지만 사코 씨는 자신이 평생 몸 바친 한류 전령사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었다. 독지가의 도움으로 지바현 사쿠라시에 작은 창고를 얻었다. 41년간 모은 15t 규모의 한국 서적을 모두 옮길 수 있었다. 최근에는 아마존을 통해 온라인 중고 서적 판매를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허접하지만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공지 코너에는 “침몰할 뻔한 조각배지만 책을 통해 한일 간을 연결하는 문화의 가교 역할을 다하겠다”는 사코 씨의 의지가 게재돼 있다.

삼중당 역사는 한일 양국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따라 흔들려왔다. 한국을 좋아하는 민간인으로서 한국과의 지식 교류, 한류 확산 등에 평생 기여했지만 거대한 파도를 거스르지 못했다.

요즘 한류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영화, 드라마, 음악은 물론 웹툰, 게임까지 전 세계적으로 K콘텐츠 인기가 치솟는다. 한류 확산의 전초 기지이자 거대 시장인 일본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류가 뜨면서 무신사, 지그재그 등 패션 플랫폼까지 일본에 진출한다. 코로나만 풀리면 한국을 가겠다는 일본 한류팬들이 줄을 섰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반일 감정만큼 폭발력과 결집력을 갖춘 소재도 드물다. 현 정권이든 다음 정권이든 자신들의 이익과 필요에 따라 언제든 반일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 민간에서 오랜 기간 쌓아온 작은 노력들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무너져버리는 일이 되풀이될 것 같아 안타깝다.

[주간국장 sky221@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5호 (2021.06.30~2021.07.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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