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 전액 보상의 그늘

배준희 2021. 6. 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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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요즘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원금 전액 보상’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라임 펀드, KB증권 호주 부동산 사태 등 지난해부터 굵직굵직한 금융사고가 잇따른 결과다. 손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어느 대형 증권사는 기자간담회까지 자청해 원금 전액 보상을 통한 고객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이를 지켜본 또 다른 대형 증권사는 막대한 손실 충당금과 이에 따른 배임 우려 등으로 속이 쓰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쯤 되면 원금 전액 보상의 그늘을 짚어볼 때가 된 것 같다. 무엇보다 원금 보상이 실제 고객 신뢰 회복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국내 금융 시장의 질적 도약으로 이어질 것인지다. 일선에서는 오히려 ‘원금 포비아’가 생겼다는 웃지 못할 반응이 쏟아진다. 대형 증권사 WM사업부 관계자는 “원금을 전액 보상해준다고 고객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상품 설명을 시작하면 녹음기부터 들이대는 고객과 원금 보장 발언을 유도하며 몰래 녹취하는 고객까지, 펀드 하나 팔기가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나 싶다”고 털어놨다.

사정이 이렇자 금융 상품 판매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운용 전략이 까다롭고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큰 상품은 일단 제쳐두고 보는 움직임이 만연하다. 한 사모운용사 펀드매니저는 “다양한 기초 자산과 고도의 금융 전략을 표방한 상품이 많이 나와줘야 금융 시장이 질적 발전을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어디로 고개를 돌려봐도 고만고만한 상품만 난무한다”며 “장기적으로 투자 문화의 다양성이 크게 퇴보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했다.

분산 투자로 아무리 개별 기업의 투자 위험을 헤지한다고 해도 시장에 뛰어든 위험만큼은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금융의 기본 명제다. 원금 전액 보상으로 금융 시장에 난 상처를 억지로 봉합해봤자 결국 상처는 덧날 뿐이다.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하는 금융 당국과 CEO의 단견(短見)이 아쉽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5호 (2021.06.30~2021.07.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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