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더 다양한 사람
‘시선2035’ 칼럼을 쓰게 되면서 비슷한 연령대 필자들이 다른 언론에 기고하는 글을 많이 찾아봤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의 생각이 궁금해서다. 그 가운데 특히 마음에 오래 남았던 것은 “더 다양한 사람의 글을 보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다.
여기에는 “언론이 성별·학력·지역·나이·직업·경제력 등 다양한 범주에 속한 시민의 글을 자주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젊은 엘리트의 목소리 말고 당사자의 이야기는 또 다른 힘을 가진다”는 이유에서다. 필자 주장대로 낯선 타인이 직접 들려주는 진솔한 경험은 사회에 울림을 주는 묵직한 한방이 될 수 있다.
이 글을 본 뒤 ‘다양한 범주에 속한’ 사람이 아닌 내가 2030의 시선을 대변한다며 신문에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청년 세대 문제를 조명한 책 『세습 중산층 사회』에 따르면 “90년대생은 출신 학교, 직업, 소득, 자산 나아가 결혼 등 사회적·문화적 경험에 이르기까지 다중의 불평등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일까. 당장 책에서 그 예로 설명된 “20대 내부에서 ‘주변부’를 형성하는 지방대생과 고졸자”의 삶도 잘 모르는데 말이다.
청년 세대에 속하지만 단지 나잇대만 운 좋게 맞아떨어졌을 뿐이라는 반성이 종종 밀물처럼 밀려왔다. 현재 20대가 느끼는 고단함을 공감한다고 하기에는 나는 그들보다 좋은 여건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땐 힘들었지만, 이미 지나온 터널이다. 이런 내가 어찌 ‘내 생각=2030의 마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항상 부끄러웠다.
25세 대학생인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의 임명에 청년들의 아쉬운 소리가 쏟아지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단편적’인 정치 이력만 있는 그가 다중적이고 복잡한 청년들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다.
졸업한 대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후배들은 “정치적 감투 몇 개만 거친 그가 어떻게 우리 마음을 알 수 있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대학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박탈감닷컴’이라는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청년 비서관이면 청년의 힘듦을 대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면서다. 온라인에서는 “준비된 청년이 아니라 여의도를 서성거리던 청년이 올라왔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왔다.
더울 땐 더운 데서 추울 땐 추운 데서 일하는 사람, 중소기업에 취업해 ‘청년내일채움공제’를 2년 동안 꽉 채워본 사람, 지방대 졸업생, 고졸…. 어른들이 이참에 큰맘 먹고 2030에 주목해준다고 한다면 ‘다양한 범주에 속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주길 바라는 건 욕심인 걸까. ‘더 다양한 사람’을 언론에서, 정부에서 보고 싶다.
채혜선 사회2팀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김흥국 뺑소니 보완수사···진실은 후방카메라에 찍혔다?
- 법대 나와야 명함 내민다? 내년 3·9 대선 흥미로운 현상
- "김정은 수척해져 가슴 아프다"…140㎏ 그의 '살까기 통치'
- 한국에 왜 세계 일류대학 없나··카이스트 총장의 일갈[이광형의 퍼스펙티브]
- 청와대, 김기표 경질…또 부동산 부실검증
- 웨딩숍 쇼윈도에 빅 사이즈 마네킹 진열했더니 벌어진 일
- 해산물 대신 쇠고기 넣는다고? SNS 난리난 경주 한우물회
- [르포]북한산 떠돌던 양순이, 견생역전 만든 '기적의 카페'
- "뒷자리 남자 손이 가슴에 불쑥" 美10대 올린 소름돋는 영상
- "잠수 뒤 다른 여자와 럽스타" 권민아 남친 양다리 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