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학폭 '사과' 처분 '양심' 침해일까?

2021. 6. 2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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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 자체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

이에 김군은 '서면사과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인격권을 침해한다'며 서면사과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하기 싫은' 사과를 강제로 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적 존재 자체를 파멸시키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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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 자체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 헌법재판소는 ‘양심’을 이렇게 풀었다.

김군은 페이스북 단체 대화방에서 동급생을 모욕하는 메시지에 동조했다. 이런 식으로 ‘왕따’를 당해왔던 동급생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김군 등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김군은 학교장으로부터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처분을 받았다.

이에 김군은 ‘서면사과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인격권을 침해한다’며 서면사과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하기 싫은’ 사과를 강제로 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적 존재 자체를 파멸시키는 것이라고.

피해학생에게 ‘사과’ 좀 하라고 했다고 이것이 어찌 양심을 침해한단 말인가. 갈기갈기 찢긴 피해학생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사과’도 못한단 말인가. ‘사과’를 ‘명’할 수 있도록 한 법은 개뿔이란 말인가.

재판부는 고민 끝에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물어보기로 했다. ‘서면사과 강제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 형성의 강요로 볼 수 있지 않느냐. 사과한다는 행위는 윤리적 판단과 감정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나름의 판단을 곁들여서.

헌법재판소는 어떤 판단을 할까. 예전 사례를 찾아봤다.

모 월간 잡지 1988년 6월호에 미스코리아 출신 여성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이 여성은 기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잡지사를 상대로 사죄광고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때만 해도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명예훼손에 ‘적당한 처분’으로 ‘사죄광고’가 당연시 되던 시대였다.

이에 잡지사는 명예훼손에 적당한 처분으로 사죄광고를 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 ‘양심’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문제를 삼았다.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개인의 자발적 의사가 아닌 법원의 판결로 강제되는 사죄광고제도는 사죄할 의사가 없음에도 사죄를 강요하는 것으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했다. 그 후, 법원이 명하는 사죄광고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물의를 일으킨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사죄광고를 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우리는 ‘양심’을 지키기 위해, 아니 다시 찾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다. 끊임없는 희생과 노력 끝에 지금 우리 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까지도 인정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오늘도 양심은 자신의 ‘절박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양심은 인간 존엄의 핵심이니까. 양심이 무너지면 인격적 존재 자체가 파멸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인격적으로 성장 과정에 있는 학생에게는 좀 달라도 되지 않을까? 교육 차원에서 말이다. 사과 편지를 쓰다 보면 조금이라도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지 않겠는가. 종종 자신의 행위로 인격이 파괴된 피해학생에게 미안한 마음도 생길 것이다. 그 정도면 ‘서면사과’가 낼 수 있는 훌륭한 교육 효과 아닐까.

법도 이런 점을 고려한 것 같다. 서면사과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다른 징계와 달리 제재를 가하는 규정이 없다.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인간 존엄의 핵심인 ‘양심’을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학폭 가해학생에게 강제성도 없는 ‘사과’를 ‘명’하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 형성의 강요’라기 보다는 ‘올바른 인격 형성을 위한 교육’으로 보인다.

‘서면사과’는 ‘사죄광고’와 달리 보아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어떤 판단을 할까. 기다려보자.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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