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케이팝까지..미디어 속 '학폭'이 달라졌다

박정선 2021. 6. 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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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왕따·성폭행 등 '장난' '실수' 아닌 '범죄'로 인식
ⓒ'말죽거리 잔혹사' '한공주' 스틸컷

“사람의 기억은 간사하다. 불리한 것은 쉽게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최면’ 속 주인공의 말이다. 영화가 그리는 현실은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우리 사회와 꼭 닮아있다. 학폭과 왕따 등의 사회적 이슈를 떠올리게 하면서,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곱씹어야 할 질문들이 러닝타임 내내 이어진다.


학폭(학교 폭력) 논란이 휩쓸고 간 연예계엔 작은 변화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들은 물론, 이를 소비하는 이들까지 학폭에 대한 표현과 시선이 달라졌다. 10대의 치기어린 실수, 혹은 장난으로 여겨졌던 학폭이 이젠 엄연히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연말 개봉을 예고한 영화 ‘RGB’ 역시 서바이벌 스릴러 장르를 내세워 학폭 피해자의 복수극을 담는다. 연출을 맡은 이범 감독은 “초·중학교 학폭 피해자로서 학폭을 근절하고 싶은 마음에 연출을 하게 됐다”며 “영화를 통해 가해자들이 무심코 저지른 학폭으로 얻은 상처를 평생 간직하고 사는 피해자들의 입장을 보여주고, 가해자들에게는 진심어린 사과가 피해자들을 치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여자주인공과 학교 폭력에 연루되어 고뇌하는 남자주인공을 통해 사춘기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사랑과 우정, 성장통을 그려낸 웹툰 원작의 드라마 ‘러브 앤 위시’도 하반기 영화 및 OTT 플랫폼을 통해 공개를 앞두고 있다. 가요계에서도 학폭을 모티브로 한 곡 ‘엑시트’를 T1419가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학폭은 꾸준히 지속돼온 사회적 문제로, 이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꾸준히 제작되어 왔다. 다만 지금 이 작품들이 주목을 받는 건, 학폭 이슈가 연예계를 휩쓴 현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학폭 이슈에 편승한다는 부정적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 이들이 학폭을 어떻게 그리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 예로 과거 8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친구’(2001)는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준석(유오성 분)과 동수(장동건 분)의 우정과 갈등을 그렸다. 이들은 동급생들의 우두머리로, 폭력도 불사하는 일탈을 즐기는 인물로 묘사됐지만 영화는 ‘폭력’보단 두 사람의 ‘의리와 갈등’에 초점을 맞췄고, 관객 역시 이 부분에 열광했다.


‘말죽거리 잔혹사’(2004) 역시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큰 사랑을 받은 영화다. 고등학생들이 일진 자리를 놓고 세력 다툼을 하는 장면은 당시 관객들의 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밖에도 과거 청소년의 비행을 다룬 영화들에선 대부분 학폭 장면들이 다수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교생들의 ‘의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대다수였다.


반면 최근 영화들에선 피해자의 시점에서 사태를 고발하고, 경각심을 심어주는 식이다. 특히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한공주’(2013)는 실제 사건을 기초로, 집단 성폭행을 당한 평범한 소녀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시달리면서 사회로부터 외면 받는 내용을 담으면서 호평을 얻었다. 최근 개봉하는 영화들 역시 학폭을 지나가는 수많은 현상들 중 하나가 아닌, 극의 전면에 내세우면서 문제를 부각시킨다.


한 영화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문화, 콘텐츠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저 역시 과거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를 문제의식 없이 재미있게 즐겼던 세대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들도 학폭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저 어린 시절의 비행 중 일부분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이 영화들을 만든 사람들의 인식이 부적절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최근엔 학폭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콘텐츠들도 초점을 달리 하기 시작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들은 물론, ‘한공주’ ‘우아한 거짓말’ 등 다수의 작품들이 피해자들의 현실적인 아픔을 그리고, 또 일부는 현실에선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통쾌한 복수로 극을 만들면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끈다. 이 역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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