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다급하게 걸려온 소중한 사람의 전화, 알고보니..

노유림·이주연 2021. 6.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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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번호로 걸려온 전화, 콜백하니 '006 83 010..'
검찰·병원 사칭 연락하기도
전문가 "출처 모르는 링크·앱 클릭 금지"
실제 이씨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 내역. 확인 결과 이씨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딸이 아닌 피싱범이었다. 독자 제공


지난 16일 오후 9시쯤 20대 자녀를 둔 50대 남성 이모씨에게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세상에서 젤 착하고 이쁜 00이’라고 저장된 딸이었다. 이씨가 전화를 받자 “다리가 부러졌다”는 취지로 울먹이는 음성이 들렸다.

발신자가 딸이라고 확신한 이씨는 “울지 말고 얘기해봐, 무슨 일이라고?”라고 되물었다. 이번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아저씨가 옷을 벗겼어.” 당황한 이씨는 휴대전화를 놓쳐 실수로 전화가 끊어졌다. 다시 떨리는 손으로 ‘세상에서 젤 착하고 이쁜 00이’라고 뜬 문구를 눌러 딸과의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씨가 전화를 걸자 휴대전화 화면엔 ‘006 83 010-(이하 실제 딸의 번호)’란 숫자가 떴다. 통상적으로 ‘006’ 시작번호는 국제전화이며 그 뒤에 국가번호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83’의 경우 국가번호가 공백이라 이 숫자가 있다면 보이스피싱일 확률이 높다. 그제야 보이스피싱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이씨는 아내의 휴대전화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고, 딸이 안전한 상황임을 확인하고서야 악몽 같던 시간을 끝낼 수 있었다.

이씨의 사례는 전화를 끊지 않고 얘기를 이어갈 경우 원격조정 앱을 깔게 해 신분증, 계좌 비밀번호 등을 탈취해 범죄에 악용하는 신종 금융사기 방식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25일 “최신 피싱 사례로 빈번하게 보이는 수법”이라며 “딸이 맞는지 확인한 것은 잘한 대응”이라고 했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금융사기 수법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인데요, 일단 입원비부터 입금하세요. 계좌는…"
게티이미지뱅크

“XX병원입니다. 김모씨 맞으시죠? 다름이 아니라 지금 어머님 박모님께서 교통사고가 나셔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오셨어요.”

30대 김씨는 얼마 전 회사에서 업무를 보던 중 급박한 연락을 받게 됐다. 어머니가 크게 다쳐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병원 측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은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황이라며 입원비를 먼저 입금한 후 내원하면 수술비 등 납부 처리를 돕겠다고 안내했다. 입금해야 할 계좌번호와 금액은 문자로 안내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당황한 김씨는 전화를 끊은 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전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병원이라고 주장하는 상대로부터 ‘XX로 XX번지 XXXX병원 B병동 302호’라는 내용과 함께 김씨의 어머니 이름, 입금해야 하는 계좌번호 등이 적힌 문자를 받았고 입원비로 50만원을 입금했다. 그러나 ‘병원 측으로 다시 연락을 취해봤냐’는 친구의 말에 김씨는 의심을 하였고, 인터넷에 병원 연락처를 검색해 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그런 환자는 없다”고 답했다. 사기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병원, 공공기관 등에서 긴박한 상황임을 내세워 금전적 요구를 하는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 우선 전화를 끊은 후 인터넷으로 해당 기관을 검색해 직접 연락을 취해 사실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병원 측의 연락이 금융사기로 의심된다면 실제 있는 병원인지부터 찾아봐야 한다. 만약 있다면 병원 연락처로 전화를 해 환자가 응급실에 있는 상황인지 물어보는 게 좋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로 해당 부서에 연락을 취해 금전적 요구를 받았다는 상황을 설명하는 게 먼저다.

"보이스피싱으로 이자만 매달 800만원…검찰 사칭 피해 봤다"
지난해 1월 20일 서울중앙지검 김민수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이 20대 취업준비생을 상대로 420만 원을 가로채 죽음으로 내몬 사건이 발생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용했던 가짜 검사 명함과 공무원증. 부산경찰청 제공

지난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난 3월 남편이 보이스피싱 피해로 7억원을 잃었다’는 글이 게재됐다. 글쓴이는 “제목을 쓰면서도 기가 막힌다. 예금·적금도 제대로 없고 가진 거라곤 집 한 채인 홑벌이 직장인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 거액을 현금으로 갖다 줬을까”라고 호소했다.

글쓴이의 남편 A씨는 어느 날 검찰로부터 ‘범죄에 연루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처음 전화를 건 피싱범은 “000 검사가 수사 때문에 통화를 해야 하니 전화가 연결되면 받으라”는 공식적인 말투로 안내했다. 이에 A씨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일당들은 검찰, 금융감독 등으로 속여 정신없이 전화를 돌려대기 시작했다.

이들은 각종 위조된 공문을 보여주고 영상통화까지 하며 A씨를 속였고, 인증프로그램이라며 해킹 앱까지 깔게 했다. 개인정보를 해킹한 일당은 A씨의 위치 등 모든 정보를 파악해 사기에 활용했고, A씨는 이들을 관공서 직원으로 신뢰하며 지시에 응했다. 결국 A씨는 총 6회에 걸쳐 예금, 카드론, 신용대출, 집 담보대출금을 모두 현금으로 전환해 직접 ‘수사관’이라는 사람을 만나 건넸다.

국민일보DB


이후 금융사기임을 뒤늦게 알아차린 A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해결책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대면 편취 보이스피싱은 구제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다.

A씨의 사례처럼 검찰을 사칭해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검사와 수사관들은 검찰청 사무실 전화가 아닌 개인번호로 연락을 취하지 않는다. 사무실 전화로 연락을 하더라도 개인의 계좌번호나 통장 비밀번호 같은 금융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 검찰청 출석 요구나 진술 확보 목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대가 검사라고 소개하며 금융정보를 요구하거나 개인정보 등을 들먹인다면 금융사기를 의심해봐야 한다.

금융사기 피해 막기 위해선? "모르는 앱·링크 접속하지 말아야"

국민일보DB

금감원은 “연령별, 성별에 따라 취약한 특정 금융사기수법이 있다”며 “특히 40·50대 남성은 대출빙자형 사기에, 50·60대 여성은 사칭형 사기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이기동 소장은 최근의 금융사기수법을 언급하며 “지능적인 사기범들의 경우 자신이 공신력 있는 기관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며 링크나 인증사진 등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링크에 접속하는 것조차 악성 해킹의 근원이 될 수 있다”며 “보이스피싱 여부를 확인하는 경우 꼭 연락을 끊고 홈페이지 등으로 실제 유관부서 연락처를 알아내 확인 전화를 걸어보는 게 좋다”고 짚었다.

이 소장은 보이스피싱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출처가 불분명한 파일은 절대 다운로드하지 않고, 의심이 갈 만한 링크도 눌러보지 않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잘못 내려받은 파일이나 실수로 접속한 웹사이트에서 개인정보가 빠져나가면 더욱 교묘한 보이스피싱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보이스피싱으로 거액의 피해를 보았다 하더라도 ‘30분의 골든타임’ 내에 빠르게 조치한다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지연인출제로 인해 100만원 이상의 금액이 입금되는 경우 30분 동안은 출금이나 이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거액을 입금하고) 30분간은 사기범들이 통화를 끊지 못하게 하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끄는데, 이때 30분 내로 1332번(금융감독원 콜센터)으로 연락하거나 경찰청 등에 전화해 피해 상황을 밝히면 금액을 환급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의 피해예방 수칙

☑ 실제 가족, 지인이 맞는지 반드시 직접 전화통화로 확인
* 납치‧협박‧부상 등 전화를 받은 경우 가족 등의 안전을 직접 전화해서 확인

☑ 긴급한 상황을 연출하더라도, 전화로 확인 전에는 절대 송금 금지
* 지금 당장 송금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독촉하더라도 전화 확인이 우선

☑ 가족․지인 본인이 아닌 타인의 계좌로 송금요청시 일단 의심
* 가족 등의 본인의 계좌번호를 알려줄 것을 요구하고, 타인계좌로 송금 금지

노유림·이주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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