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 말고 샤퀴테리!

이경진 2021. 6. 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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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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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샤퀴테리의 이름 네댓 개쯤 술술 나열할 수 있게 됐다. 이탈리아 햄인 프로슈토와 살라미, 프랑스의 잠봉과 파테, 스페인의 이베리코 하몽…. 샌드위치와 샐러드, 파스타의 재료로 쓰이며 어느새 식탁의 주연이 된 샤퀴테리는 프랑스어다. 육식이 발달한 유럽에서 고기나 고기 부속물을 염장한 육가공품을 두루 일컫는다. 왜 하필 프랑스 단어를 쓰냐 하면 프랑스 음식이 미식 신에서 가장 먼저 인정받았기 때문. 사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샤퀴테리는 종류가 단순하다. 파르마 지역에서 생산하는 프로슈토에는 왕관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같은 지역에서 나는 고급 치즈 ‘파르미자노 레자노’의 유청을 먹여 키운 돼지라는 차별점 정도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유명해진 스페인의 하몽은 사정이 좀 다르다.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하다. 스페인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와 달리 백돼지뿐 아니라 흑돼지 품종으로도 샤퀴테리를 만든다. 스페인에서도 흑돼지는 귀한 품종에 속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베리코는 ‘파타 네그라’라는 특정 흑돼지 품종의 뒷다리를 염장한 것. 귀한 품종의 뒷다리만 골라 쓴 이베리코가 진귀한 취급을 받는 이유다. 이베리코는 등급도 매겨진다. 가장 낮은 등급에 속하는 ‘세보’는 50% 이상이 흑돼지 혈통에 해당하는 교배종으로 일반 곡물 사료를 먹여 키운다. 다음 등급인 ‘세보 데 캄보’는 세보와 같은 비율의 혈통성에 더욱 엄선한 곡물 사료를 먹이며 방목한다. 상위 등급에 해당하는 ‘베요타’는 75% 이상의 혈통성을 지닌 흑돼지 교배종으로 도토리를 먹여 키운 것. 순종 흑돼지로 만든 최상위 등급 베요타 100%는 가장 고소하고 결이 고우면서도 쫀득쫀득하다. 스페인의 하몽이 이웃 국가에 비해 세분화된 이유는 다양한 조리법이 섬세하게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주로 샤퀴테리를 조리를 위한 재료로 활용하는 반면, 스페인은 햄 자체를 즐긴다. 그래서 샤퀴테리의 맛만 놓고 본다면 하몽 맛이 가장 뛰어나다. 유난히 삼겹살을 선호하는 국내에서 최근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즐기는 식문화가 생겼듯이 스페인에서도 부위별로 샤퀴테리를 일컫기 시작했다. 앞다리에 해당하는 ‘팔레타’는 뒷다리보다 지방이 많고 숙성 기간이 비교적 짧아 고소한 지방 맛이 강하다. 척추를 따라 형성된 근육으로 만든 ‘로모’, 목살 주변의 근육을 숙성시킨 ‘로미토’는 둘 다 이베리코보다 지방층이 발달했다. 이 부위들은 지방 함량이 높은 만큼 자칫 냄새가 날 확률이 있으므로 소금에 재울 때 마늘, 파프리카 등의 향신료를 곁들이는 편이 좋다.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면 팔레타와 로모, 로미토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이베리코의 절반 가격이다. 어설픈 등급의 이베리코를 먹느니 차라리 다양한 부위를 맛보며 자신의 샤퀴테리 취향을 다시 탐구해 보자.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가능하다면 샤퀴테리는 현지에서 슬라이스해서 물 건너오는 제품보다 덩어리째 들여와 국내에서 썰어내는 제품을 즐기기를. 백화점이나 샤퀴테리 전문점을 찾으면 즉석에서 핸드카빙해 줄 것이다. 온라인을 통해 국내에서 카빙한 존쿡델리미트나 벨로타벨로타의 샤퀴테리 제품을 만날 수도 있다. 질 좋은 샤퀴테리를 구매한 다음에는? 그 자체로 맛있으니 그저 포크로 돌돌 말아 먹으면 그만이다. 단, 먹기 30분 전에 냉장고에서 꺼내 실온 보관하는 편이 좋다. 지방이 녹아 고소한 풍미가 살아나는 동시에 식감은 부드러워질 테니까. 염도를 낮춰 고소한 풍미를 더하고 싶다면 올리브오일과 함께 먹어보자. 토마토소스 혹은 스페인 치즈인 만체고를 더하면 더욱 이국적으로 즐길 수 있다. 이베리코, 토마토소스, 올리브오일, 만체고 치즈에 바게트만 있으면 바르셀로나에서 줄 서서 먹는 ‘보카디요 데 하몽’이 완성된다. 귀한 샤퀴테리 한 장은 비용과 시간을 줄여주기도 한다. 손님을 초대하고 싶은데 요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일단 질 좋은 이베리코를 구해두자. 생색내며 술안주로 즐기다가 남은 이베리코로 보카디요 데 하몽을 만들어주면 게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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