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보다 싼 막걸리.. 그럼에도 지켜내겠습니다"
[월간 옥이네]
▲ 충북 옥천의 막걸리 |
ⓒ 월간 옥이네 |
한국인의 밥상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장과 김치가 대표 예. 그 오랜 역사만큼 재료나 만드는 법도 다양해 맛도 각양각색이다. 요즘이야 된장, 고추장, 간장은 물론 김치도 사먹는 경우가 많으니, 집집마다 달랐던 그 맛은 이제 지난 세대의 추억이 되고 있지만.
장과 김치만큼이나 우리 민족이 사랑하고 즐겼던 '술'도 집집마다 다른 맛을 갖고 있었다. 집에서 직접 담그는 '가양주'는 지역에 따라, 가문에 따라, 빚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랐고 '명가명주(名家銘酒, 이름 있는 집안에 맛있는 술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문의 자랑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외지 방문객에게 지역 막걸리를 맛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이때의 술 문화가 얕으나마 이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삼국시대부터 일본과 중국까지 이름을 알릴 정도로 우수성을 널리 인정받아온 우리 술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본격적인 쇠퇴기에 들어선다. 1916년 일제가 주세법을 공포하며 가양주를 불법으로 간주해 단속하고 양조장을 통폐합하기 시작한 것. 이는 해방 이후에도 이어지는데 식량 부족을 이유로 정부 차원에서 주류 생산을 제한했고, 1965년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증류식 소주까지 금지되기에 이른다.
'막걸리 열풍'에도 사라지는 지역 양조장
▲ 보글보글 익어가는 막걸리, 그리고 그 막걸리가 담긴 항아리들 |
ⓒ 월간 옥이네 |
가양주가 금지된 이후 '집에서 술을 빚어 먹는 것'은 오랫동안 '불법'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2008년 즈음 일본에서 막걸리 유행이 이어지고 2009년엔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전통주를 빚고 마시는 것에 대한 인식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 국순당, 서울탁주 등 기존 양조기업의 세도 함께 커진다.
하지만 전통주에 대한 관심과 막걸리 시장의 확대가 지역 소규모 양조장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캔 막걸리 제품이 나오는가 하면 한때 편의점 주류 매출 상위권 순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던 막걸리 열풍은 지역 양조장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이 1인 또는 가족 경영 형태의 영세사업장이다 보니 막걸리 상품 개발이나 판로 확대가 쉽지 않던 것이다.
농촌 인구 감소와 함께 '농주'인 막걸리도 들판에서 하나 둘 모습을 감추면서 지역 양조장은 아는 사람만 아는 곳, 현재 운영자가 사라지면 문을 닫고 말 옛 문화의 상징이 됐다.
충북 옥천의 양조장 역시 비슷한 쇠퇴기를 지났다. 면마다 최소 하나씩, 읍에는 10여 개에 달하는 양조장이 있었다지만 경영의 어려움 등으로 문을 닫거나 다른 면 양조장과 통폐합됐다. 안남양조장은 군북양조장으로(군북안남 탁주공동제조장), 군서양조장은 옥천양조장으로(옥천동서 탁주공동제조장) 통합된 것.
양조장 폐업은 비교적 최근까지 이어졌는데 지난해에는 청성면 산계리에 있던 청성양조장이 문을 닫았다. 이렇게 해서 현재 남아있는 옥천의 양조장은 ▲ 군북양조장 ▲ 옥천양조장 ▲ 이원양조장 ▲ 안내양조장 등 4곳. 이 중 대를 이은 양조장은 두 곳, 군북양조장과 이원양조장이다.
▲ 막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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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양조장의 증약막걸리는 옥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홍상경(75), 최순자(69)씨 부부가 이 양조장을 운영해온 1985년부터 부부의 장남 홍정일(49)씨가 이어받은 현재까지, 대전 식당가에서 '증약막걸리'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맛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나 직접 맛을 본 손님들은 대전뿐 아니라 서울부터 부산까지 전국에서 찾아온다. 양조장 간판의 '맛으로 승부한다'는 말이 마냥 선언에 그치기만 한 것은 아닌 셈이다.
"옛날에는 큰 말통에 술을 받아갔잖아요. 우리 양조장 위에 버스정류장까지 말통 들고 들락날락 했었지. 주변 마을로는 88오토바이에 몇 말씩 싣고 직접 배달하러 가기도 했고."
1980년대 양조기술관리사로 일한 남편 홍상경씨가 관리했던 남부3군(옥천·보은·영동)의 양조장만 34~35개에 달했다고 회상한 최순자씨는, 병술 개념이 없던 당시 각자 술통, 술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을 찾던 풍경을 풀어내기도 한다. 술통을 이고 지고 버스를 타고 술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문전성시를 이루던 시절.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증약막걸리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홍정일씨의 자부심이자 일하는 원동력이다.
▲ 옥천 군북양조장 홍상경, 최순자씨(왼쪽)와 홍정일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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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 군북양조장의 막걸리 병 주입 시설과 막걸리 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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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낮게 책정된 시장 가격은 운신의 폭을 좁게 한다. 고급화 전략으로 비싼 막걸리도 유통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막걸리는 '저렴한 술'이라는 소비자 인식이 있는 것. 원재료 값은 1년에도 몇 번씩 오르지만 10여 년이 넘게 예전 가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아쉬움이자 어려움이다.
"당장 편의점에만 가봐도 500㎖ 보리차 한 병보다 900㎖ 막걸리 가격이 더 싸요. 도저히 불가능한 가격으로 납품을 요구하는 판매처도 있고요. '막걸리는 싼 맛에 먹는다'는 인식이 있으니 시장도 이렇게 형성되는 거겠죠. 여러모로 아쉬움이 있어요."
하지만 이 속에서도 막걸리는 계속 살아남으리라는 게 홍정일씨의 생각이다. 다양한 술이 쏟아지면서 막걸리에 대한 관심도 한풀 꺾인 듯하지만,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지켜온 술로 그 역사가 쉽게 끊기지는 않으리라는 것. 그런 흐름을 자신의 자리에서 잘 지켜가고 싶다는 게 홍정일 씨의 바람이기도 하다.
"막걸리는 재료는 물론이고 만드는 날의 기온이나 습도, 또 사람에 따라서 맛이 달라져요. 같은 사람이 같은 재료를 써도 완전히 똑같은 술이 나오지 않아요. 또, 갓 나온 막걸리와 3일 후, 한 달 후의 맛이 다 다르고요. 그런 게 생막걸리의 매력이에요. 이런 살아있는 매력이 있는 한 막걸리는 계속 서민의 술로 남아있을 거예요.
[이원양조장] 우리 농산물 사용한 막걸리로 전통 잇는다
▲ 옥천 이원양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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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세 가지 있다. 쌀과 누룩, 그리고 물. 4대째 이어지고 있는 이원양조장은 1930년대 물 좋은 금강변에서 시작됐다. 잦은 홍수를 피하려 현재의 강청리 자리로 옮겨온 게 1949년.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한국전쟁 등 역사책에서나 보던 근현대사 어딘가에 이원양조장도 함께한 것이다.
90여 년의 세월을 지나 현재 이원양조장을 지키고 있는 이는 강현준(51)씨. 증조부 강재선씨에게서 시작돼 할아버지 강문회, 아버지 강영철씨의 뒤를 이어 막걸리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그이지만 '시작은 단순했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이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버지의 낡은 양조장'을 고치면서부터이기 때문. 연로한 나이에도 양조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아버지께 '양조장 술방이라도 좀 고쳐드리겠다'며 시작했던 게 현재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업을 잇는다'는 포부를 읽어내려는 '흔한' 시선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에게 가닿는 이런 눈길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지점도 있다. 그가 만들어내는 우리 쌀 100% 막걸리 '시인의 마을'과 우리 밀 100% 막걸리 '향수'다. 그는 이번에도 '시작은 단순했다'고 말한다.
▲ 옥천 이원양조장 강현준씨 |
ⓒ 월간 옥이네 |
▲ 옥천 이원양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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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밀 모두 강현준씨가 직접 농사짓고 부족한 것은 옥천 혹은 인근 지역에서 나는 것을 수매해온다. 지난해에는 안남면에서 생산된 밀을 사용하기도 했다. 가격이나 수급 문제가 맞지 않아 올해는 아산, 천안 등지에서 밀을 가져온다.
누룩을 직접 만들어 쓰는 것도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물이나 밀, 쌀 등의 재료로는 맛에서 큰 차이를 내기 어렵지만 누룩을 통해서는 술에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다는 게 강현준씨의 이야기. 때문에 번거롭고 힘들어도 누룩 만드는 일까지 도맡는다.
그가 올해 야심차게 선보인 증류식 소주 '수작'과 '풀섶이슬' 시리즈도 눈여겨볼만하다. 막걸리 '향수'를 증류해 각각 도수에 따라 내놓은 '수작'(25도), '풀섶이슬'(18도, 38도)로 내년부터는 숙성 제품도 함께 선보일 계획.
위스키를 담았던 오크통을 공수해 이곳에 증류식 소주를 넣고 1년, 3년, 5년 숙성해 내놓겠다는 것. 오크통의 참나무 향과 앞서 베어든 위스키 향으로 우리 증류식 소주에 새 옷을 입히고 싶다는 뜻도 있다. 그가 이렇게 증류주까지 도전하게 된 것은 기존 막걸리를 좀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의지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 파쇄된 누룩과 고두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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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가격에 대한 고민도 떨칠 수 없다. 직접 농사도 짓고 우리 농산물을 사용해 술을 빚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해선 그도 할 말이 많을 수밖에.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박리다매'에 머물러있죠. 아무래도 싸고 풍부하게 마시는 술이라는 개념이 크니까요. 그나마 저희는 '향수'나 '시인의 마을'이 가격대가 좀 있지만 이런 류(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는)의 막걸리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에요.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농산물이나 농산물 가공품이 비싼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우리 농정 구조와 농산물에 대한 인식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건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막걸리뿐 아니라 농업 자체에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는 부분이죠. 그래도 기존에 해오던 것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에 맞게 바꿔가면서 이어가야죠.
농주에 인공감미료가 들어가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은데, 다만 술맛이 단맛 하나로 획일화된 부분은 있어요. 아무래도 소비자 취향에 맞추다 보니 그런 것도 있는 거죠. 우리 전통이 조금씩 복원되다 보면 이런 부분도 점차 다양해지지 않을까요."
지역 문화로 '막걸리'를 바라보기
▲ 막걸리는 쌀을 비롯한 지역 농산물을 원료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 농촌, 먹거리 산업과도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더불어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만큼 이를 지역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옥천 이원양조장 안에 마련해놓은 옛 주막 풍경. |
ⓒ 월간 옥이네 |
막걸리 등 지역 전통주는 기본적으로 '쌀'을 원료로 한다. 지역마다 밤이나 잣, 고구마, 울금 등 특산품을 섞어내기도 하기 때문에 지역 농산물 판매와 소비 촉진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때 많은 지자체가 지역 특산물을 홍보하고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막걸리 개발에 뛰어들었던 것도 이 때문.
옥천에서도 지역 특산물이 들어간 막걸리를 맛볼 수 있던 때가 있었다. 2009년 군북양조장 홍상경 대표가 복숭아 축제에서 복숭아 막걸리를 선보였던 것. 현장의 폭발적 인기와 함께 이후 열린 포도·복숭아 축제에서도 종종 포도·복숭아 막걸리를 만날 수 있었지만 지역 특산물 막걸리 개발로 이어지진 못했다. 시장 경쟁력이나 원료 수급 문제 등이 면밀히 검토되지 않은 데다 마케팅 비용 등 예산이 필요하다는 이유 등으로 지자체 차원의 지원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가양주'에 대한 아쉬움도 남았다. 과거 구읍 춘추민속관을 운영하며 '문향헌 약주'라는 가양주를 직접 빚기도 했던 정태희(대전)씨는 "청풍 김씨 가문의 가승(家乘)에 보면 '흥선대원군이 이곳을 찾았을 때 집에서 만든 술을 내줬다'는 기록이 있어, 이것을 보고 '문향헌 약주'를 만들기도 했다"며 "옛날 명문가마다 가양주가 있었다는 것에 착안해 춘추민속관 문향헌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읍 쪽 오래된 한옥 등을 유지해온 집안에는 분명 가양주 전통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이것을 발굴하고 계승한다면 좋은 지역 문화가 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이원양조장 강현준 씨 역시 지역 문화 계승 차원의 '술' 발굴을 이야기한다. "가양주나 지역 양조장 막걸리는 전통과 역사 계승의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한 그는 "옥천처럼 이렇게 양조장이 많이 남아있는 곳을 현재는 거의 찾을 수 없다"며 "오랜 어려움 속에서 자리를 지켜온 양조장을 지역 차원에서 문화자원화하고 우리 지역만의 특화된 관광 자원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각 양조장을 연결하고 개별 막걸리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것도 좋은 지역 관광 정책이 될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이 동네는 술맛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http://omn.kr/1u2bm
월간옥이네 통권 48호(2021년 6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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