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바닥도 흔들..'전통 춤' 개념 뒤집은 공연 '산조'
재료가 ‘산조(散調)’인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한국의 악기로 연주하는 산조는 ‘흩어진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불규칙하게 흘러간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이 음악에 대해 “한국의 전통 음악 중 가장 현대적”이라며 포착해 낸 이는 정구호. 패션 디자이너로 시작해 공연ㆍ영화ㆍ인테리어 등 전방위 문화 연출가로 활약하고 있다.
전통 춤을 계승하는 국립무용단의 무대였다. 정식 공연을 하루 앞두고 전막 시연회가 23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렸다. 첫 장면에 홀로 나온 무용수는 전통적 장구와 거문고의 산조와 함께 했다. 그 곁에는 지름 6m의 대형 바위가 내려왔다.
음악이 특별했다. 사운드 엔지니어 황병준이 공연을 위해 녹음한 산조는 이선화(거문고), 김동원(장구)의 연주였다. 현을 뜯는 소리까지 생생히 녹음된 음원은 산조의 정통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1인무는 2인무, 군무까지 이어졌다.
두번째 막에서 해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무용수 10여 명이 다양한 길이의 검은 막대를 들고 나와 파격적 리듬에 맞춰 움직였다. 작은 모티브가 끝없이 반복되는 서양 음악의 미니멀리즘 패턴처럼 같은 리듬이 반복됐고,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상승했다. 드디어 균형이 깨졌다. 흑백의 조화를 뚫고 샛초록 옷을 입은 무용수가 등장해 자유로움을 표현했고, 보라색 군무단이 다시 한번 색을 불어넣었다.
사운드는 더 용감히 현대를 향했다. 전자 음향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넣었고, 서양 현악기와 신디사이저까지 섞였다. 여기에서도 무한히 반복되는 중심 리듬이 점점 거세지더니 급기야는 객석의 밑바닥까지 진동에 흔들릴 정도로 강한 에너지를 뿜었다. 리모델링을 마치고 3년 반만인 이달 재개관한 해오름극장의 스피커 132개가 몰입형 사운드를 가능하게 했다.
마지막 막은 느리고 강한 리듬으로 시작해 급진적 현대성을 품었다. 이제 완전히 해체된 산조는 금관 악기(호른, 트럼펫, 트롬본)의 강렬한 소리에 오르간, 현악기, 신디사이저가 함께했고 여기에 얼후, 아쟁, 북이 더해졌다. 불규칙한 리듬의 산조는 이런 악기들이 끌고가는 일정한 비트 위에서 묘하게 어긋나면서 새로운 결합을 창조했다. 이 음악은 별도의 악보 없이 연주자와 작곡가 김재덕의 즉흥연주와 협업으로 완성됐다.
3막에서 전통 무용수들은 비보잉 대형으로 서서 배틀하듯 춤을 추고, 격식 없이 자유롭게 무대를 휘저었다. 같은 리듬을 15분동안 170여회 반복하는 라벨의 20세기 무용음악 ‘볼레로’처럼 한국의 19세기 산조가 에너지를 발산하는 광경이었다.
총 3막 9장으로 된 이번 공연은 한국 무용의 최진욱, 현대 무용의 임진호 안무가가 협력해 만들었다. 임진호 안무가는 ‘산조’ 메이킹 필름에서 “전설적 무용수 피나 바우시가 국립무용단의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전통의 요소가 현대 예술에 제공하는 영감에 대해 설명했다. 2013년부터 국립무용단과 함께 작업해온 정구호는 같은 영상에서 “그간의 작업 중 가장 현대화한 무대”라고 소개했다.
한국의 전통 음악 중에서도 특히 비대칭적이고 정형화되기 힘든 음악이 산조다. ‘산조’를 만든 예술가들은 이러한 불규칙이야말로 가장 최신의 경향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산조’는 24~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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