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메모리즈㉟] 김태희, 중소기업 마스크 모델 뒤엔 '장옥정 의리'
일명 ‘김태희 마스크’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지난 6월 11일 TV를 통해 CF가 전파를 타기 시작했고, 국가대표 조각 미녀 김태희만큼이나 생김새도 색깔도 예쁜 덕에 품절 대란이 일고 있다.
김혜수가 고기 굽는 주방 기구 자이글 모델을 하는 등 톱스타들이 간간이 중소기업 제품을 모델을 하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김태희는 어떻게 작은 회사의 마스크 모델을 하게 됐을까.
제조사 이름을 봐선 답이 나오지 않는다 싶더니 비밀은 마케팅을 전담한 회사에 있었다. 각종 공산품에서 식품을 홍보하고 기업과 지자체 온·오프라인 강연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와 배우 김태희, 언뜻 접점이 떠오르지 않는 두 인물의 인연은 무엇일까.
김태희와 마케팅사 대표를 한 자리에서 목격한 것은 지난 2013년 여름이었다. 당시 배우 김태희는 4월 초에서 6월 말까지 방영한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막 마무리한 때였다. 방영 전부터 시작해 6개월을 캐릭터에 스며들어 연기했고,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연기력 논란’을 지운 참이었다.
연기에 대한 준비 없이 갑작스레 배우가 되고, 처음부터 주인공이 맡겨지고, 시청률이 잘 나오자 계속해서 출연작이 밀려들어 ‘일’로서 연기를 했던 게 연기력 논란을 키웠다. 하지만 김태희는 쉴새 없이 돌아가는 바퀴를 멈추고 연기 공부에 매진하고 장옥정을 분석했다. 그 결과, 숙종과 인현왕후 사이에 선 패악스러운 장희빈이 아니라 사람 장옥정의 새로운 면모를 설득력 있게 소화했다.
침방 나인으로 시작해 조선의 패션디자이너로 성장해 가는 커리어우먼, 이순(숙종의 휘)이라는 남자를 연모하여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기에 궁녀에서 후궁으로 간택되어 희빈에까지 오를 만큼 숙종의 총애를 받았던 여인, 자식을 잃고 복수의 화신이 되어 우리가 익히 봤던 모습의 표독스러운 모사꾼, 숙종에게 정치적으로 버림받아 사약을 마시는 비운의 결말까지 훌륭히 소화했다,
김태희 배우 인생에 최고라 할 연기가 가능했던 건 절차탁마의 노력에 더해 유아인이라는 상대 배우도 한몫했다. 손바닥은 맞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법, 이순 역의 유아인이 공명하여 좋은 소리가 나왔다. 두 주연의 열연 덕에 숙종-장희빈-인현왕후의 궁중 잔혹극이 아니라 사극 멜로의 새 지평을 연 작품이 됐다.
그렇게 연기 칭찬 속에 드라마가 종영된 뒤 김태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각 언론사 방문 인터뷰를 감행한 것이었다. 과거에는 언론사 방문 인터뷰가 당연했지만,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며 배우를 시작으로 영화는 당시의 서울 삼청동과 팔판동을 중심으로 카페 인터뷰가 일반화되고 TV 드라마는 방송사 사옥 드물게는 응접실이 달린 호텔의 룸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던 때였다.
그런데 김태희가, 이미 받을 칭찬 충분히 받은 때에 언론사들을 찾겠다고 알려왔다. 연예인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소감을 담아 보도자료를 내는 게 일반적이고 드물게 팬들이 쿠키나 떡을 언론사로 보냈다. 팬들의 선물만 해도 과하다 싶어 감사했는데, 방문이라니. 이 일을 성사한 게 현재의 ‘김태희 마스크’ 마케팅사 대표였고, 언론사 사옥을 찾을 때 김태희 곁에 서 있었다.
2013년 당시 걸그룹과 보이그룹을 비롯해 가수들은 새 앨범을 들고 언론사를 찾았지만, 톱스타 배우는 없던 일이라 방문 시간 전부터 사진을 찍겠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란 칵테일 원피스를 입고 편집국에 들어서는데 흡사 레드카펫이 연출됐다. 휴대전화 셔터 누르는 소리, “와, 정말 예쁘다” 감탄의 소리, 즉석 팬 미팅 현장 같았다. 김태희는 당황하지 않고, 일일이 눈을 맞추고 환하게 웃어 보이고 용기로 내미는 손에 악수하고 셀카 촬영에도 응했다. 예상하지 못한 특급 서비스의 바탕엔 연기력 칭찬이 불러온 배우로서의 자신감과 여유가 있었을 터이다.
필자에겐 특명이 하나 주어져 있었다. 방송용 인터뷰를 촬영하라는 것. 지면 인터뷰와 사진 촬영은 사전에 얘기된 바지만, 예고도 없이 그것도 영상 촬영을 요청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에 열 개 가까운 매체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야 하는 상황임을 알았기에 선뜻 말하지 못하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하지만 밥 먹고 산다는 게 미션은 수행해야 한다. 전체 인터뷰 시간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시간을 쪼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지 물었다, 장소는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와 동일하게.
“그럼요, 저야 좋죠.”
애써 웃으며 “그럼요”만 해도 고마울 판에 본인도 좋다고 말하는 예의가 예뻐 보였다. 이것이 실화인가 믿기지 않을 만큼, 김태희는 길지 않은 시간에 여러 종류의 일을 하고 자리를 떴다. 한 가지를 보탠 것 같아 미안했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김태희를 보고 세 가지에 놀랐다. 화면에서 보는 것보다 얼굴이 더 작고, 옷 치수가 ‘33 반’이라더니 너무 가냘프더라. 두 번째는 명문대 출신이라지만 말을 너무 잘해서 놀랐다. 어떤 질문을 해도 척척 답이 나왔다. 마지막은, 처음부터 끝까지 만면에 미소 띤 얼굴처럼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예뻤다. 김태희가 다녀간 뒤 한동안 그 매너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렸다.
친절한 태희 씨. 그 마음 씀씀이가 마스크 모델로 이어졌다. 쉽지 않았던 기자들과의 대면 소통을 주선했던 이를 잊지 않았고, 직종을 바꿔 사업가가 된 그의 모델 요청에 흔쾌히 화답했다. 김태희는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었고, ‘여기는 돼요, 저기는 안 돼요’ 없이 필요한 곳 어디든 사용하라고 했단다. 흔히 사용 범위에 따라 모델료가 달라지고 당연한 듯 증액을 요구하는데 말이다.
TMI(TooMuchInformation)로, 얼굴이 어찌나 작던지 S-MS-M-L-XL 가운데 가장 작은 크기를 썼고, 광고 촬영을 마친 후 “정말 숨쉬기 편한데요”라고 제품에 대한 만족감을 표해 현장 관계자들을 싱글벙글하게 했단다. 마케팅사 대표는 고마운 마음에 두 딸을 위한 키즈용 마스크를 선물했다. 8년 전 인연을 잊지 않은 ‘특급 의리’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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