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에서 여성주의 세계관으로

박미연 2021. 6.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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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세계관, 페미니즘을 만나고 달라진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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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연 기자]

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10~20대에는 왜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일까. 그때는 어둡고 불안했었다. 끝간데 없이 흔들리는 나의 삶을 붙들어줄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때 내가 붙잡은 것이 기독교 세계관이었다. 

성경은 척척 박사처럼 나의 의문을 풀어주고도 남았다. 나는 창조주가 기뻐하는 특별한 존재요,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의 사랑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다. 와, 인생이 이렇게 명료한 것이었다니!

나에게 성경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절대적인 진리였다. 그 진리를 알고 그것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해석하니, 인생이 그렇게 복잡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삶이 참으로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항상 웃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나에게는 기도의 대상이 있었고, 피안의 세계에 대한 소망이 있었다. 이것은 현실 문제를 상쇄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수 십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예수의 어록처럼 점점 더 자유로워져야 마땅했다. 그런데 점점 무기력해지는 것이 아닌가. 번아웃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회에 머물러 있고자 그렇게 애썼건만, 어느새 나는 교회로부터 탈출하고 있었다. 

너무나 이상했던 페미니즘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때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이 여성주의 세계관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남편을 가정의 제사장으로 높이며, 그에게 순종할 것을 요구한다. 페미니즘과 공통분모가 전혀 없어보인다. 과거 기독교 세계관을 내면화했던 나에게 페미니즘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었다. 

'뭔가 문제 있는 것 아냐? 삶이 불행한가?'

그렇게 괴상했던 페미니즘이 꼭꼭 숨겨놓은 나의 문제들에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지쳐 포기한 관계에 대해서도 시원하게 해석을 해주었다. 오랫동안 곪은 상처에서 누런 고름이 쏙 빠져나오는 느낌이랄까.   

나에게 페미니즘이란 잃어버린 '나'를 되찾아주는 세계관이다. 나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와 교회에서 존재감 없이 살았었다. 그 속에서 나의 색깔, 나의 향기, 나의 욕구, 나의 재능 등등,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진 자아...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 중에 페미니즘은 일등 공신이다. 

남녀불문 누구나 자기의 고유한 삶을 살게 하는 페미니즘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의 저자 이라영은 말한다.
 
나는 '진짜'를 지향하지 않는다. '진짜'가 되려는 윤리적 욕망은 때로 타인을 폭력적으로 규정짓고 배척하며 제압할 위험이 있다. '진짜'를 정의하고 선택하는 권력에 대해 의구심이 있다. 진짜 여성, 진짜 페미니스트, 여성이 있어야 할 진짜 자리, 진정한 여성의 삶을 알려주려는 사람들의 충고는 사양한다. '진짜'는 모르겠으나 내 삶과 나의 길, 나의 자리, 나의 역할, 나의 욕망, 나의 사랑은 각각의 '나'들이 찾아야 한다. 이 '나'들은 문화와 관습이 정해주는 자리가 아닌, 충분히 다른 세계를 갈망할 권리가 있다.-10쪽

지난 수십년간 나의 삶은 한 마디로 '진짜'의 세계관에 홀린 삶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나를 잃어버리게 했다는 역설! 그뿐이랴. '진짜'가 되고자 하는 나의 욕망은 자녀들에게 향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에게 '진짜'가 되기를 요구했고, 그들을 지배하고 통제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첫째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반항하기 시작했다. 그때 남긴 나의 메모가 있다.

"요즈음 미랄이는 나를 또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으로는 이 상황을 헤쳐나가기가 어렵네요. 미랄이는 고3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엄마 아빠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며 무난하게 자라주었답니다. 근데 지금은 미랄이가 울타리를 치고 '부모 접근금지'라는 푯말을 붙여놓은 느낌. 왠지 배신감도 들고 서운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우리는 2년간 끈질기게 은근하게 싸웠다. 그러면서 어느정도 딸에 대한 통제권이 느슨해지긴 했지만, 아직 아직 딸을 제압하고 싶은 욕망은 멈추지 않았었는데... 그 권력의 끝자락까지 놓게 만든 것이 페미니즘이었다.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다양성을 붙들었을 때, 딸이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내가 만약 페미니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딸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딸뿐만 아니라 두 아들, 그리고 남편에게까지 나의 비판과 통제로부터 해방을 선물한 페미니즘이 너무 고맙다! 우리 다섯 식구는 각자 내 삶과 나의 길, 나의 자리, 나의 역할, 나의 욕망, 나의 사랑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이라면 예수도 나에게 응원을 보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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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쓴 글입니다.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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