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이름 짓다 호적 파일 뻔 했습니다 [코로나 베이비 시대 양육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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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기자]
2020년 10월 12일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아기가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아기는 보통 266일 정도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나온다고 하는데 이 놈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양수를 터트려서는 10여 일을 앞당겨 나왔다.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가서 아이를 출산하던 날은 인생에서 다시는 겪기 싫은 날로 꼽을 정도로 정말이지 고난의 순간이었다.
어렵게 아이가 태어나고 다른 고민이 생겼다. 바로 이름이다. 아기의 이름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다만 이런저런 선택지 안에서 최종 선택을 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7년 만에 가진 아기라 아기의 이름에 대한 관심도 높아서 서로 이름을 지어주겠다는 가족, 친지, 지인들이 많아 선택지가 더 다양했다.
쉬울 줄 알았는데 선택지가 많다는 게 더 혼란이었다. 그냥 어느 분한테 부탁할지만 선택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들 부부는 이미 직접 아기 이름을 짓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아기가 10여 일이나 빨리 태어나 버린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자 금세 아기의 조부모님들께서 거금을 들여 아이의 '예비 이름'들을 이른바 '이름 좀 짓는다는 유명한 곳'에 가셔서 받아 오셨다. 아기가 태어난 이 시점에 당장 이름을 지을 방법과 방향이 막연했지만 이름을 직접 짓고 싶다는 부부의 의사는 쉽사리 생긴 것이 아니었기에 확고했다. 바로 그 이유는 이름을 직접 짓겠다는 이 발직한(?) 의도가 아기 아빠의 유년 시절의 뿌리 깊은 악몽에 기인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밀레니얼 대디'인 필자의 부모님께서는 지금의 100만 원에 가치에 상응하는 금액을 들여 철학관에서 이름을 지으셨다. 하지만 뭐가 문제였는지 '원석'이라는 이름은 하필 같은 반에 여러 명이었다. 이른바 '국민학교' 시대에 60명이 넘는 대도시의 오전, 오후반에서 '원석 1,2,3'으로 불려졌던 과거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혹은 원석의 석이 돌을 뜻한다며 '돌 1,2,3'으로 불려지기도 했는데 선생님의 그런 호칭은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된 계기였다. 그 잊히지 않는 악몽 같은 기억을 아기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아기 이름을 직접 짓고 싶었다.
어쩌면 평생을 쓸 아기 이름을 그래서라도 특별히 짓기 위해 이른바 '셀프 작명'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엑셀로 함수를 만들어 자동으로 두 글자가 생성되게도 해 보고, 생소하지만 다양한 이름 지어 주는 어플을 찾아내어 활용하는 등 창조적인 여러 시도를 모색했다. 그렇게 아기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작명의 늪에 빠졌다.
당시 웬만한 평범한 아기의 이름들은 우리 집에서 다 불러졌던 것 같다. 맘에 드는 이름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짓다 보니 '예쁜 이름'들과 '멋진 이름'들이 등장했다. 세상에 이런 좋은 이름들이 너무 많음을 새삼 느꼈다. 쉽사리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내가 말했다.
"여보 아기 이름이 흔하지 않고 글로벌 시대니 만큼 만인이 부르기 쉬웠으면 좋겠어요."
아이 엄마의 말이 이 고행의 끝을 맺어 주었다. 영어로도, 한문으로도, 한글로도 표현할 수 있는 이름들로 선택의 폭을 좁히니 아기의 이름을 짓는 것이 매우 수월해졌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대체 뭐라고 지었냐고?
바로 pillip, 必立, 필립이다. 한문으로 '최(崔)'씨가 '높을 최' 씨이니 '필히 일어나라'라는 '필립'의 뜻과 더하면 '높게 필히 일어나라'가 되었다. 영어로도 한글로도 한문으로도 어느 하나 빠지는 곳이 없어 보여서 우리는 이 이름을 최종 아기의 이름으로 결정했다.
물론 다른 이름들도 미련이 남기는 했지만 아내의 뜻을 받아들이니 선택은 쉬워졌다. 아기는 비로소 이제 부모가 직접 지어준 최필립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고민해서 이름을 짓고 나서도 난관에 봉착했다. 이내 조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지어 온 이름 중에 하나를 정해라."
"항렬을 따라야 한다."
"이름이 너무 낯설다."
이 외에도 기억나지 않지만 수십 가지의 다채롭고 창의적인 반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난 바로 다음 날, 아빠는 은밀하지만 위대한 거사를 실행했다. 출생신고를 바로 해버린 것, 이제 더 이상의 실랑이는 없을 것이다 생각하니 후련했다.
▲ 필자의 아기 아기와 외출 했던 올해 초의 어느 날 사진 |
ⓒ 최원석 |
물론 그 뒤의 파장과 본인이 감당해야 했던 고역들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인 것은 '안 비밀'이다. 필자는 그때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욕들이 신비롭게 존재함을 이 과정 덕분에 체험할 수 있었다. '아기 이름 직접 짓다 호적에도 파일 수 있겠구나'라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문득 잠깐 들기도 할 정도였던 큰 해프닝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도 잠시, 아기의 이름은 그럼에도 받아들여졌고 자연스럽게 불려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과는 반대로 아기 엄마와 본인은 아기의 이름을 직접 지어 부른다는 것이 매우 즐겁고 행복한 일임을 날이 갈수록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아기의 이름을 불러 주던 순간은 아직 눈에 선할 정도로 잊기 힘든 기억이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만족하는 바이지만 다만 바람이 있다면 하나, 이름처럼 높게 반드시 서기 위해 건강하고 행복한 아기로 지금처럼 잘 자라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혹 아기를 출산하는 가정이 있다면 '셀프 작명'을 해 보시기를 적극 권한다. 아이를 부르는 순간순간이 특별해지는 마법을 경험하시게 될 거다. 행복은 덤이다.
오늘도 아기의 이름을 부른다. 아기는 벌써 무럭무럭 자라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8개월째 자신의 이름을 듣지만 이름을 부를 때 한 번씩 웃는 아기의 모습은 정말 이 선택이 탁월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만약 감사하게도 아이가 또다시 우리를 찾아온다면 '밀레니얼' 우리 부부의 선택은 당연히 '셀프 작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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