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안나의 집
“왜 멀쩡한 사람들에게 밥을 주나요?” 매일 700여명의 노숙인에게 밥을 주는 일을 30년째 하는 김하종 신부는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겉보기엔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감 섞인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김 신부는 차분히 답했다고 한다. 노숙인은 대부분 경제적 문제는 물론이고 정신적·심리적 문제에 성격적 결함이 있거나 사회성이 결여된 사회적 약자들이다. 얼핏 외양만 보고 처지를 의심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김 신부는 노숙인이라는 단어를 아예 쓰지 않았다. ‘거리의 친구들’이라고 명명했다.
내가 경기 성남에 있는 ‘안나의 집’을 방문한 것은 김 신부를 만날 용건이 있어서였다. 봉사자의 마음으로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찾아간 시각은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배분하는 바로 그때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함께 식사할 수 없으므로 도시락을 준비해 나눠주고 있었다. 방역 문제로 수원과 서울역·영등포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았다. ‘안나의 집’은 도저히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루 한 끼가 될 가능성이 큰 도시락을 나눌 수 없다면 많은 노숙인이 굶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숙인들이 모인 장소는 성남동 성당의 넓은 마당이었다. 이탈리아인 사제로 1990년 한국에 와서 빈민 사목을 시작했다가 2015년 귀화한 김 신부는 몸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마당에 도착하자마자 김 신부는 봉사자들에게 당부할 사항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마스크를 썼지만 밝게 웃고 고마운 마음으로 나눠야 한다는 것. 신부와 봉사자들은 노숙인들을 향해 먼저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두 손을 머리에 얹고 하트를 그렸다. 한 사람씩 도시락을 받아갈 때마다 봉사자들은 “고맙습니다”란 인사를 잊지 않았다.
노숙인들은 불쌍한 존재이거나 우리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이 시각으로 식사를 나눠야 한다는 게 김 신부의 마음이었다. 성당 마당에서 도시락 나누는 풍경을 본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다정하고 밝은 분위기일 것이라고 짐작하지 못해서였다. 매일매일 행하는 이 도시락 나눔이 김 신부와 봉사자들에게는 기쁨이라고 했다.
‘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가 되어주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안나의 집’ 신축 건물은 2018년 7월에 지어졌다. 이전에는 노숙인이 찾아와도 공간이 충분치 않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 안타까웠다는 김 신부는 이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노숙인 재활 의지를 북돋아 주고 지원하고 있다.
어떤 날, 신부의 기록은 행복감을 그대로 전달한다. “나의 오늘은 멋졌다. 껍질을 벗긴 감자 20㎏ 얇게 썬 양파 10㎏ 자른 당근이 8㎏, 내가 한 일의 결과물이다. 하루의 모든 순간을 사랑과 열정으로 보냈기에 아름답다. 가슴에 가득 찬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전해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비결이라고 믿는다.” 사제복 대신 앞치마를 두른 김 신부는 행복이란 계산 없이 매일 찾아와주는 봉사자들과 함께 노숙인들에게 식사 대접을 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상황에서 발견하는 것이라고 한다. 낯선 사람을 어려워하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나에게는 놀랍기만 한 이야기였다.
한국 노숙인 실태를 보면 42%의 노숙인이 한글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다고 한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학대당한 적 있는 노숙인의 정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노숙인 중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51%로 절반 이상이 가정에서 어떤 역할에 책임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 공동체의 문제로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근거다.
김 신부의 큰 꿈은 오직 하나. ‘안나의 집’이 사라지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수준이 더 높아져서 이런 시설이 필요 없게 되는 것, 누구나 집에서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꿈꾸고 있다. ‘안나의 집’에서 받은 충격은 며칠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신은 분명히 무언가를 했다. 그건 김하종 신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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