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박수현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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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가 개혁을 하고는 있고만." 대화가 끊겨 버렸다.
문재인정부 출범 2년 반 즈음, 각료를 지낸 한 중진 의원과 몇몇 출입기자의 만찬 자리였다.
아무래도 여론 향배에 민감한 건 기자들이다.
한 행사에서 풀 기자가 전해온 문 대통령 발언과 풀 영상에 담긴 발언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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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가 개혁을 하고는 있고만.” 대화가 끊겨 버렸다. 문재인정부 출범 2년 반 즈음, 각료를 지낸 한 중진 의원과 몇몇 출입기자의 만찬 자리였다. 아무래도 여론 향배에 민감한 건 기자들이다. 2030세대 불만, 일방통행식 검찰 개혁 피로감, 경색된 청와대 내부 소통 문제 등이 도마에 올랐다. 분위기가 고조됐을 즈음 나온 저 발언으로 논의는 종결됐다. 이후 누구도 여러 염려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한테 굳이 조언을 건네는 것도 오지랖 넓은 일이다.
굳이 2년여 전 얘기가 떠올랐던 건 지난해 1년 만에 다시 출입하게 됐던 더불어민주당의 분위기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180석을 얻었던 민주당은 유난히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했다. 일부 지도부는 언론과 기자를 상대로 내 편, 네 편을 참 열심히도 가렸다. 야당을 출입하다 여당으로 옮겨온 후배 기자들은 매체를 가리지 않고 “이 당은 원래 전화를 안 받나요?” “원래 콜백을 안 하나요?”라며 불만을 입에 달고 지냈다.
민주당은 개혁 우선주의와 당위성을 앞세워 일방적인 결단을 자주 내렸다.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제안이나 임대차3법 같은 게 대표적이다. 1기가 물러나고 들어선 청와대 2기 체제에서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올드 친노’는 문재인 대통령을 언론 밖으로 끌어냈다. 당이고 청와대고 SNS를 통해 지지층에게만 호소하는 일방통행 소통이 표준화됐다.
이런 시기를 거쳐 문 대통령이 박수현 국민소통수석 카드를 꺼내든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박 수석이 대변인으로 근무할 당시였다. 한 행사에서 풀 기자가 전해온 문 대통령 발언과 풀 영상에 담긴 발언이 달랐다. 영상 속 발언이 훨씬 강경했다. 시간이 급박해 대개 매체가 풀 기사 발언으로 기사를 썼는데, 몇몇 언론사가 영상 발언으로 기사를 쓰면서 청와대 내부에서 문제가 됐다.
이런 경우 청와대 춘추관은 기자들 반발도 무시하고 풀 기사 중심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때 박 수석은 좀 달랐다. 그는 어떤 공식적인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다. 언론이 실체적 진실을 보도했을 때 그는 관례나 협조 요청 따위를 내세워 억지로 바꾸려 들지 않았다. 그런 걸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어쩌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문 대통령은 박 수석을 두 차례나 정무수석으로 쓰려고 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두 번째는 단수 추천까지 됐지만 임명된 건 최재성 정무수석이었다. 청와대를 출입하며 깨달았던 건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청와대 비서관조차 마음대로 하기 힘들다는 정치적 현실이었다.
박 수석을 더 높이 평가한 건 여당보다 야당이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박 수석이 정무수석에 단수 추천됐을 때 먼저 전화를 걸어 “앞으로 잘해보자. 야당과의 소통에 힘 써달라. 우리도 잘 협조하겠다”고 했다. 정무수석 발탁이 무산된 뒤에는 아쉬움과 분노를 표현했다고 한다.
정권 임기를 1년 남기고 박 수석을 발탁한 것은 여당과 청와대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문 대통령이 인정한 것으로 본다. 야당 파트너에 이철희 정무수석을, 언론 파트너에 박 수석을 앉힌 것은 지지층 바라기와 내 편 챙기기가 아닌 진심 어린 소통을 해보겠다는 의지로 읽혀 다행스럽다.
이제 국정 현안에 대한 논쟁은 차기 대선 주자들이 할 것이다. 청와대는 불필요한 논쟁에 끌려가기보다 경제 활력 제고 등 포스트 코로나19 대책에 몰두해야 할 시점이다. 박 수석이 진영 논리에 갇힌 정쟁용 멘트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정책 설명, 예측 가능한 국정 방향을 국민에게 잘 전달하기를 기대한다.
강준구 경제부 차장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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