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마지막 비극.. 신념때문에 몰락하는 캐릭터 매력"

장지영 2021. 6. 25.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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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년만에 연극무대 선 평창올림픽 개막식 연출 양정웅
연출가 양정웅이 23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신작 ‘코리올라누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한 양정웅이 연극을 연출한 것은 5년만이다. ‘코리올라누스’는 셰익스피어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그가 9번째 올리는 셰익스피어 작품이다. 최현규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의 총연출을 맡았던 연출가 양정웅이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로 연극 무대에 복귀한다. 2016년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5년 만이다. 다음 달 3~15일 무대에 오르는 이번 작품은 LG아트센터가 내년 마곡 이전에 앞서 마지막으로 하는 기획공연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로 LG아트센터에서 23일 만난 양정웅은 “극단 여행자를 1997년 만든 이후 쉼 없이 연극을 해왔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번아웃되기도 했고 내 삶의 방향도 다시 가다듬고 싶어 쉬고 있었다”며 “하지만 인연이 깊은 LG아트센터에서 이전을 앞두고 마지막 기획 작품을 제안해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연극 무대에선 떠나 있었지만 뉴미디어와 영화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르며 뉴미디어에 관심이 부쩍 커진 그는 2018·2019년 광주 아시아문화의전당에서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멀티미디어극 ‘드라곤 킹’을 연출했다. 수궁가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범 내려온다’의 이날치 밴드 결성 계기가 됐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더 박스’를 통해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했다. ‘더 박스’는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는 가수와 성공만을 좇는 프로듀서의 성장을 담은 로드무비다.

“뉴미디어 시대에 미디어와 공연의 결합에 관해 관심이 컸습니다. 영화는 10년 전부터 제안이 있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아 못하다가 평창올림픽 이후 도전하게 됐어요. 우리나라에선 장르의 벽이 유난히 높은 편이지만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작업하고 싶습니다.”

LG아트센터의 제안을 받을 때도 웹툰 원작의 영화를 준비 중이었지만 연극을 위해 미뤘다. 오랜만의 무대 작업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인 ‘코리올라누스’. 1605~1608년에 쓰인 ‘코리올라누스’는 로마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민족 볼스키족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로마 장군 코리올라누스는 원로원에서 최고 권력인 집정관에 추대되지만 호민관들의 음모로 시민들의 미움을 받는다. 오만한 귀족 엘리트인 그는 시민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다 로마에서 추방당한다. 볼스키족과 손잡고 로마를 함락 위기까지 몰고 가지만 어머니의 설득에 공격을 포기하고 볼스키족에 의해 처형당하는 비극적 인물이다.

“‘코리올라누스’가 제게 9번째 셰익스피어 작품인데요. ‘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십이야’ ‘햄릿’ ‘맥베스’ 등 낭만희극과 비극을 주로 다루고 로마 정치극은 도전한 적이 없어서 해보고 싶었습니다. 신념으로 가득 찼지만 그때문에 몰락하는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코리올라누스 역은 극단 여행자 소속의 배우 남윤호가 맡았다. 남윤호는 2017년 연극 ‘보도지침’을 마치고 영국 왕립연극학교(RADA)로 유학을 떠났다. 배우 로저 무어, 앤서니 홉킨스, 톰 히들스턴 등을 배출한 세계적인 연극학교다. 한국 배우로는 유일하게 이곳을 졸업한 남윤호는 런던의 연극무대에 데뷔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귀국했다.

양정웅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국 바비칸 센터와 셰익스피어 글로브에서 초청받아 공연한 국내 유일의 연출가다. ‘셰익스피어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꾸준히 무대에 올릴 생각이다.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템페스트’ ‘베니스의 상인’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가 연출하고 싶은 작품 목록의 상단에 올라 있다.

양정웅은 “셰익스피어나 입센의 희곡을 선택했을 때 공교롭게도 작가가 당시 내 나이와 비슷한 나이에 쓴 작품인 경우가 많았다. 비슷한 나이대에서 오는 공감대나 고민이 이어진 것 같다”며 “‘코리올라누스’의 경우 귀족과 평민, 전쟁과 평화, 풍요와 빈곤, 이성과 감성 등 상반된 요소가 뚜렷하게 대립하는 이야기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국가와 이념, 성별에 따른 분리의식과 혐오가 깊어진 현대 사회의 모습과 놀랍도록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로마 시대의 이야기에 현대적 색채를 입혀 동시대의 이야기로 풀어낼 계획이다. 차가운 흑백의 지하 벙커 무대는 때로 총과 칼이 격돌하는 전장이 되고 무기보다 무서운 음모와 선전이 난무하는 의회와 토론장이 된다.

무대와 음악은 ‘페르귄트’ 등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임일진 디자이너와 장영규 음악감독이 맡았다. 양정웅은 “세계의 종말을 다룬 아포칼립스 계열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작품의 배경은 늘 벙커였다. 임일진 선생과 이야기하다가 떠오른 벙커는 국가 가족 시민으로부터 모두 고립된 코리올라누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데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영규 감독은 리듬과 전자음이 강조된 독특한 사운드의 음악을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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