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연의 시시각각] 서민 정부로 오해할 뻔했다

최상연 2021. 6. 25.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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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보호 내걸고 집권한 정권서
격차는 벌어지고 행복지수 추락
지키려는 원칙이 있기는 한 건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2% 종부세 과세 방안은 조세법률주의와 상충되지 않는다"고 밝혀 그동안 반대하던 태도에서 급선회했다. 오종택 기자

집값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이다. 일단 GTX발 불쏘시개가 불길을 키우는 중이라고 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얼마 전 집값 하락을 경고할 때 알아봤다. 그럼 곧 더 크게 오를 모양이라고 걱정들을 했는데 그른 말이 아니었다. 한두 번이 아니다. 장관들이 겁주면 곧장 '묻고 더블로' 달린 불장(bull market)에 예외가 없다. 전임 국토부 장관이 ‘안타깝다’고 혀를 차던 ‘영끌’이 옳았다. 정부만 믿던 ‘벼락 거지’들은 이제 영혼까지 탈탈 털린 ‘영털’이다. ‘자산 인플레이션 세금’을 해마다 수억원씩 바쳤다. 그런데 청구서는 아직도 끝이 아니란다. 심장 약한 사람은 버티기 힘든 나라다.
나라님 말씀에 도무지 영이 안 서는 건 말발을 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기다리라'는 말뿐이지 실제론 만세를 불렀다. 요란한 셀프 칭찬과 함께 등장한 ‘공급 쇼크’는 충격적으로 너덜너덜해졌다. 서민용 임대주택을 짓겠다던 '과천청사 4000가구'가 없던 일이다. 대강 주민 반대로 접었다는데 설마 똑똑한 정부가 주민 반대를 몰랐을 리 없다. 이젠 태릉골프장이나 용산에 아파트가 들어설 거라고 믿는 사람이 없다. '집값은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거'라고들 하던데 결국 의심 사례만 보탰다. 궁금한 건 '집값 원상 회복'을 거론하던 정부가 왜 말발을 세우지 않느냐는 거다.
'상위 2% 종부세'를 보고서야 뒤늦게 감 잡았다. '세금 때리면 부동산 안정된다'고 우길 때만 해도 믿었다. 서민 정부로 알았다. 그러더니 세금 폭탄엔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계산 착오를 인정한 거냐면 그런 건 아니다. 이런 법이 집값 떨어뜨린다고 믿는 민주당 의원은 없다. 그냥 '내년 대선용'이란다. 그럼 뭔가. '부동산은 자신 있다'던 건 말뿐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총선 땐 종부세 완화를 약속하고 팽개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주택 서민의 한숨은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집 없는 유권자가 저쪽 당을 찍을 까닭은 없다. 계산이 그렇다.
그런데 부동산만이 아니다. 98%는 성한 데가 없다. 소득과 교육, 서울과 지방 간 양극화 추세를 앞으론 극복할 수 없도록 키운 게 이 정부다. 일자리든 뭐든 아래쪽 수치는 죄다 나빠졌다. 대신 넘치는 건 희망 고문이고 정신 승리다. 정부는 ‘소득 격차가 크게 개선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숫자를 들이민 건 최근 일이다. 표본과 조사 방식을 대폭 변경한 통계청 ‘분식 자료’가 나온 뒤다. ‘좋은 통계로 보답하겠다’던 분을 통계청장에 앉힌 뒤 본격화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들어 불평등이 심화됐다’고 한다. 누구 말이 맞겠나.

문 대통령은 대선 전 네팔과 부탄을 여행한 뒤 ‘국민을 행복하게 못 하면 정부의 존재 가치가 없다’고 했다. 그런 국민 행복지수가 바로 이 정부에서 추락했다. 2003년 지수 작성 이래 최악이란 조사가 나왔다. 주요국 비교에서도 낙제점이다. 당연한 일이다. 빈부 격차가 커지는 걸 행복한 사회라고 규정한 나라는 없다. 갈등과 대립을 부추겨 행복해졌다는 나라도 없다. 서민 정부를 내세웠으면 서민 살림이 우선이다. 격차 해소를 내걸고 집권했으면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부자를 때리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집 부자가 아니다. 미친 집값, 전셋값을 잡아 달라는 게 서민들이 원하는 거다. 전 정권과 거꾸로 달리자는 게 아니다. 탈원전을 접어 예고된 전기료 인상을 막아 달라는 게 국민 여론이다. 소득주도성장이나 고용ㆍ노동 정책 같은 민생 현안이 같다. 그런 여론에 귀를 여는 게 서민 정부다. 리더는 밀지 않는다. 당길 뿐이다. 실을 당기면 이끄는 대로 따라오지만 밀면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사람을 이끄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젠하워의 말이다. 그런 리더라야 조롱당하지 않는다. 그런 정부를 만나야 무주택 서민 가슴에 평화가 온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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