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도 가능한 정원 아이디어
아산에서 30년째 꽃 가게 ‘평화꽃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이현숙은 이 꽃밭에서 성실하게 경작한 꽃을 가게에서 판다. 직접 기른 꽃을 파는 일은 그녀의 오랜 꿈이었다. 정년퇴임을 앞둔 남편이 이현숙의 꿈을 이루어주고자 팔을 걷어붙였고, 이구름을 비롯한 세 딸의 가족도 주말마다 힘을 합쳐 지난 4년간 성실하게 정원을 돌봤다. 열정과 호기심, 안달과 극성, 성찰과 관찰. 정원에 쏟아부은 모든 노력 덕에 이제는 계절마다 새로운 꽃을 보며 수확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엔 정원 어귀에 있는 보호수밖에 없었어요. 밭에 엄청난 양의 흙을 가져와 붓는 일이 정원 가꾸기의 시작이었죠.” 지금은 푸른 수레국화와 캐모마일과 데이지의 계절. 수레국화는 해외여행에서 가져온 씨를 한 번 뿌린 이래 매년 밭을 가득 채울 만큼 피어난다. 이달이 지나고 나면 버바스쿰, 엉겅퀴, 베로니카와 레몬밤, 라벤더, 아마꽃 등이 고개를 들 것이다.
800평의 너른 꽃밭에는 바람을 타고 자연적으로 산포해 자란 꽃들도 섞여 있다. 씩씩한 자태의 들꽃들과 팝콘처럼 하얗게 핀 조팝나무 꽃이 흐드러진 구역 사이를 둥실둥실 걸으며 살피던 이현숙은 말했다. “들꽃이 많죠. 모두 제가 미치게 좋아하는 꽃들이에요. 이래 봬도 미치게 좋아하지 않고는 못할 일이거든요.” 각각 30년 차, 10년 차 플로리스트 모녀와 가드닝 스튜디오 대표인 부부, 가드너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한 아버지가 정성 들여 일궜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 한 평은 고사하고 손바닥만 한 화분에 흙을 채워 꽃을 기르는 일조차 과습과 메마름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힘들건만, 울창한 꽃밭을 만드는 일이란 얼마의 인내와 탄식, 노동을 동반하겠는가. 이렇게 무성한 꽃밭도 처음에는 살풍경한 갈색 흙밭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경건한 기분마저 든다. “6월이 정말 예뻐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와일드 플라워가 만발하거든요. 동시에 엄청난 양의 벌레와 씨름해야 해요.” 말린 캐모마일로 차를 우려내던 이구름이 말했다. “슬로우파마씨를 운영하면서도 꽃에는 관심 없었어요. 남편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이 정원을 일구고 이곳과 사랑에 빠지면서부터 ‘역시 꽃이 예쁘지’라고 말하게 됐어요.” 꽃을 사랑하는 가족은 단순하고 간단한 삶이 주는 평온을 누리기 위해 오늘도 정원을 가꾼다.
“2평짜리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어요. 나무 한 그루를 주인공으로 삼고, 공생할 식물을 함께 기르는 방법이 최선이었죠.” 실내 건물에 인공적으로 화단을 만들면 뿌리가 건물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균열을 만들 수 있다. 단단한 땅을 뚫고 아래로 쑥쑥 자라는 뿌리의 힘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방근 시트를 깔고 방수 설비와 물길까지 만드는, 만만치 않은 밑 작업을 해야 했다. ‘앤’이라 불리는 자색의 목련, 앵두나무, 라일락 등 많은 이름이 2평 정원의 주인공 후보로 올랐다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날아든 목록 중 하나가 바로 미국 산딸나무였다. 미국에서는 한 집 건너 발견될 정도로 흔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흔히 볼 수 없는 수종. 크림색의 꽃잎을 지닌 묘목이 부부의 2평 정원으로 들어오던 날, 뿌리를 검은 포대로 단단히 감싼 채 사다리차의 힘을 빌려 운반되는 나무를 보며 부부는 생각했다. 이 집에서 오래 살게 되겠다고. “저에게 좋은 집이란 오래 살고 싶은 집이에요. 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뒤에도 ‘언젠가는 이사 갈 것’이라는 생각을 늘 했어요. 그런데 정원에 나무를 심던 날, 오래도록 이 나무를 보살피며 함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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