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도 가능한 정원 아이디어

이경진 2021. 6. 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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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이라도 좋을 나의 정원을 찾아서.
「 한 가족의 비밀스러운 꽃 정원 」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느긋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실 정원가는 매일 분주하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겨우내 월동할 수 있게 하려면 잡초를 뽑고, 거름을 만들고, 물을 주고, 채종하고, 화단 보수를 게을리할 수 없다. 정원가뿐인가. 벌도, 나비도 바쁘다. 정원에는 고요한 소란이 가득하다. 식물 브랜드 ‘슬로우파마씨’를 이끄는 이구름·정우성 부부는 주말마다 이구름의 고향인 아산으로 향한다. 거기에 이구름의 어머니 이현숙과 아버지 이창식이 가족들과 4년째 일구는 꽃밭이 있다. 논과 밭, 목장이 드문드문 이어지는 작은 마을. 거대한 자태로 수만 개의 잎사귀를 흔드는 느티나무 보호수 옆으로 정원가 가족의 비밀스러운 꽃밭이 펼쳐진다. ‘피스플라워팜(peaceflowerfarm)’.

아산에서 30년째 꽃 가게 ‘평화꽃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이현숙은 이 꽃밭에서 성실하게 경작한 꽃을 가게에서 판다. 직접 기른 꽃을 파는 일은 그녀의 오랜 꿈이었다. 정년퇴임을 앞둔 남편이 이현숙의 꿈을 이루어주고자 팔을 걷어붙였고, 이구름을 비롯한 세 딸의 가족도 주말마다 힘을 합쳐 지난 4년간 성실하게 정원을 돌봤다. 열정과 호기심, 안달과 극성, 성찰과 관찰. 정원에 쏟아부은 모든 노력 덕에 이제는 계절마다 새로운 꽃을 보며 수확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엔 정원 어귀에 있는 보호수밖에 없었어요. 밭에 엄청난 양의 흙을 가져와 붓는 일이 정원 가꾸기의 시작이었죠.” 지금은 푸른 수레국화와 캐모마일과 데이지의 계절. 수레국화는 해외여행에서 가져온 씨를 한 번 뿌린 이래 매년 밭을 가득 채울 만큼 피어난다. 이달이 지나고 나면 버바스쿰, 엉겅퀴, 베로니카와 레몬밤, 라벤더, 아마꽃 등이 고개를 들 것이다.

800평의 너른 꽃밭에는 바람을 타고 자연적으로 산포해 자란 꽃들도 섞여 있다. 씩씩한 자태의 들꽃들과 팝콘처럼 하얗게 핀 조팝나무 꽃이 흐드러진 구역 사이를 둥실둥실 걸으며 살피던 이현숙은 말했다. “들꽃이 많죠. 모두 제가 미치게 좋아하는 꽃들이에요. 이래 봬도 미치게 좋아하지 않고는 못할 일이거든요.” 각각 30년 차, 10년 차 플로리스트 모녀와 가드닝 스튜디오 대표인 부부, 가드너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한 아버지가 정성 들여 일궜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 한 평은 고사하고 손바닥만 한 화분에 흙을 채워 꽃을 기르는 일조차 과습과 메마름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힘들건만, 울창한 꽃밭을 만드는 일이란 얼마의 인내와 탄식, 노동을 동반하겠는가. 이렇게 무성한 꽃밭도 처음에는 살풍경한 갈색 흙밭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경건한 기분마저 든다. “6월이 정말 예뻐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와일드 플라워가 만발하거든요. 동시에 엄청난 양의 벌레와 씨름해야 해요.” 말린 캐모마일로 차를 우려내던 이구름이 말했다. “슬로우파마씨를 운영하면서도 꽃에는 관심 없었어요. 남편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이 정원을 일구고 이곳과 사랑에 빠지면서부터 ‘역시 꽃이 예쁘지’라고 말하게 됐어요.” 꽃을 사랑하는 가족은 단순하고 간단한 삶이 주는 평온을 누리기 위해 오늘도 정원을 가꾼다.

「 12평의 협소 주택 속 한 뼘 정원 」
정원 문학계의 사랑스러운 고전 〈원예가의 열두 달〉에서 카렐 차페크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우표만 한 크기라 하더라도 정원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최소한 작은 화단 하나 정도는 만들어야 한다.” 선구적인 SF 작품을 쓴 차페크의 정원 찬가를 읽으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 조건이 진정 손바닥만 한 정원인 것 같지만, 숲이라면 아파트 숲부터 연상하는 아파트 키드에게 정원이란 모호하고 요원한 대상일 뿐이었다. 여기, 서울 도심의 초역세권에 자리한 12평짜리 협소 주택에 만든 단 2평의 정원을 보기 전까지는. 현관문을 지나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곧장 자그마한 마당이 보인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채 바람결 따라 보드랍게 춤추는 나무 한 그루가 시야를 꽉 채운다. 57년 된 구옥을 리모델링해 작은 집을 만든 건축가와 디자이너 부부 김성진·안정호는 처음 본 순간부터 전 주인이 화장실로 개조해 쓰던 작은 공간이 눈에 밟혔다. “전 주인이 임의로 천장을 덮었는데, 법적으로 이 자리는 실외 공간으로 사용해야 했어요. 저희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결정이었지만, 12평의 집에서 6분의 1을 마당으로 쓴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는 주변의 반응이 꽤 많았죠.” 집을 완공한 부부는 먼저 이 마당에 자갈을 깔아 가끔 티타임 공간으로 쓰려고 했다. “엉덩이 배기는 자갈 위에 앉아 만둣국을 해 먹어보기도 했어요. 그러기엔 마땅치 않은 공간임을 곧장 깨달았죠.” 오롯이 식물을 위한 자리로서 관상용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한 건 그다음이었다. 적합한 정원을 꾸려줄 가드닝 스튜디오를 수소문하다 ‘더 가드네스트’의 대표를 만났고, 지금의 정원을 그리게 됐다.

“2평짜리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어요. 나무 한 그루를 주인공으로 삼고, 공생할 식물을 함께 기르는 방법이 최선이었죠.” 실내 건물에 인공적으로 화단을 만들면 뿌리가 건물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균열을 만들 수 있다. 단단한 땅을 뚫고 아래로 쑥쑥 자라는 뿌리의 힘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방근 시트를 깔고 방수 설비와 물길까지 만드는, 만만치 않은 밑 작업을 해야 했다. ‘앤’이라 불리는 자색의 목련, 앵두나무, 라일락 등 많은 이름이 2평 정원의 주인공 후보로 올랐다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날아든 목록 중 하나가 바로 미국 산딸나무였다. 미국에서는 한 집 건너 발견될 정도로 흔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흔히 볼 수 없는 수종. 크림색의 꽃잎을 지닌 묘목이 부부의 2평 정원으로 들어오던 날, 뿌리를 검은 포대로 단단히 감싼 채 사다리차의 힘을 빌려 운반되는 나무를 보며 부부는 생각했다. 이 집에서 오래 살게 되겠다고. “저에게 좋은 집이란 오래 살고 싶은 집이에요. 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뒤에도 ‘언젠가는 이사 갈 것’이라는 생각을 늘 했어요. 그런데 정원에 나무를 심던 날, 오래도록 이 나무를 보살피며 함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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