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연극무대 돌아온 평창올림픽 개막식 연출가 양정웅

장지영 2021. 6. 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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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5일 '코리올라누스' 공연.. 마곡 이전 앞둔 LG아트센터의 마지막 기획공연
연출가 양정웅이 23일 LG아트센터에서 5년만의 신작 연극 '코리올라누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그가 9번째 올리는 셰익스피어 작품이다. 최현규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총 연출을 맡았던 연출가 양정웅이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로 연극 무대에 복귀한다. 지난 2016년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5년 만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내년 마곡으로 이전하는 LG아트센터가 역삼에서 선보이는 마지막 기획공연으로 7월 3~15일 무대에 오른다.

평창올림픽 이후 뉴미디어와 영화에 집중

23일 LG아트센터에서 만난 양정웅은 “극단 여행자를 1997년 만든 이후 쉼 없이 연극을 해왔다. 그러다가 평창올림픽을 치른 뒤 번아웃 되기도 했고, 내 삶의 방향을 다시 가다듬고 싶어서 (연극을) 쉬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인연이 깊던 LG아트센터에서 이전을 앞두고 마지막 기획 작품을 제안해서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연극 무대에선 떠나 있었지만 양정웅은 그동안 뉴미디어와 영화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르며 뉴미디어에 관심이 부쩍 커진 그는 2018·2019년 광주 아시아문화의전당에서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멀티미디어극 ‘드라곤 킹’을 연출했다. 수궁가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바로 ‘범 내려온다’의 이날치 밴드가 결성되는 계기가 됐다. 이어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트&테크’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다. 게다가 그는 올해 3월 영화 ‘더 박스’가 개봉되며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했다. ‘더 박스’는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는 가수와 성공만을 좇는 프로듀서의 성장을 담은 로드무비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더 박스'의 한 장면. 이 작품으로 영화감독 데뷔한 양정웅은 앞으로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작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뉴미디어 시대에 미디어와 공연의 결합에 관해 관심이 컸었는데요. 최근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한층 가깝게 다가선 느낌입니다. 영화의 경우 10년 전부터 제안이 있었지만 여러 여건이 맞지 않다가 평창올림픽 이후에야 도전하게 됐습니다. 원래는 뮤지컬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제작 여건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우선은 음악 영화를 쓰고 연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장르의 벽이 유난히 높은 편이지만 앞으로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작업하고 싶습니다. 제 경우 대극장에서 미장센을 구현하는 작품들을 종종 했었기 때문에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한 영화 작업이 그렇게 낯설지 않습니다.”

사실 그는 LG의 제안을 받을 때도 웹툰 원작의 영화를 준비 중이었지만 지금은 연극을 위해 미룬 상태다. 오랜만의 무대 작업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인 ‘코리올라누스’. 1605~1608년 사이에 쓰인 ‘코리올라누스’는 로마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민족 볼스키족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로마 장군 코리올라누스는 원로원에서 최고 권력인 집정관에 추대되지만 호민관들의 음모로 시민들의 미움을 받는다. 오만한 귀족 엘리트인 그는 시민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결국 로마에서 추방당한다. 이후 볼스키족과 손잡고 로마를 함락 위기까지 몰고 가지만 어머니의 설득에 공격을 포기하는 바람에 볼스키족으로부터 처형당하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한국에선 공연 자체가 많지 않았지만 랄프 파인즈 주연의 영화 ‘코리올라누스’와 영국 국립극단의 NT Live로 상영된 톰 히들스톤 주연의 연극 ‘코리올라누스’로 연극 애호가들에게 꽤 친숙하다.

톰 히들스턴이 타이틀롤을 맡은 영국 국립극단의 '코리올라누스'(왼쪽)와 랄프 파인즈가 주역을 맡은 영화 '코리올라누스'
9번째 셰익스피어 연출…코리올라누스의 신념에 매력

“‘코리올라누스’가 제게 9번째 셰익스피어 작품인데요. 그동안 ‘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십이야’나 ‘햄릿’ ‘맥베스’ 등 낭만희극과 비극을 주로 다루고 로마 정치극은 도전한 적이 없어서 이번에 해보고 싶었습니다. 신념으로 가득 찼지만 결국은 그 때문에 몰락하는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코리올라누스 역은 극단 여행자 출신의 배우 남윤호가 맡았다. 남윤호는 2017년 연극 ‘보도지침’을 마치고 영국 왕립연극학교(Royal Academy of Dramatic Art) 유학을 떠났다. 흔히 RADA로 불리는 왕립연극학교는 스타 배우 로저 무어, 앤서니 홉킨스, 톰 히들스턴 등을 배출한 세계적인 연극학교로 한국 배우가 합격한 것은 남윤호가 처음이었다. 졸업 이후 남윤호는 런던에서 ‘언베리드(Unburied)’라는 작품으로 데뷔하는 등 무대 경험을 쌓은 뒤 코로나 팬데믹으로 귀국했다.

양정웅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국 바비칸 센터와 셰익스피어 글로브에서 초청받아 공연한 국내 유일의 연출가다. ‘셰익스피어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그는 평생 셰익스피어의 희곡 37개 가운데 몇 편을 무대화할지 알 수 없지만 꾸준히 공연할 생각이다.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템페스트’ ‘베니스의 상인’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는 그가 연출하고 싶은 작품 목록의 상단에 올라 있다.

코리올라누스 역의 배우 남윤호(가운데)가 다른 배우들과 작품을 연습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양정웅은 “그동안 셰익스피어나 입센의 희곡을 선택했을 때 공교롭게도 작가가 당시 내 나이와 비슷한 나이에 쓴 작품인 경우가 많았다. 비슷한 나이대에서 오는 공감대나 고민이 이어진 것 같다”면서 “‘코리올라누스’의 경우 귀족과 평민, 전쟁과 평화, 풍요와 빈곤, 이성과 감성 등 상반된 요소들이 뚜렷하게 대립하는 이야기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국가와 이념, 성별에 따른 분리 의식과 혐오가 깊어진 현대 사회의 모습과 놀랍도록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로마 시대의 이야기에 현대적 색채를 입혀 동시대의 이야기로 풀어낼 계획이다. 차가운 흑백의 지하 벙커 무대는 때로는 총과 칼이 격돌하는 전장이 되고, 때로는 무기보다 무서운 음모와 선전이 난무하는 의회와 토론장이 된다.

이날치밴드의 장영규 감독이 음악 맡아

무대 디자인은 ‘페르귄트’ 등 여러 작품에서 함께 했던 무대 디자이너 임일진이 맡았다. 양정웅은 “세계의 종말을 다룬 아포칼립스 계열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작품의 배경은 늘 벙커였다. 벙커는 국가, 가족, 시민으로부터 모두 고립된 코리올라누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적합하다”면서 “임일진 선생은 무대 디자인을 할 때 작품의 주제와 관련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세트를 선호한다. ‘코리올라누스’의 무대 디자인 얘기를 나누다가 벙커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는데, 서로 너나 할 것 없이 바로 ‘이거다’ 했다”고 전했다.

또 이번 작품의 음악은 이날치 밴드의 리더인 장영규 음악감독이 맡았다. 영화음악 감독으로도 유명한 장 감독은 연극 분야에선 양정웅과 ‘페르귄트’ 등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장 감독이 ‘코리올라누스’를 위해 준비한 것은 리듬과 전자음이 강조된 독특한 사운드의 음악이다. 양정웅은 “장영규 감독은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라면서 “항상 상상하지도 못한 음악을 가져온다. 처음엔 낯설게 느껴지지만 곧 작품에 가장 잘 맞는 음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코리올라누스’는 LG아트센터와 경남문화예술회관이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 서울 공연 이후 8월 20일~21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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