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된 코인판.. 상폐 놓고 거래소-발행처 소송전까지

조민아 2021. 6. 2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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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경제] 국내 1위 업비트·피카프로젝트 갈등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는 최근 암호화폐 24종의 거래지원 종료(상장 폐지)를 공지했다. 람다, 픽셀, 피카 등은 오는 28일 낮 12시에 최종 상장 폐지된다.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 내 코인 시세 전광판 앞에서 한 직원이 서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암호화폐(가상화폐) 투자 열풍 속에서 꾸준히 부실 우려가 제기됐던 코인 상장·공시 절차가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불량 코인’ 무더기 상장 폐지를 계기로 국내 암호화폐 거래량 1위 거래소 업비트와 한 코인 발행처의 소송전이 예고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거래소의 자체 코인 상장에 따른 부작용, 발행처의 허위·과장 공시, 불투명한 코인 유통 구조 등의 문제가 고스란히 외부에 드러나고 있다.

일차적으로 무분별하게 코인을 상장했다가 당국 감독이 강화되자 부리나케 불량 코인 상장폐지에 나선 거래소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도 적시에 관련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데 따른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거래소 대 발행처 ‘진실공방’

지난 18일 업비트에서 암호화폐 ‘피카(PICA)’의 상장폐지가 결정되자 피카 발행사 피카프로젝트는 과거에 업비트로부터 일종의 ‘상장 피(fee)’를 요구 받은 적 있다고 지난 20일 공식 블로그에서 폭로했다. 피카프로젝트는 “업비트는 상장 전 이벤트를 위해 피카 코인 500만개(2억5000만원 상당)를 업비트 개인 지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며 “코인을 꼭 줘야 하는지, 마케팅 이벤트로 사용되는 게 맞는지 등 물어봐야 했지만 (거래소와 발행처의) 수직적 관계로 요청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특정 코인 거래가 시작되기 직전 상장 이벤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벤트에 참여해 당첨되면 해당 코인을 경품으로 지급하는 식이다.

다음 날 업비트는 피카프로젝트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21일 업비트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어떠한 명목으로도 거래 지원(상장) 대가를 받지 않는다”며 “이벤트 후 남은 코인은 금고 성격인 ‘콜드월렛’에 보관하고 있다가 추후 다른 이벤트에 사용하거나 발행처에 반환해준다”고 설명했다. 업비트는 남은 피카 코인을 무단 사용하거나 매매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업비트는 조만간 피카프로젝트를 허위사실유포죄 등을 적용해 고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업비트는 피카 코인을 상장 폐지한 이유를 공개했다. 거래소가 코인 상폐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건 이례적이다. 피카프로젝트는 원래 사업 계획보다 2억개 많이 코인을 유통했는데, 업비트가 지적한 뒤에야 이 사실을 공시했다고 업비트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에 대해 피카프로젝트는 “유통 물량에 변동이 있을 때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공지했다”고 재반박했다.

암호화폐 거래소와 발행처 간 분쟁으로 투자자의 추가 피해도 우려된다. 업비트가 피카 코인의 상장폐지를 결정하자 주말 사이 이른바 ‘상폐 빔(상장폐지 직전 시세가 급등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세력이 의도적으로 시세를 올려서 신규 매수자를 끌어들인 뒤 ‘폭탄’을 떠넘기고 탈출하기 위해서다. 피카 코인은 19일 11.76%, 20일 23.68% 이상 급등했다.

상장폐지보다 나쁜건 무더기 상장통과


애초에 업비트가 왜 피카 코인을 비롯해 상장폐지될 코인들의 거래를 허용했는지도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구체적인 코인 상장 기준과 절차는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암호화폐 상장 절차는 코인 발행처가 제출하는 ‘프로젝트 백서(사업 계획서)’를 거래소가 자체 검토하는 게 전부다. 거래소가 코인을 상장시킬 때는 수수료 수익 등을 위해 다소 허술한 기준을 적용했다가, 지난 3월 개정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시행 이후 금융 당국이 규제에 들어가자 뒤늦게 불량 코인 솎아내기에 나선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지금 문제가 된 코인들은 아예 상장 시키지 말았어야 한다고 본다. 상장 통과와 폐지의 일관된 기준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 일본 등의 암호화폐 거래소는 최대 50개 정도의 코인 거래를 허용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 거래소는 코인 종목이 200여개에 육박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짚었다. 쉽게 말해 ‘무더기 상장폐지’ 전에는 ‘무더기 상장통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어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자율적인 규제로 코인을 관리하겠다고 정했으면 그 기준과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투자자들도 ‘이건 불량 코인이구나’ 알고 상장폐지 전에 준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의 암호화폐 관리·감독안에 코인 상장 조건이나 공시 강화 등이 포함되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지난 17일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암호화폐 거래소는 본인 및 특수관계에 있는 자가 발행한 코인을 취급하지 못한다. 임직원이 해당 거래소에서 거래하는 행위도 금지되지만 상장이나 공시 관련 내용은 부재하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암호화폐 거래소 20여곳에 상장폐지 됐거나 유의 종목으로 지정된 코인 명단 제출을 요구했다.

이런 와중에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코인 솎아내기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업비트는 지난 12일 마로·페이코인 등 5종에 이어 18일 24종을 추가로 상장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하루에 코인 24종의 거래를 중단시킨 건 업비트 사상 최대 규모다. 빗썸도 코인 4종의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다른 거래소 프로비트는 지난 1일 145개 코인의 거래를 중단했다. 그러나 투자자에게는 여전히 구체적인 상장폐지 근거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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