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는 왜 금융을 콕 찍었나
플랫폼 기업 카카오가 명실상부 금융그룹으로 도약한다. 카카오는 기존 은행과 증권업에 이어 보험업 진출을 본격화해 금융그룹으로 봐도 손색없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카카오는 2014년 카카오페이의 간편결제 서비스를 시작으로 2017년 카카오뱅크, 2020년 카카오페이증권까지 금융 플랫폼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해왔다. 카카오페이는 금융당국으로부터 보험업 예비인가를 받아 보험업 진출도 임박했다. 이르면 올해 말 ‘카카오손해보험’이 영업을 시작한다. 수천만 명의 가입자가 쓰는 카카오톡이라는 막강한 기반 플랫폼을 발판 삼은 카카오가 금융그룹으로의 변신 채비를 사실상 완료함에 따라 기존 금융지주와 사활을 건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용자 ‘연결’ 강점 카카오
▷네이버와 결이 다른 전략 눈길
먼저 카카오가 금융 분야를 콕 집은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카오는 모바일 메신저로 시작해 연결 기능에 특화한 플랫폼이다. 플랫폼 기업이 계속 기업으로 성장을 이어가려면 탄탄한 사용자 수를 확보하고 이를 통한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네트워크 효과란 특정 플랫폼의 가입자 수가 많아질수록 사용자가 누리는 효용이 커지는 현상을 뜻한다. 카카오는 하나의 사용자 그룹만 존재했던 단면 플랫폼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수천만 명에 달하는 사용자풀을 구축했다.
카카오가 다음 선택지로 다면 혹은 양면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택한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다면 플랫폼은 소비자와 공급자 등 사용자 그룹이 2개 이상 존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다면 플랫폼으로의 변신은 플랫폼 기업의 장기 생존을 위한 숙명과도 같은 과제다. 아마존, 넷플릭스를 비롯한 대부분 플랫폼이 여기에 속한다. 카카오는 다면 플랫폼으로 성장 전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대상으로 금융을 택했다. 금융은 상품을 구매하는 사용자와 상품을 공급하는 판매자 그룹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양면 시장이다. 카카오는 모바일 메신저라는 기반 플랫폼을 레버리지 삼아 기존 사용자들이 또 다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펼쳤다.
특히 다면 플랫폼 성장동력 원천은 교차 네트워크 확보라는 점에서 금융업의 속성과 결이 맞는다는 분석이다. 교차 네트워크는 아마존 사례를 떠올리면 쉽다. 아마존에서 구매자가 많아지면 판매자는 수요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므로 플랫폼 가치가 상승한다. 판매자가 많아질 경우도 마찬가지다. 판매자가 많아지면 구매자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상품을 고를 수 있어 플랫폼 가치 증가로 이어진다. 결국 카카오가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업의 전 영역을 망라한 것은 다면 플랫폼 진화 과정에서 교차 네트워크 효과와 플랫폼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복안이 깔려 있다.
카카오가 플랫폼 간 사용자 계정을 통 합하고 멤버십 서비스를 구축한 것도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키우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확산하려면 서로 다른 사용자들이 기반 플랫폼을 중심으로 손쉽게 플랫폼을 오가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김학용 디지털비즈니스인사이트연구소장은 “다양한 서비스 플랫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고객 데이터는 기업들로 하여금 고객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들어 고객 맞춤형 서비스는 물론 선제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차별화된 서비스가 플랫폼 사업자의 수익성을 개선할 것은 불 보듯 자명하다”고 진단했다.
흥미로운 점은 카카오는 네이버와 결이 다른 플랫폼 전략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이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서로 속성이 다른 플랫폼 사업자라는 것과 무관치 않다. 네이버는 구글처럼 검색 기반으로 가입자 수를 확보했다. 구분하자면 카카오는 메신저를 통한 사용자 간 ‘연결’에, 네이버는 검색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에 강점이 있다. 이 때문에 네이버는 금융 시장 플랫폼 사업자로 전면에 나서기보다 미래에셋금융그룹과 전략적 연합을 통해 상품 중개 기능에 특화한 데이터 기반 빅테크로 방향을 잡았다.
시장에서는 적어도 국내 금융 시장에서만큼은 이익의 독점적인 점유 역량에 관해 네이버보다 카카오의 전망을 더 밝게 보는 분위기다. 이는 기업 간 전략적 연합이 가진 이중적인 속성 탓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전략적 연합은 신사업 리스크를 완화하고 서로 사업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 장점이 분명하다. 하지만 진짜 돈이 되는 사업 기회를 두 기업이 마주했을 때 네이버와 미래에셋처럼 시장에서의 지위 평판이 대등한 기업은 협력보다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 미래에셋은 ETF 같은 패시브 상품에 전사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이런 류의 상품은 리스크가 낮은 대신 수익률도 그만큼 낮아 소비자들은 수수료에 매우 탄력적이다. 플랫폼 속성상 소비자에게 수수료를 반복적으로 전가하다 보면 소비자가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고 귀띔했다.
▶몸값 고공행진 카카오뱅크
▷손보는 생활밀착형 상품 주력
현재 카카오의 금융 플랫폼 중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는 곳은 카카오뱅크다.
카카오뱅크는 2017년 7월 27일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지난 5월 말 기준 이용자 수는 1653만명, 계좌 고객 수는 1447만명에 달한다.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뱅킹 앱 부문 카카오뱅크 월간 이용자 수는 1400만명을 넘어섰고 2위와 격차를 벌리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수신과 여신 잔액은 각각 26조690억원, 22조7203억원 등이다. 실적 상승세도 가파르다. 2019년 137억원이던 당기순이익은 2020년 1136억원으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모기업 카카오의 막강한 사용자 수를 기반으로 직관적인 모바일 앱 구성, 목표달성형 등 차별화된 금융 상품 제공, 모바일에서의 높은 거래 완결성 구현 등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카카오뱅크의 기업공개(IPO)는 금융투자업계 최대 관심사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카카오뱅크의 기업가치를 ‘10조원+α’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예로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카카오뱅크의 기업가치를 15조원가량으로 내다봤다. 전 애널리스트는 “카카오뱅크가 IPO 과정에서 2조원의 자본을 충원해 총 5조원 규모로 IPO를 추진한다고 가정했고 해외 인터넷은행의 사례를 참고해 만든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는 “카카오뱅크를 플랫폼 업체라고 가정했을 때 기업가치는 20조~27조원으로 부여할 수 있다”고 보탰다.
이런 평가를 두고 카카오뱅크 이익과 자산 규모에 비해 고평가됐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 1위 금융지주 KB금융 시총은 약 23조원(지난 6월 16일 종가 기준)이다. 자산 규모는 2020년 말 기준 596조원, 순이익은 3조5000억원으로 카카오뱅크를 압도한다. 하지만 혁신을 비롯한 무형 자산 가치를 보는 투자자 시선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고 이런 기대감이 카카오뱅크 기업가치에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카카오페이는 높은 확장성으로 주목받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언택트 트렌드를 타고 가입자 수가 폭증했다. 현재 카카오페이 누적 가입자 수는 약 3700만명이다. 사용자 수가 급증하면서 카카오페이 거래액은 빠르게 늘었다. 2017년 분사 당시 3조8000억원이었던 연간 거래액은 2018년 20조원, 2019년 49조원, 2020년 67조원으로 늘었다. 카카오페이 성장의 또 다른 축은 카카오페이증권이다. 2020년 2월 인수한 바로투자증권이 전신이다. 카카오페이증권 계좌는 지난 5월 말 기준 400만개를 돌파했다. 국내 증시는 ‘동학개미’로 불리는 젊은 개인 투자자 영향력이 커졌다. 이들의 증시 유입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 비춰 카카오 기반 증권사의 성장 잠재력은 높다.
곧 출범 예정인 카카오손해보험은 생활밀착형 보험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친구와 함께 가입하는 동호회보험, 스마트폰 파손보험 등이다. 카카오손해보험은 중국 온라인 전문 보험사 ‘중안보험’과 미국 인슈어테크 기업 ‘레모네이드’를 롤모델 삼았다. 중안보험은 알리바바가 텐센트, 평안보험과 손잡고 2013년 설립한 보험사다. 보험 기간이 짧고 보험료가 저렴한 상품으로 MZ세대 고객을 끌어모았다. 레모네이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보험 가입과 보험금 지급 등의 절차가 간편하다.
▶장기 성장 기반 마련 숙제
▷모빌리티 대응 역량 제고해야
카카오의 금융 플랫폼 전략에 장밋빛 시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성장세가 가파른 것은 맞지만 주 연령층이 20~30대로 자산 성숙도가 낮다. 카카오뱅크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20~30대 비중은 59%로 나타났다. 자산 축적 성숙기에 접어든 50대 이상은 15%로 2018년보다 5%가량 상승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젊은 세대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이 고착화된 탓에 자산 축적에 대한 기대감이 중장년세대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20대 청년층은 저축보다 소비를 선호하는 ‘욜로(현재를 중시하는 인생관)’ 성향이 두드러졌다. 이 조사에서 청년층 응답자의 34.2%는 ‘저축보다 소비를 선호한다’고 답해 반대 응답률(26%)보다 높았다.
저조한 저축률은 은행업에서 간단치 않은 이슈다. 아무리 솔깃한 상품을 내놓더라도 결국 은행업 본질은 예대마진(예금과 대출금리 차이에서 얻는 이익)으로 귀결된다. 다시 말해, 예금 확충을 통한 수신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채 높은 조달 금리를 감당하며 ATM 기기처럼 고객에게 무한정 돈을 빌려줄 수 없는 노릇이다. 모기업인 카카오 재무구조가 건실한 것은 유사시 카카오뱅크의 자본 확충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버팀목이 되겠지만, 카카오 또한 성장기업으로 인수합병 등 성장 전략과 지속적인 설비 투자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20대의 외면과 낮은 저축률은 기존 전통 은행업에도 부담 요인이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중장년층 고객 기반이 두텁고 법인 고객 네트워크가 탄탄하다.
일각에서는 카카오의 손보업 진출을 두고 우려 섞인 시선도 제기한다. 일단 보험업 자체가 여러 요인으로 전망이 밝은 산업은 아니다. 카카오가 생보가 아닌 손보업을 택한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간단히 말해 보험업은 고객에게 받은 돈(부채)을 열심히 투자해서 운용을 잘한 뒤 여기서 번 이익 중 일부는 고객에게 보험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일부는 보험사 자본금으로 유보하는 구조다. 특히 보험업은 주된 투자 자산인 채권의 듀레이션 관리가 핵심이다. 듀레이션은 주식의 변동성을 뜻하는 베타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채권 만기가 길수록 듀레이션이 커지며 이는 곧 시장 금리에 대한 채권 가격 변동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생명보험 상품은 특성상 손해보험보다 만기가 길다. 암보험과 자동차보험을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금리가 사실상 제로 수준인데다 보험 소비자들의 수명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저금리 탓에 운용 수익률을 올리기 힘들고 평균 수명 연장으로 상품 만기가 길어져 투자 자산의 듀레이션을 관리하기는 더욱 까다롭게 됐다. 이 때문에 자동차보험 등 상대적으로 만기가 짧은 손해보험이 저금리 국면에서 듀레이션 관리에 수월하다. 카카오가 손보업 진출을 택한 것에는 이런 판단이 깔려 있다.
결국 손보업은 자동차보험을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 실현을 구사하는 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다. 카카오가 표방한 ‘생활밀착형 상품’은 사용자를 끌어들이려는 일종의 ‘미끼’ 상품이다. 종국에는 자동차보험 시장 진출을 노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내연기관 중심 자동차 산업이 모빌리티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기존 손보업에서는 자동차 사고 책임을 운전자에게 있다고 봤다. 자율주행 고도화를 동반한 모빌리티 산업에서는 자동차 사고의 책임이 운전자가 아니라 자동차제조업체나 이동서비스 제공자로 이동할 수도 있다. 이런 구도 아래서는 기존 보험사를 건너뛰고 자율주행 주행 데이터가 축적된 자동차 제조사가 직접 보험 상품을 공급하는 식으로 시장 구조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모빌리티 산업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이미 나타났다. 테슬라는 2019년 9월부터 자사 전기차를 대상으로 ‘테슬라 전용 보험’을 제공한다.
석승훈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모빌리티 시대에는 자동차보험 관련 논의가 운전자 중심에서 자동차 제조사나 더 나아가 이동 서비스 제공자 중심의 보험으로 전환하고 현재의 자동차보험 역할은 제조사의 배상책임보험으로 이전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이유로 카카오 측은 기존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보험 시장에 진출하는 한편, 모빌리티 시대 새로운 보험 상품에 대비해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완성차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카카오 vs 네이버, 뜨거운 시총 大戰
자회사 줄상장 카카오 호재 만발
카카오가 네이버를 제치고 코스피 시가총액 3위에 오르는 등 순위 경쟁이 치열하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앞으로 카카오뱅크를 비롯한 ‘대어급’ IPO가 잇따를 카카오 주가가 네이버 대비 상대적 강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카카오 시총은 65조원 안팎, 네이버는 64조원 수준에서 오르내린다. 카카오는 지난 6월 14일 장중 네이버 시총을 첫 추월한 데 이어 이제는 종가 기준으로도 네이버를 앞질렀다. 카카오 시총은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상장일인 2014년 10월 14일 7조8679억원으로, 당시 네이버(24조9857억원)의 30% 수준에 그쳤다. 이후 카카오는 줄곧 네이버와 시총 격차를 줄여오다 지난해부터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고 올 들어 네이버를 추월하는 데 성공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시총 역전의 원인으로는 플랫폼 전략 차이가 첫손에 꼽힌다. 당장 자회사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의 상장 기대감이 무르익었고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 등 주요 자회사 역시 상장을 노린다. 지난 4월 15일 액면분할 이후 유동성이 개선된 덕도 봤다. 성종화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카카오가 인터넷전문은행 사업 참여에 대한 과감한 의사 결정, 플랫폼 중심 신사업의 분사·IPO 추진 등 주주 가치 제고에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고 판단했다. 그는 “네이버도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핵심 플랫폼 사업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가치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4호 (2021.06.16~2021.06.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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