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株 소수점 주식 거래..유동성엔 '굿' 의결권엔 '배드'

배준희 2021. 6. 2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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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식 '소수점 거래' 도입 요구 봇물
유동성 장세가 지속되면서 국내 증시에서도 주당 가격 100만원에 육박하는 고가 주식이 속출했다. 이에 따라, 해외 주식에 제한적으로 허용된 소수점 거래를 국내 주식에 전면 적용해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연합뉴스>
LG화학처럼 주당 가격(종가)이 100만원에 육박하는 고가 코스피 우량주를 소수점 단위로 쪼개 살 수 있는 거래 서비스가 도입될지 투자자 관심이 높다. 현재 값비싼 주식의 소수점 거래는 해외 주식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핀테크업체와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내 주식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소수점 거래를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지만 이를 두고 금융당국 고민이 깊다. 주식 1주를 기본 단위로 하는 현행 거래 시스템과 배당, 의결권 등 주주의 권리 행사를 어떻게 할지 등 손봐야 할 기존 관행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019년 ‘혁신 금융 서비스 샌드박스’ 일환으로 도입된 해외 주식 소수점 거래 만료 기한이 임박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오는 7월, 한국투자증권은 11월 각각 만료된다.

두 증권사는 소수점 거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상태다. 이미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3월 금융위에 연장을 신청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오는 11월 만료 전까지 재승인을 신청한다. 금융위 자본시장과 관계자는 “연장 여부에 관해 정해진 것은 없다”며 “소수점 거래를 전면 도입할지 논의 단계와 진척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주식 소수점 거래는 지금처럼 주식 1주 단위로만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소수점 단위까지 쪼개 거래하는 방식이다. LG화학 주식을 예로 들자. 지난 6월 15일 기준 LG화학 주당 가격은 82만원이다. 5주만 사도 410만원으로 어지간한 대기업 월급과 맞먹는다. 소수점 거래는 82만원인 LG화학 주식을 0.1주인 8만2000원(82만원×0.1)에도 살 수 있게 허용하자는 것이다.

소수점 거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무엇보다 최근 주식 시장 참여자의 연령대가 과거보다 대폭 낮아졌기 때문이다. 2020년 3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증시 급락과 이후 반등장에서 20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투자자층이 증시에 대거 진입했다.

이들은 최근 수년간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박탈감이 크며 이에 대한 보상 심리로 주식 시장에 대거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직 금융 자산 형성이 초기 단계인 만큼, 고가 우량 주식을 대량 사들이기 어려워 이에 대한 보유 문턱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거센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격히 불어난 통화량으로 이전보다 고가 주식이 늘어난 이유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은 GDP 손실을 메우려 무제한적인 돈 풀기 정책으로 대응했고 이는 대거 증시로 유입돼 고가 주식이 쏟아졌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소수점 거래에 대해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소수점 거래 활성화는 투자 저변을 넓히고 장기적인 우량 고객을 육성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초대형 IB의 고객자산관리담당 부장은 “소수점 거래는 보유 자산이나 종잣돈의 규모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돼야 한다는 투자의 기본 명제에 잘 부합하는 것으로 보여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소수점 거래 허용 시 기대되는 또 하나의 장점은 유동성 개선 효과다. 소수점 거래는 현행 액면분할과 효과가 동일하다. 소수점 거래가 국내 주식에도 전면 적용된다면 상장 기업이 굳이 액면분할에 나설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액면분할은 주식 액면가를 낮춰 주식 수를 늘리는 것으로 기업 본질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1주당 액면가 500원인 주식을 5 대 1로 액면분할한다고 치자. 이 경우 500원인 주식을 각 100원씩 5주로 쪼개는 것이다. 내 주머니에 들어있던 500원짜리 주식이 5개로 늘어나는 것일 뿐 기업 본질 가치는 불변이다. 과거 삼성전자가 주주 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액면분할을 실시했던 때를 그려보면 이해가 쉽다.

분산 투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시총 상위 우량 종목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되면 소액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기여할 수 있다.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의 ‘몰빵식’ 투자 행태도 제한적으로나마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소수점 거래에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20대 투자자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박탈감 탓에 주식 시장에 대한 요구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통상 주식에 대한 요구수익률은 10% 안팎으로 보지만 이들은 이보다 기대치가 훨씬 높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 시각이다. 비트코인으로 젊은 투자자가 불나방처럼 몰려든 것도 엄밀히 말해 소수점 거래 등 거래 편의성 때문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소액으로 투자해 소위 대박을 칠 수 있다’는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춰, 소수점 거래로 투자 접근성이 개선될 코스피 고가주는 대부분 시총 상위주로 주가 변동성은 낮다. 소수점 거래 시스템 구축을 위해 예상되는 비용과 편익을 따졌을 때 비용은 명확하지만 편익은 아직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당국이 고민하는 것도 이런 지점이다. 소수점 거래가 도입되면 의결권 부여 방식과 주주 권리 등 기존 관행 대부분을 싹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예탁원에 예탁되는 주식의 기본 단위는 1주다. 상법상 규정된 주주 권리도 1주를 기본 단위로 한다. 소수점 주식 보유분에 대해서는 예탁자 명단에 올릴 수 없어 유상증자, 주식분할, 배당 등 각종 권리에서도 제외된다. 보통주를 보유한 주주는 해당 기업 의사 결정에 참여할 의결권을 가지는데 만약 0.1주를 가진 주주라면 의결권을 어떤 방식으로 행사하도록 할 것인지, 주당 배당금을 어떻게 나눠 지급할지가 녹록지 않다. 코스닥 상장사의 IR부서 관계자는 “상장법인 입장에서는 주주 수가 대폭 늘어날 경우 0.1주를 가진 주주의 의결권 0.1표를 실제 주주총회 현장에서 어떻게 처리할지부터가 고민스럽다”고 털어놨다.

소수점 거래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 현재 국내 증권사가 해외 주식에 대해 제한적으로 실시 중인 소수점 거래 서비스나 해외에서 실시 중인 소수점 거래 서비스는 거래 행태가 제각각이다. 무엇보다 소수점 거래의 대부분 체결 방식이 거래소에서 정의한 최소 수량을 맞추기 위해 고객 주문을 모으거나 증권사 내부 주문을 동시에 집행해 거래소에 요청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현재 해외 주식 소수점 거래 서비스를 제공 중인 신한금융투자와 한국투자증권은 투자자로부터 0.5주 등 소수점 주문을 받아 1주를 만들어야 한다. 실시간 거래는 불가능하다. 정해진 시간에 주문을 넣어야 한다. 수수료도 소수점 거래(0.25%)가 일반 해외 주식 거래(0.1%)보다 두 배 비싸다. 다시 말해, 개인 투자자들이 원하는 가격과 시점에 즉각적으로 주식을 사고팔 수 없어 유동성 리스크가 존재한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소수점 거래는 소액 투자자의 투자 기회 확대·분산 투자 용이 측면에서 효과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대체 방안이 제시되고 있는 만큼 해외 사례를 참고해 소수점 거래를 활용한 다양한 자산 관리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4호 (2021.06.16~2021.06.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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