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보수' vs '꼰대 진보'..뒤바뀐 色
오스트리아 수상 쿠르츠는 지금도 민주주의 국가 수반 중 최연소 국가수반이다. 그는 10대부터 국민당(Volkspartei) 활동을 했고 23세에 당의 청년 대표로 지냈다. 20대 후반에는 장관에 올랐고, 마침내 31세 나이에 오스트리아 수상이 됐다.
1845년 이래 벨기에 최연소 총리라는 타이틀을 얻은 바 있는 샤를 미셸 전 수상은 38세에 집권했다. 그는 16세부터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18세에 주의원이 됐으며 23세에 연방 하원의원에 선출됐다. 이후 25세에 벨기에 역사상 최연소 장관 자리에 오른다. 이런 과정을 거쳐 38세에 집권한다.
G20 국가수반 중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39세에 집권했다. 그 역시 대학 시절부터 정치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다.
유럽 사례를 언급한 것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가장 큰 충격과 이변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대표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보수 정당이 이런 이변을 일으킨 것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30대에 집권하거나 당수가 된 이들 모두 우파 혹은 중도 우파 정당 소속이다.
우리는 정치 현상을 바라볼 때 상당한 편견을 갖고 있다. 젊은 정치인을 등용하는 것은 진보 정당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유럽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오히려 우파 혹은 중도 우파 정당이 젊은 정치인에게 기회를 더 많이 줬다. 진보 정당 소속으로 38세에 아일랜드 수상에 올랐던 레오 바라드카나 34세에 집권한 핀란드 산나 마린 수상이 예외처럼 보인다.
이준석 신임 대표 당선을 두고 세대교체 신호탄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데,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유럽에서 30대에 집권하거나 정당 대표가 된 이들 대부분은 10대부터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즉, 나이는 젊지만 정당 활동 경력은 적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난 6월 10일 대한민국 중앙선관위는 만 16세 이상 청소년의 교육감 선거, 당원 가입 등 참정권 확대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정당법’ ‘지방교육자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렇게 법을 고쳐도 유럽처럼 10대가 정당 활동을 시작하기에는 우리나라 상황이 너무나 열악하다. 만 16세면 고등학생인데, 현재 우리나라 입시 제도 아래서는 고등학생이 정당에 가입하고 정치 활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유럽의 젊은 정치인 거의 대부분은, 대학을 중퇴한 적은 있어도 모두 자국의 명문대 출신이다. 유럽은 10대부터 정치 활동을 해도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유럽과 같은 ‘정치 조기 교육’은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빨라야 대학생인 20대부터 정치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취직을 하지 않고 정당 활동만 할 경우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 취직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취직을 위해서는 정당 활동은 고사하고 취미 생활도 포기해야 할 판이다. 다행스럽게 취직을 해도 직장 생활과 정당 활동을 병행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제2의 이준석’이 나오기 쉽지 않다.
이준석 대표 탄생이 세대교체 신호탄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번 전당대회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치러졌다는 점이 두 번째 이유다.
일반적으로 대선을 앞두고 열리는 전당대회에서는 당심과 민심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선 승리를 위해 당심은 ‘당연히’ 민심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 또한 우리나라 보수 정당에서 30대 대표가 탄생할 수 있었던 중요한 환경적 요인이다. 평시에 치러진 전당대회였다면, 민심이 압도적으로 이 대표를 지지해도 당심이 꿈쩍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해도 당원들의 전략적 감각이 없었다면 이 대표 당선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심이 민심을 받아들인 배경에는 ‘보수의 전략적 감각의 회귀’도 한몫했다. 과거 새누리당 시절 그 나름 빛을 발했던 보수의 정치적 감각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지난 보궐선거 압승을 통해 이런 감각이 다시금 살아난 듯 보인다. 보수의 전략적 감각이 살아나지 못했다면, 이념적 경직성에 매몰돼 지금 같은 결과는 나오지 못했을 테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아직도 이념적 경직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싶다. 송영길 대표가 민심에 호응하는 모습을 취하려 해도, 강경 세력에 막혀 그 의도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차이가 오늘날 ‘변화의 보수’ 대 ‘꼰대 진보’라는 구도를 형성시켰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나타난 ‘보수의 전략적 감각’은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인물은 서울 배현진 의원, 호남 출신 조수진 의원, 영남이 지역구인 김재원 전 의원 그리고 경기도 출신 정미경 전 의원이다. 이들의 출신 지역 혹은 지역구를 보면, 영호남 그리고 서울과 수도권이다. 이는 ‘국민의힘 = 영남당’ 프레임을 여지없이 불식한다. 한마디로 이준석 대표 선출로 꼰대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한순간에 사라졌으며, 최고위원들을 통해 영남당 프레임도 불식됐다.
이런 측면으로 평가하면, 대선을 앞둔 지금의 시점에서 국민의힘은 민주당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외부 인사 영입이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국민의힘을 능가하며 동시에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줄 3지대 정당을 창당하기란 현재로서는 어렵기 때문이다. 3지대 정당을 창당해 설령 젊은 정치인을 내세운다 해도, 인지도나 정치 경력 면에서 이준석 대표와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이 확실하다. 그런 상황에서 현역 의원이 없거나 소수 의원만 갖고 정당을 창당해봤자 별 호응을 얻기도 힘들다.
윤 전 총장 측이 8월 입당 생각을 한다면, 지금과 같은 지지율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모호한 선(禪)문답식 답변만을 유지한다면, 유권자들이 현재 윤 전 총장에게 갖는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지지율은 떨어진다. 이미 지나간 얘기지만, 이준석 대표 취임 직후 입당했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었을 테다. 대선을 향해 시계가 돌아가고 있고, 현재로서는 국민의힘에 유리한 국면인 것 같다. 하지만 대선까지는 9개월여가 남았기 때문에, 지금의 판세가 유지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확실한 점은 변화와 기득권 포기만이 민심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4호 (2021.06.16~2021.06.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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