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대출은 현대 금융이론에도 부합, 성공 가능성 높다"
[조선혜, 이희훈 기자]
▲ "금융이론을 공부하는 관점에서 봤을 때도 나쁘지 않은 제도다. 적어도 퍼주기식 정책은 아니다. 기본대출의 취지는 모두의 출발선이 각각 다르니 금융 분야에서도 최소한의 보편적인 복지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
ⓒ 이희훈 |
"저는 불평등 이슈를 공부한 적은 없습니다. 한국은행,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일했고, 지금은 금융론을 가르치고 있죠. 정말 자본주의적인 금융이론을 공부해온 사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기본대출을 부정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강경훈 동국대(경영학과) 교수가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기본대출이 자본주의 금융이론에도 부합하는 제도라며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기본대출은 금융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 1000만원까지 무심사·저금리로 대출해주자는 구상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도입 논의가 본격화 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지도지사가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기본대출에 대해 '금융시장의 기본 원리를 무시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강 교수는 기본대출에 대한 강한 확신을 나타냈다.
강 교수는 한국은행과 금융연구원을 거쳐 강단에서 금융론을 가르치며 30년 가까이 금융에 천착해 왔다. 금융기본권 보장이나 금융민주화와 같은 이슈와는 다소 거리가 먼 궤적을 그려온 것이다. 그런 강 교수가 기본대출에 주목한 배경은 이 제도가 현대 금융이론의 핵심과 맞닿아 있어서다.
강 교수는 "낮은 금리가 채무자의 상환 의지를 더 고취한다는 현대 금융이론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라며 "그런 측면에서 저금리로 설계된 기본대출은 금융이론에도 부합하고,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살면서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언제든지 저금리로 1000만원을 빌릴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라며 "기본대출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11일 동국대 연구실에서 강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젊은 친구들 중에 기본대출을 이용해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저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선택이고 책임이 따른다. 본인에게는 평생 한 번뿐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날리는 셈이 된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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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대출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배경이 궁금하다.
"금융이론을 공부하는 관점에서 봤을 때도 나쁘지 않은 제도다. 적어도 퍼주기식 정책은 아니다. 기본대출의 취지는 모두의 출발선이 각각 다르니 금융 분야에서도 최소한의 보편적인 복지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햇살론 같은 정책성 서민금융상품도 금리가 꽤 높다. 17%까지 가기도 한다. 그런데 기본대출은 3~4%의 저금리로 1000만원까지 가능하고, 신용 평가 등 자격 심사를 하지 않는다. 살면서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언제든지 저금리로 1000만원을 빌릴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다."
- 실제 어떤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을까.
"대부업 관련 연구용역을 할 당시 대부업체에서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이 갑자기 단체 손님을 받는 중요한 사업 기회를 얻었는데, 재료 살 돈이 없어 대부업체 돈을 빌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낮은 금리로 언제든지 돈을 빌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이런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안정감은 매우 클 것이다. 또 갑자기 수술 등으로 큰돈이 필요할 때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면 이자가 너무 높지 않나. 기본대출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 하지만 일부에선 대출자들이 제대로 돈을 갚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젊은 친구들 중에 기본대출을 이용해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저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선택이고 책임이 따른다. 정부는 추가로 돈을 빌려주지도 않을 것이고, 제 때 상환하지 못하면 개인 신용도에는 당연히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본인에게는 평생 한 번뿐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날리는 셈이 된다."
-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낭비가 될 것이란 지적도 있는데.
"정책성 서민금융대출은 사채보다 상대적으로 상환율이 높다. 이자율이 낮고, 조건이 좋기 때문이다. 대출자들은 사채 자금을 끌어들여서라도 정책성 대출을 갚으려 한다. 사채는 기록에 남지 않지만, 정책성 대출은 나중에 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기본대출이 저금리라는 점에서 오히려 현대 금융이론에 부합한다고 본다. 최근에는 낮은 금리가 채무자의 상환 의지를 더 고취한다는 내용의 이론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금리를 높이면 대출자 입장에서는 100만원을 빌려도 20만~30만원을 이자로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출금을 활용해 위험이 높은 데 투자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상환 가능성은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고금리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현대 금융이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금리인 기본대출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 기본대출이 실제 시행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우려가 큰 것 같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학자금 대출제도가 그나마 기본대출에 가깝다. 대학에 가면 심사 없이 무조건 대출해주고, 천천히 갚아도 된다. 그런데 최근 경기도에서 추진하는 기본대출은 용도를 구분하지 않는다. 당장 급한 수술비, 생계비 등 다양하게 쓸 수 있다. 기본대출은 기본소득을 보완해주는 제도다. 기본소득으로 몇십만원씩 받게 되더라도 급한 일이 생겼을 때 활용하긴 힘들다. 그럴 때 기본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 "저는 기본대출이 저금리라는 점에서 오히려 현대 금융이론에 부합한다고 본다. 최근에는 낮은 금리가 채무자의 상환 의지를 더 고취한다는 내용의 이론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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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비슷한 제도인 정책성 서민금융상품에 대한 2019년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 결과가 눈에 띈다. 대출 1년 이후에는 대출 미이용자에 비해 오히려 DTI(총부채상환비율)는 상승, 신용등급은 하락했고, 채무조정 신청 확률은 높아졌다는 내용이다. 기본대출도 당초 취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연체율은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올라간다. 정책성 대출뿐 아니라 일반 은행 대출도 그렇다.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KDI 자료를 본 적이 있다. 말씀하신 연구와 유사한데, 업력·신용도 등이 비슷한 집단을 뽑아내 정책성 대출을 받은 기업들과 받지 않은 기업들의 상황을 추적하는 식이다. 중소기업이 파산하는 일은 흔하다. 그런데 정책성 대출이 아닌 민간 대출을 이용한 뒤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기업이, 정책성 대출을 받았지만 파산한 기업에 비해 더 좋은 결과를 냈다는 게 KDI의 결론이다. 살아남은 기업과 파산한 기업을 비교하면서 엉뚱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 KDI 연구에 맹점이 있었다는 건가?
"이 연구에는 생존자 편향의 오류가 포함돼 있다. KDI도 해당 연구에 생존자 편향의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기본대출의 효과를 검증하려면 전 국민 중 비슷한 조건에서 대출을 받은 이와 아닌 이를 비교 연구해야 하는데, 현재까지의 실증분석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려는 것이냐는 비판도 많다.
"저는 불평등 이슈를 공부한 적은 없다. 한은과 금융연에서 일했고, 지금은 금융론을 가르치고 있다. 정말 자본주의적인 금융이론을 공부해온 사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기본대출을 부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기본대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실제 증거가 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하는 것인데 실제 사례가 어디 있나.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검증이) 충분히 가능하다. 많은 학자가 수많은 논문을 통해 증명해냈다. 조셉 스티글리츠는 관련 연구로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스티글리츠가 인정받은 업적 중 하나가 신용할당이론이다.
그동안 대출 시장의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이 이뤄진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발견했는데,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스티글리츠는 금리를 내려 상환할 의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모두가 대출을 쉽게 받게 하더라도 은행 입장에서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냈다."
- 어떻게 그런가.
"좀 더 쉽게 예를 들면 이렇다. 기업이 아무리 애를 써도 면접 등을 통해 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랬을 때 급여를 높이면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들이 모두 오게 된다. 반대로 급여를 낮추면 일 잘하는 사람들은 오지 않고, 대부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오게 된다. 그렇다면 임금을 높이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기업이 임금을 많이 주는 이유다. 은행에 이를 대입해보면, 대출 금리를 너무 높이면 상환 가능성이 적은 사람들만 몰리게 된다. 이 때문에 은행이 실제 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것이다."
- 최근 발의된 기본대출법을 보면 연체율을 10%로 가정했는데, 적정하다고 보나. 정책성 금융상품의 연체율은 신용등급 4~6등급의 경우 16%, 7~8등급의 경우 22%인데.
"저는 기본대출의 실제 연체율은 10%보다 낮을 것으로 본다. 정책성 대출의 금리가 17% 등으로 꽤 높다. 본인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도달한 뒤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4~10등급의 연체율과 정책성 대출을 받은 4~10등급의 연체율은 다르다. 전체 국민 중 1명의 연체 확률을 따져보면 정책성 대출의 연체율보다 훨씬 낮을 수 있다. 기본대출은 저금리로 시행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 "기본대출은 담당 직원이 열심히 심사해 대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한다. 학자들이 기본소득에 큰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행정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대출을 디자인할 때 일자리 연계까지 가져가면 백전백패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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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DI나 다른 전문가들은 정부에서 금융취약계층에 대출을 제공하더라도 이들의 정상 상환을 유도할 수 있도록 일자리 연계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금 발의된 기본대출법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1000만원을 대출해주면서 일자리 연계까지 진행하게 되면 인건비 등 행정비용은 어떻게 감당하나. 비용을 줄이려면 재능기부를 받아야 하는데, 전문적인 상담을 기대하긴 어렵다. 기본대출은 담당 직원이 열심히 심사해 대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한다. 학자들이 기본소득에 큰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행정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는 필요하고 좋은 것이지만, 행정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기본대출을 디자인할 때 일자리 연계까지 가져가면 백전백패다."
- 기본대출법이 만약 시행될 경우 200조원이라는 대규모 재원이 필요해 부담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회사의 출연금도 투입하도록 설정해 '은행 쥐어짜기'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우리 사회에서 금융이든, 소득이든, 주거 서비스든, 불평등도가 상당히 높지 않나. 이를 해소하려면 국가 재정이 많이 투입되는데, 기본대출은 재정 소요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저는 기존 예상의 절반도 대출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경제활동인구 중 절반은 대출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200조원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한은이 참여할 수도 있다고 본다. 지금도 한은은 은행들에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하고 있다. 0.25% 등 굉장히 낮은 금리다. 기본대출에 필요한 재원도 그런 식으로 지원할 수 있다. 사실 시중은행에도 유동성은 넘쳐난다."
- 결국 대출자가 제 때 돈을 갚을 수 있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실제 돈을 갚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서 돈을 받기는 너무나도 힘들다. 그래서 은행은 사전에 대출 설계를 잘 짜거나, 심사를 잘해야 한다. 기본대출은 심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대출을 잘 상환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중요한 건 금리가 낮을수록 상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제공하고, 대출자가 돈을 잘 갚으면 그의 신용도가 올라간다. 장기적으로 돈을 더 잘 빌릴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선의를 배신하고 대출을 받은 뒤 흥청망청 쓰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어떤 제도든 이런 악의적인 행위를 100% 막아내긴 어렵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좋은 제도가 도입되면 보호하고 의미 있게 활용하려 한다. 때문에 기본대출은 상당히 성공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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