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토 무용가 양종예 "부토는 무용이자 철학입니다"

장지영 2021. 6. 21.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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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이라쿠다칸 소속.. 24~25일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출연
부토 무용가 양종예. (c)Koshiyama Daiga

“한국에선 부토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부토는 하나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의 부토(舞踏) 컴퍼니 다이라쿠다칸에서 활동하는 무용수 겸 안무가 양종예(본명 양윤선·46)가 한국 무대에 선다. 오는 24~2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리는 ‘제18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자신이 안무한 ‘봄의 제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양종예는 지난 18일 국민일보와 만나 “한국 관객들에게 부토를 보여줄 수 있어서 많이 흥분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본의 표현주의적 전위무용, 부토

부토는 1950년대 말 일본에서 등장한 표현주의적 전위무용이다. 가부키와 노 등 일본 전통공연 장르에서 영향을 받은 표현, 죽음·폭력·성(性)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반사회주의, 그리고 전후 일본 사회에 팽배했던 허무주의가 뒤섞여서 나온 춤이다. 실제 모습은 다양하지만 전형적인 이미지는 왜곡되고 낮게 깔리는 몸, 움직임의 분절화, 몸의 경직과 경련, 흑백을 강조한 회칠 등이 꼽힌다. ‘암흑부토(暗黑舞踏)’로 불리는 초기 부토의 창시자는 히지카타 다쓰미. 그 이후 다양한 개성을 지닌 부토가(부토 무용가)가 속속 등장하게 된다.
양종예는 24~25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리는 ‘제18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자신이 안무한 ‘봄의 제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c)Koshiyama Daiga

그런데, 부토는 처음 등장했을 때 일본 주류 무용계에서 외면당해 카바레 등에서도 공연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1978년 무로부시 코의 파리 공연, 1980년 오노 가즈오의 낭시연극제 공연, 1982년 아비뇽 연극제의 다이라쿠다칸의 공연은 부토를 유럽에 알리며 당시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와 함께 세계 무용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2년 히치카타 다쓰미의 영향을 받은 마로 아카지가 설립한 다이라쿠다칸은 1975년 아마가츠 우시오가 창단한 산카이주쿠와 함께 부토의 양대 컴퍼니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에 부토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마로 아카지는 영화 ‘킬빌’ ‘기쿠지로의 여름’에도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1982년 프랑스 아비뇽연극제에 초청된 다이라쿠다칸의 ‘카인노우마’는 일본의 전통신화와 기독교에 바탕을 둔 서구 문화 사이의 묘한 대조를 통해 관객들에게 지옥 같은 악몽을 보도록 만든다. 이 작품은 2005년 한·일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서울에서 열린 ‘한일 우정의 해 춤 교류전-부토 페스티벌’에 소개되기도 했다. 경성대 무용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인 프로젝트그룹에서 활동하던 양종예는 당시 이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마로 아카지가 이끄는 다이라쿠다칸에 입단하게 됐다.

2005년 다이라쿠다칸 내한공연 계기로 일본행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한국에선 무용계는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등의 구분이 엄격했는데요. 젊은 혈기의 저는 그런 고정관념에 저항감이 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다원예술이나 복합장르의 개념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을 때거든요. 제 안무에 대해 한국춤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듣는 등 무용가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클 때 다이라쿠다칸의 ‘카인노우마’ 공연을 보고 피가 확 끓어 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부토와 다이라쿠다칸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무조건 일본으로 갔습니다.”
지난 2005년 한·일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서울에서 열린 ‘한일 우정의 해 춤 교류전-부토 페스티벌’에 소개된 다이라쿠다칸의 ‘카인노우마’. 다이라쿠다칸-SIDANCE 제공

양종예는 대학 시절 무용이론 수업 시간에 부토를 배우고 1999년 제5회 죽산예술제에 초청된 오노 가즈오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부토에 매료된 것은 2005년 다이라쿠다칸의 ‘카인노우마’를 보면서부터다. 그해 일본에 건너간 그는 마로 아카지의 부토 워크숍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단원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객원 무용수로 몇 차례 출연한 뒤 2009년 그는 외국인으로는 처음 정단원이 됐다.

“제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무용단으로서는 복잡한 비자 문제를 떠안아야 했는데요. 마로 아카지 선생님께서 저의 절실함이나 꾸준함 같은 면을 좋게 보시고 입단을 허락하셨습니다.”

다이라쿠다칸에 입단해 깊숙이 접하게 된 부토는 그동안 그가 생각해 왔던 것과는 또 달랐다. 무엇보다 부토가 무용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 있지만 확장된 예술 장르로서 매우 철학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다이라쿠다칸만 보더라도 시각적으로 화려하지만 하나의 정형화된 스타일을 꼬집어서 말하기 어려운데요. 부토가 눈에 보이는 형태나 테크닉보다 정신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토를 설명할 때 무용수가 자신의 육체를 마주하고 재인식한다는 의미의 ‘나를 지우고 나를 드러낸다’와 무용수 한 명이 각각 하나의 계파를 구성한다는 ‘일인일파(一人一派)’가 많이 사용됩니다.”

다이라쿠다칸을 이끄는 마로 아카지(왼쪽)와 양종예. 양종예 제공
한국 공연에선 ‘봄의 제전’을 솔로춤으로 선보일 예정

실제로 ‘부토는 죽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최근 부토는 초창기 부토의 형태가 사라졌다. 부토를 표방하지만 일반적인 현대무용과 구분하기 어려운 작품도 적지 않다. 양종예는 “부토는 그동안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결국, 부토는 어떤 춤이나 어떤 삶에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부토가 각각의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하다”면서 “나 역시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찾는다는 점에서 부토가 아니라 ‘양종예 부토’를 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종예는 다이라쿠다칸에서 무용수로 작품에 출연하는 한편 2013년부터 안무가로도 종종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첫 작품 ‘여우야 여우야’는 그 자신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마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앨리스가 낯선 세계를 여행하며 성장하는 것처럼 자신이 일본으로 건너와 부토가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이번에 한국에서 선보일 작품은 최신 안무작인 ‘봄의 제전’이다. 1913년 스트라빈스키의 동명 음악으로 니진스키가 처음 선보인 이후 많은 안무가가 도전하고 있는데, 양종예는 부토 버전으로 만들었다. 원래는 여성 무용수 4명이 출연하지만 한국 무대는 솔로 버전으로 고쳤다. 양종예는 온몸에 금분 가루로 금칠을 한 채 특수 제작한 금빛 천 등을 활용할 예정인데, 다이라쿠다칸이 그의 공연을 위해 한국으로 보내줬다.

2013년부터 안무가로도 종종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양종예의 첫 안무작 ‘여우야 여우야’. 양종예 제공

“이번 공연의 특징은 ‘에로티시즘, 그로테스크, 난센스’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원작처럼 봄을 앞두고 연 제사에서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한 소녀의 이야기인데요. 소녀가 정말 죽었는지 아니면 신을 영접한 건지는 관객의 판단에 맡길 예정입니다. 이번에 몸에 칠하는 금분 가루는 보디페인팅 용이 아니라 동(銅)이 많이 섞인 광물 가루라 매우 조심해야 하는데요. 우리 무용단만의 특수한 제조법이 있어서 외부에 유출하지 않는데, 한국 공연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셔서 기쁩니다.”

코로나19 계기로 영상과 댄스필름에 관심

‘봄의 제전’은 코로나19로 다이라쿠다칸이 공연을 못 하게 되면서 나오게 된 작품이다. 다이라쿠다칸이 유튜브 채널을 처음 개설한 뒤 집에 있던 소속 단원들은 자신들의 일상에서 발견한 춤 메소드를 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이를 계기로 영상에 흥미를 가진 양종예는 도쿄도가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영상 공모에 응모해 당선됐다. 나아가 일본 문화청에 댄스 필름 제작 지원을 신청해 뽑혔다. 댄스 필름의 제목이자 그 안에 포함된 작품이 바로 이번에 안무한 ‘봄의 제전’이다. 이 댄스 필름은 또 도쿄다큐멘터리영화제 관계자의 추천으로 중장편 부문에 출품됐다.
양종예가 안무와 연출을 맡은 댄스필름 '봄의 제전'의 한 장면. (c)Koshiyama Daiga

“지난해는 코로나19로 공연을 못 하게 돼 괴로웠지만 영상에 관심을 가지고 댄스필름이란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코로나19 공포에 맞먹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위기 속에 예술가가 성장한다고 하는데, 제겐 코로나 팬데믹 시기가 그랬던 거 같아요. 예술의 가치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결과적으로 저를 성장하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댄스필름은 계속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고 싶은 분야입니다.”

한편 양종예는 일본에서 한국어 성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한국어 안내 방송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그다. 최근엔 일본 방송 NHK 한글강좌에서 ‘양종예의 1분 한글’ 코너를 맡고 있기도 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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