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파트인데..방 문 1개에 1억 갈린 '웃긴 상한제'
같은 단지, 같은 동네에서도
분양가상한제 적용 달라
예외 늘며 기준 더욱 복잡해져
공급 줄고 편법·불법·로또 키워
① 숨은그림찾기.
문제: 위 그림의 왼쪽 A와 오른쪽 B 평면도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 같은 전용면적이다. 서로 다른 부분은?
답: B 침실1에 해당하는 부분의 방문.
이 하나 차이가 크다. 분양가가 10%가량 다르다. 방문이 없는 B가 훨씬 비싸다. 3.3㎡당 A 2900만원, B 3850만원이다. 같은 42㎡(이하 전용면적)가 각각 6억7800만원과 7억6500만원이다. 전매제한 기간이 A 5년, B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약 3년)다.
서울 중구 세운지구에 짓고 있는 단지다. A는 정부의 분양가상한제(이하 상한제) 규제를 받는 아파트다. 상한제는 주변 시세와 상관없이 땅값과 건축비를 합쳐 분양가를 책정해야 한다. 서울에서 대개 시세의 60~70% 수준이다.
B는 상한제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도시형생활주택이다. 300가구 미만, 50㎡ 이하의 원룸형은 이명박 정부 때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상한제에서 제외됐다. 건축 기준상 원룸형은 건축 기준 상 방 두 개를 만들 수 없어서 방문을 달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분양 때 견본주택 안내원이 “입주 후에 동네 인테리어업체에서 문을 달면 된다”고 귀띔했다.
이 단지는 26층 574가구다. 4~15층 281가구가 상한제 아파트로, 16~26층 293가구가 도시형생활주택으로 인허가를 받았다. 당초 전체를 아파트로 추진하다 조금이라도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일부를 도시형생활주택으로 바꿨다.
② 세운지구에서 3km가량 떨어진 종로구 숭인동에서 지난달 분양한 아파트. 분양가가 세운지구 아파트보다 비싸다. 24㎡가 4억4000만원 정도다. 세운지구의 같은 크기는 3억9000만원이다.
옆 동네고 같은 생활권이지만 종로구가 상한제 지역이 아니어서다. 상한제는 택지지구·신도시와 같은 공공택지에선 전면 시행 중이고 공공택지 이외 민간택지(재건축·재개발구역 등 도심 민간 땅)에선 지정 지역에서만 적용되고 있다.
서울 25개 구 424개 동 가운데 18개 구 266개 동이 상한제 지역이다. 강서구 등 5개 구는 일부 동만 해당한다.
③ 최근 가수 아이유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0억 원대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분양가가 3.3㎡당 2억원선이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1위에 오른 인근 청담동 더펜트하우스청담 분양가가 3.3㎡당 최고 1억원선이었다.
강남구 전역이 상한제 지역이지만 두 개 단지 모두 건립 규모가 30가구 미만(각 29가구)이어서 상한제에서 빠졌다. 30가구 이상이 건축허가보다 주택 건설 기준을 강화한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받아야 하고 상한제 대상이다.
④ 분양가 규제가 상한제만 있는 게 아니다. 분양보증 업무를 맡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관리가 있다. HUG는 주변 시세를 기준으로 85~90% 이하로 제한한다. 느슨한 규제다.
고분양가 관리지역은 상한제 지역을 포함해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등 규제지역이다. 서울은 전역이다.
상한제가 1순위, HUG가 2순위다. 서울에서 상한제 지역이 아니면 HUG 규제를 받아야 한다.
상한제에서 제외되는 도시형생활주택과 30가구 미만은 HUG도 분양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분양가 무풍지대인 셈이다. 주택이 아닌 오피스텔도 마찬가지다.
⑥상한제 함수의 변수가 주택 유형, 단지 규모, 지역에 그치지 않는다. 사업방식도 있다.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도입하기로 한 공공재개발, 공공재건축,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등에서다.
공공재개발은 상한제 지역이더라도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HUG 관리는 받아야 한다. 공공재건축은 상한제 지역에선 상한제, 이외에선 HUG 관리 대상이다.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과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상한제 지역은 물론,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상한제다.
정부는 지난해 5·6대책에서 “(공공재개발의) 사업성 보전을 위해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설명했지만 그 이후 추가로 도입하기로 한 공공재건축은 사실상 비슷한 사업인데도 상한제를 적용한다. 정부가 집값 급등 진원지라며 늘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재건축을 차별하고 있다. 공공재개발 외에도 소규모 정비사업 등 상한제 예외 사업장이 늘고 있다. 하나같이 사업성을 높이겠다는 이유다.
앞으로 집값이 안정되면 상한제 지정이 해제될 가능성이 큰데 그러면 상한제 제외 인센티브 매력이 사라진다. 공공재개발 등이 효과를 보려면 상한제를 유지할 만큼 집값이 계속 올라야 하는 셈이다. 정부가 집값 불안이 계속되길 바란다는 말인가.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분양가 규제의 방향성과 일관성을 잃고 정부 스스로 스텝이 꼬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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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분양승인 역대 최저
민간택지 상한제는 현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한 승부수였다.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조정대상지역에 이어 가장 늦게 도입됐다. 대상 지역도 투기과열지구(전국 49곳) 중에서 청약경쟁률 등을 기준으로 정하게 돼 있다. 현재 서울 18개 구와 경기도 과천·하남·광명시 등 21곳(279개 동)이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 분양가가 들썩이자 2017년 HUG가 기존 분양가 범위에서 분양가 상승을 제한했다. HUG 분양가 규제의 모순과 틈새가 드러나자 정부가 직접 나서서 노무현 정부 때 도입해 사문화되다시피 한 민간택지 상한제를 되살렸다. 2019년 11월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은 집값 안정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지난해 상한제 본격 시행 이후 집값은 더 올랐다.
상한제가 주택 공급을 줄일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서울에서 분양승인을 받은 공동주택 물량이 2179가구로 2000년 이후 가장 적다. 분양승인 물량은 공사를 거쳐 2~3년 뒤 준공한다. 주택 수요자의 청약 기회도 확 줄었다. 임대와 조합원 몫 등을 제외한 일반분양 물량이 올해 1482가구로 2013년(774가구) 이후 최저다.
분양물량이 준 데다 착공과 분양 시차가 길어져 수요자는 목이 탄다. 래미안원베일리가 이미 지난해 4월 착공하고도 상한제 적용 여부를 두고 씨름하느라 1년이 지나서야 일반분양을 한다. 일반분양분이 5000가구에 달하는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가 2019년 말 착공 후 1년 반이 지나도록 분양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상한제에선 적극적으로 주택 사업에 나설 유인이 사라진다. 어디든, 언제든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상한제 지역이 아니라고 안심할 수 없다. 직전 2개월간 평균 청약경쟁률이 5대 1만 넘으면 지정 요건을 갖추는데 현재 상한제 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나머지 투기과열지구 거의 다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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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상한제 로또는 현금 부자 잔치
상한제는 ‘로또’ 폐단을 키웠다. 래미안원베일리의 경우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15억원 정도까지 저렴하다. ‘15억 로또’인 셈이다. 전량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청약가점제로 당첨자를 선정한다. 실수요 이외 시세차익을 노린 청약 고점자도 대거 몰려 최고 경쟁률이 1800대 1이 넘었다. 상한제가 ‘과잉 수요’를 낳는 것이다.
로또 당첨을 노린 불법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 14일 발표한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청약 돌풍을 일으킨 경기도 과천시 과천지식정보타운 5개 단지 2849가구 당첨자 중 6%인 176명이 부정청약 혐의를 받고 있다. 7억~8억원의 로또 당첨을 위해 위장 전입 등을 했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해 상반기 청약경쟁이 치열한 전국 21개 단지를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적발된 부정청약이 197건이었다. 부정청약은 3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할 수 있는 범죄다. 로또가 범죄를 부추긴 셈이다.
다른 한편에선 ‘현금 부자’만 분양받을 수 있어 사회적 양극화의 골을 깊게 한다. 분양가가 9억원이 넘어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어 분양가가 17억원인 전용 74㎡의 경우 분양가의 80%인 계약금중도금 14억원의 현금이 필요하다. 현금 부자가 아니면 아무리 청약점수가 높아도 청약 엄두를 내기 어렵다.
“강남 상한제 아파트는 현금 부자들의 잔치다. 현금 부자는 더 큰 '벼락부자'가 되지만 돈이 없어 청약 엄두도 못 내는 사람은 '벼락거지'가 되는 기분이다.”
무주택자인 40대 지인의 푸념이다.
상한제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이 엉킨 실타래가 되면서 사회악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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