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소통카페] 구닥다리 정치와 헤어져야 할 시간

2021. 6. 21.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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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생각의 차이 아닌 혐오와 폭력
공존·경쟁이 민주 공동체 정치
김정기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명예교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으러 간 동네 의원에는 많은 분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앉아 계셨다. 전 세계적으로 심심찮게 보도되는 사고와 사망 뉴스 때문일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사고는 없었다고 안심시켰다. 팽창 두통, 시야 흐림, 심한 복통, 구토, 두드러기, 호흡 곤란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은 대부분 접종 후 15분~30분 안에 발생하니 머물다 귀가하라고 했다. 대기자들은 경계의 침묵 모드로 있다가 간호사의 가셔도 된다는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떠났다. 갈 길은 멀지만 코로나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반가움의 표시일 것이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미증유의 고통을 안겼다. 마스크가 생명의 필수품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스크를 향한 긴 행렬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실감케 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길거리에 방치된 죽음은 처연했고, 치료용 산소와 주검을 소각할 장작이 모자라 울부짖는 인도는 암울했다. 시신을 담을 관이 없어 땅을 파고 집단 매장하는 아수라장의 지구촌. 알지 못할 뿐, 도시와 사람이 통째로 격리되던 중국에서도 몹쓸 비극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참담했다. 초창기의 확진자 중에는 가족의 품으로 못 돌아온 분도 많았다. 노부모 문병은 가로막히고, 비닐막을 사이로 서로 손을 맞대고 노부부는 눈물을 흘렸다. 그것만이 아니다. 상상할 수 없는 가학행위로 어린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무지막지한 폭력의 증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젊은 패륜 부부들의 뉴스에는 눈을 감았다.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기에 약자와 소수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야만의 역사가 떠올라 섬뜩했다.

코로나가 강제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대면 접촉의 제약은 예상할 수 없는 후유증을 낳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만남과 소통을 통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관계의 동물인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공간인 밀실과 타인과 공유하는 공간인 광장을 왕래하며 사는 존재에게(『소통하는 인간, 호모 커뮤니쿠스』, 김정기)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공간의 봉쇄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소통카페 6/21

지난 11일 대한민국 정치 공간에 충격을 주는 큰 사건(?)이 있었다. 보수 정당 ‘국민의힘’의 당 대표에 36세 젊은이가 선출된 것이다. 이 이변이 유난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를 옭아매던 코로나19 같은 구닥다리 관성을 바꾸어 보자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들의 반복되는 독선과 무능, 국회의원들의 불의·부정·권력에 대한 무한 집착, 공감 결여의 타성이 지겨워 이제나저제나 정치가 변해야 한다는 소망이 상존했다.

두고 봐야겠지만 신임 대표는 ‘갖가지 고명이 제각각의 색채, 식감을 뽐내는 비빔밥 정치’를 하고 ‘고명을 한꺼번에 혼합하여 갈아내는 일’은 없을 거라는 멋진 포부를 밝혔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며, 구성원의 생각과 목소리를 하나로 동화시키는 ‘멜팅 파트 방식’과는 결별하고, 각자가 자기 방식으로 맛을 내고 능력을 발휘하여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샐러드 보울 리더십’을 구현하겠다고 했다. 대통령도 새 야당 대표에게 “큰일 하셨다” “나라에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며 축하했다. 여당 대표는 방송 인터뷰에서 ‘할 말을 다하는 새 대표를 환영한다’면서, 청와대에 가서 밥 먹고 사진 찍으며 ‘말 한마디 못하고 온’ 여당 초선의원에게 유감을 표했다.

이제는 국정 파트너인 제1야당에 대해 ‘도둑놈들에게 정권을 맡길 수 없다’고 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1등을 다투는 유력 대선주자를 향해 ‘민주주의를 악마에게 맡기는 것’이라는 저주의 말을 퍼붓는 전임 여당 대표들의 언행과는 결별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정치에는 단호하게 ‘노’라고 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상대를 몰아붙이고, 다수결 독재의 일방통행으로 공존의 정치를 훼손하는 구태 정치는 수명이 다했음을 알게 해야 한다. 상대 그 자체, 공존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생각의 차이가 아니고 혐오이며 폭력이다. 합리적인 말을 통해 다른 생각들이 공존하며 경쟁하는 것이 민주적 공동체의 정치이다.

김정기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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