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시진핑과 '중국의 전랑화'

유상철 2021. 6. 2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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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리면 맹공 퍼붓는 전랑외교 이어
서구 조롱 그림 그리는 전랑화가 등장
중국 자극할 전랑음악과 전랑문학 등
중국사회 전체 전랑화로 이어질까 우려

중국에 전랑외교(戰狼外交)가 등장한 건 2019년 말이다. 중국을 건드리면 가차 없이 달려들어 맹공을 퍼붓는다. 외교관 특유의 은유는 사라지고 독설이 난무한다. 이에 “중국 외교가 죽어가고 있다”는 비난이 나왔다. 그러나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최근엔 전랑외교를 넘어 전랑화가(戰狼畵家)가 뜨고 있다. 우허치린(烏合麒麟)이란 이름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활약하는 이가 대표적 인물이다.

중국의 전랑화가 우허치린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평화의 군대’. 호주 군인이 어린 양을 안은 아프간 소년의 목에 피 묻은 칼을 겨누고 있다. [웨이보 캡처]

그의 그림은 싸움꾼 화가의 작품답게 피가 튄다. 섬뜩하다. 지난해 11월 그린 ‘평화의 군대(和平之師)’가 한 예다. 어린 양을 안은 소년의 목에 피 묻은 칼이 겨눠져 있다. 칼을 쥔 이는 아프간에 파견된 호주 군인이다. 호주 군대가 아프간에서 벌인 만행을 고발한다는 게 주제다. 배경엔 미국을 따르며 중국과 각을 세우는 호주를 비난하기 위한 의도가 깔렸다.

지난 5월 영국에서 열린 G7외무장관 회의에서 포즈를 취한 G7 외무장관들의 모습. [웨이보 캡처]

이 그림을 중국 외교의 싸움닭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이 퍼 나르며 화제가 됐다. 우허치린은 5월 초 G7 외무장관 회의를 풍자한 시사만화로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기념사진 촬영에 나선 G7 외무장관을 1900년 의화단(義和團) 사건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중국을 침공한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8개국 연합군에 빗대 비난했다.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끌자 추종자가 나왔다.

지난 5월의 G7 외무장관 기념사진 모습을 1900년 의화단 사건 진압을 구실로 중국을 침공한 영국,미국,독일, 프랑스 등 8개국 연합군에 빗대어 그린 우허치린의 풍자 그림. [웨이보 캡처]

반퉁라오아탕(半桶老阿湯)이란 중국 그래픽 아티스트다. 그는 최근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조롱하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 한 ‘최후의 G7’을 그렸다. 시바견(犬)으로 묘사된 일본이 핵폐기물 통에 들어있는 차를 각국 정상에 따라준다. G7의 최후를 예고한 것이다. G7이 신장 인권과 홍콩 자치권, 대만해협 평화를 거론하며 중국을 압박한 데 대한 반발이다.

최근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조롱하기 위해 중국의 그래픽 아티스트 반통라오아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 해 ‘최후의 G7’을 그렸다. G7 정상은 각각 자국 국기를 모자로 쓰고 있다. [웨이보 캡처]

전랑화가 등장 이후 중국엔 또 뭐가 나타날까. 청각적 애국주의를 강조할 전랑음악, 중국의 정서를 자극할 전랑문학 등 중국 각 분야의 전랑화(戰狼化)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 말 ‘대외 선전(外宣)’에서의 겸손을 강조한 뒤 전랑외교의 기조가 바뀌는 게 아닌가 하는 미 언론의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9일 칭하이(靑海)성 시찰에 나섰다.사진은 8일 오후 칭하이성 하이베이(海北)티베트족자치주를 찾은 시 주석의 모습. [중국 신화망 캡처]

전랑외교가 왜 나왔나. 시 주석이 공격적 외교를 강조해서가 아닌가. 그렇게 함으로써 시 주석의 국내 인기는 올라간다. 장기 집권에도 유리하다. 특히 내년 가을 제 3의 임기 5년을 시작해야 하는 시진핑 입장에선 중국의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애국주의 노선에서 한 발도 후퇴할 수 없다. 중국의 전랑화는 대륙 민심을 잡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만큼 세상 인심에선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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