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기와 '신라의 미소'가 경주박물관에 오기까지
[임영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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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 제2010호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지름이 11.5cm이지만 온전한 형태라면 14cm의 크기다 |
| ⓒ 국립경주박물관 |
해마다 약 천만명 정도의 관람객들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데 이중의 약 70~80%는 이 여인을 보기 위해 온다고 한다. 16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세기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렌체에 살던 한 여인을 그린 초상화, <모나리자(Monna Lis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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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브르 박물관의 슈퍼스타 <모나리자>. 루브르에 ‘모나리자의 미소’가 있다면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신라의 미소’가 있다 |
| ⓒ Louvre |
이 도난 사건은 프랑스가 이탈리아의 국보를 약탈해 간 줄로 안 범인이 "이탈리아의 국보는 이탈리아에 있어야 한다"라며 훔쳐간 것으로 전모가 밝혀졌다. 2년 4개월 만에 이탈리아에서 다시 루브르로 돌아오게 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겪으며 모나리자는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나라 경주 국립박물관에도 알 듯 모를 듯한 '모나리자의 미소'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미소와 사연을 간직한 보물이 하나 있다.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3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신라의 미소'라는 별칭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얼굴무늬 수막새'다.
귀신도 돌아서게 만든 신라의 명품 수제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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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무늬 수막새에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온화한 여성의 미소로 사악함을 물리치려 했던 신라인들의 따스한 마음과 지혜가 담겨 있다 |
| ⓒ 국립경주박물관 |
수막새 일부가 깨져 현재 크기는 지름이 11.5cm로 한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의 아담 사이즈다. 온전한 형태였다면 14cm의 크기로 추정된다. 두께는 2cm다. 완전체가 아니라도 미소가 아름다운 이 여인의 정체는 현재도 한옥 지붕공사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기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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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무늬 수막새 뒷면. 수막새 뒷부분에 반원통형의 수키와가 붙어 있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
| ⓒ 국립경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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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막새는 기와지붕의 처마를 마감하는 기와다. 암키와로 마감하는 것을 암막새, 수키와로 마감하는 것을 ‘수막새’라 한다. 현재도 한옥 기와지붕에 사용되고 있다 |
| ⓒ 임영열 |
비록 턱은 떨어져 나가고 없지만 만면에 소박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신라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수막새는 여느 기와처럼 틀로 찍어내 대량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도자기를 빚듯 하나하나 숙련된 와공의 손으로 정성스럽게 빚어낸 다음 가마에서 구워낸 명품 수제 기와라서 더욱 정감이 가고 생명력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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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무늬 수막새가 발견된 경주 영묘사 터. 국가사적 제15호 |
| ⓒ 문화재청 |
그렇다면 1400여 년 전 신라의 옛 절집 지붕 처마에 매달려 소박하게 웃고 있던 여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옛사람들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기와에 재앙을 피하고 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통상적으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로 무서운 형상의 도깨비나 험상궂은 동물 문양의 기와로 처마를 장식했다.
한편으로는 사악함을 무서움으로 내쫓기보다는 유화책을 생각한 신라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웃고 있는 여인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웠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얼굴무늬 수막새에는 온화한 여성의 미소로 사악함을 물리치려 했던 신라인들의 따스한 마음과 지혜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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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귀면와 |
| ⓒ 국립경주박물관 |
한국의 보물은 한국에 있어야 한다
명품이란 탄생할 때부터 명품이지만 여기에 이야기가 더해지면 작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루브르의 명품 <모나리자>처럼 말이다. 1930년 초 일제 강점기 시절. 영묘사 터에서 발견된 얼굴무늬 수막새는 경주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던 구리하라(栗原) 골동품상으로 넘어갔다.
이때 골동상 근처에 있던 야마구치(山口)병원의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 1905~1993)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갔다. 그는 1933년 한국으로 건너와 군의관으로 일하며 경주에서 출토되는 골동품을 수집하고 있었다. 28살의 젊은 의사는 곧바로 이 수막새를 구입했다. 깨진 기와 조각 한 점을 100원에 샀다. 당시 기와집 한 채 값이 1,000원이었다.
그 후 1940년 다나카는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이 수막새도 가져갔다. 수막새는 경주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24년이 흐른 1964년 이 수막새를 기억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당시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의 박일훈(朴日薰 1913~1975) 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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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신라시대 사용된 귀면와와 얼굴무늬 수막새.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로 사용된 기와다 |
| ⓒ 국립경주박물관 |
1972년 일본을 방문한 박 관장은 다나카를 만나 거듭 부탁했다. 두 사람의 간절함에 마음을 움직인 다나카는 그해 10월 직접 경주박물관으로 찾아와 "마음속에 감명을 주는 인면와(人面瓦)를 제작한 와공을 생각하며 신라 땅에 안식처를 제공하고자 경주박물관에 기증합니다"라는 기증서와 함께 수막새를 기증했다.
글로벌 기업의 얼굴 되어 '세계의 미소'로 재탄생
32년 만에 고향땅으로 돌아온 신라의 미소는 모나리자가 루브르의 상징이 되었듯이 경주의 상징이 되었다. 거리의 담장에도, 식당 간판에서도, 빵집의 봉투에도, 경주 어디를 가더라도 신라의 미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경주뿐만 아니다. 경주를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미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1995년 생활용품을 만들던 '럭키'와 전자제품을 만들던 '금성'이 합병하여 글로벌 기업 LG그룹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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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기업 LG 그룹의 심벌마크로 재탄생한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의 미소’를 넘어 ‘세계의 미소’로 거듭나고 있다 |
| ⓒ 국립경주박물관. 임영열 |
암울했던 시절에 일본으로 팔려갔다 3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신라의 미소'는 글로벌 기업의 얼굴이 되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방방곡곡 어느 곳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세계의 미소'가 되었다.
1400여 년 전 신라 땅 옛 절터에서 태어난 수막새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2018년 대한민국 보물 제2010호로 지정되었다. 이는 기와가 단독으로 보물로 지정되는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세상 곳곳에서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대립과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하 수상한 시절이다. 먼 옛날 전염병이나 사악한 귀신마저도 '온화한 미소'로 이겨내려 했던 신라 사람들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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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잡지 <대동문화>125호(2021년 7, 8월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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