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굶지 말고 얼릉 와~ 밥도 파마도 다 공짜야!"

노유림·이주연 2021. 6. 20. 10: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한 자영업자 마음 모인 '선한 영향력 가게'
식사, 안경, 파마 등 무료되는 2400여개 가게들
부담·정보부족 등 이유로 방문자 적어
마포구에 위치한 한 선한 영향력 가게. 해당 가게 사장은 급식카드를 소지한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는다며 "가게를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솔직히 알릴 수 있는 방법도 적다"고 말했다.


2019년 ‘진짜 파스타’ 대표 오인태씨는 ‘결식아동에게 부담 없이 밥 한 끼 대접하겠다’는 마음으로 파스타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대상은 ‘급식카드’를 소지한 아동. 이후 그의 뜻에 동참하는 자영업자들이 하나둘 합류했다. 학원, 미용실 등 ‘종목’도 다양하게 확대되며 모두 2400여개 업체가 ‘선한 영향력 가게’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그런데 아름다운 뜻대로 이 가게를 찾아 이용하는 이들은 적었다.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아요.” ‘선한 영향력 가게’ 주인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워했다.

왜일까. 실제 만나본 아이들은 이 가게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찾아가 봤다. 선한 영향력 가게는 어떤 곳이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많이 안 알려져…학생들 입장에선 부담되겠죠.”
선한 영향력 가게로 동행하는 가게는 약 2400여개에 달한다. 해당 사진은 서울-수도권 지역의 선한 영향력 가게를 보여주는 지도. 선한영향력가게 홈페이지 캡처

지난 1일 선한 영향력 가게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서울 마포구 미용실을 찾았다. 1호인 ‘진짜 파스타’ 영향으로 선한 영향력 가게는 마포구 일대에 특히 많은 편이다. 이 미용실의 A점장은 동행을 시작한 지 세 달 차라고 했다. 급식카드를 보여주면 단순 커트 외에도 모든 헤어시술을 무료로 제공한다.

그런데 정작 급식카드를 가지고 찾은 손님은 지금까지 세 번 정도에 불과하다. A점장은 그나마도 “학생들끼리만 온 적은 없다”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홍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포구에 위치한 한 선한 영향력 가게. 이 미용실은 급식카드를 소지한 아동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헤어시술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로 아직까지 방문한 건 세 명 정도였다.


미용실을 나와 다른 가게도 찾아봤다. ‘스마트 서울맵’과 선한 영향력 가게 자체 홈페이지 등으로 가게 위치를 미리 확인했지만 단순히 지도에 표시만 된 정도라 길을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 가게는 표시된 위치에서도 찾을 수 없어 직접 전화해봐야 했다. 20분 만에 겨우 찾아가고 보니 ‘배달 영업한다’는 안내에 돌아서야 했다. 이 내용은 홈페이지에 명시돼 있지 않았다. 선한 뜻으로 참여한 자영업자 개개인이 전부 전담해 홍보나 정보수정 등까지 감당하기엔 버겁다는 점이 확인되는 지점이었다.

마포구에 위치한 한 선한 영향력 가게. 기자들이 직접 구매한 이 빵들은 급식카드를 소지한 아동이라면 무료로 받을 수 있다. 해당 빵집 점장은 "급식카드를 소지했는지만 확인하고 매장 내 빵이나 음료를 무료로 사갈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선한 영향력 가게는 동행 시작 다섯 달째인 한식당이었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B사장은 어린 시절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선한 영향력 가게에 동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카드를 소지한 어린이들이 많이 오는지 묻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B사장은 “좋은 의도로 급식 카드를 확인하고 식사를 무상 제공하지만, 아이들은 급식 카드를 보여줘야 한다는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선한 영향력 가게라는 점을)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이 적고, 선한 영향력 가게라고 쓰여 있어도 많이 안 알려졌다 보니 ‘원래는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가게가 아닌데 특혜를 받았다’라는 생각이 들어 불편해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포구에 위치한 한 선한 영향력 가게. 이 안경점은 '선한 영향력 가게'임을 알아보고 들어올 수 있도록 가게 바깥에 안내판이 붙어있다.


1년반 정도 선한 영향력 가게로 동행해온 안경점 D사장은 아동들이 부모님과 함께 종종 방문한다고 전했다. 그 역시 “급식카드 외에 다른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있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복지센터와 보육원 아동 등은 평일 중 식사가 제공되기 때문에 급식카드를 발급받지 못하지만,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급식카드로 혼밥? 부끄러워…”
국민일보DB

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인 아이들의 눈에 선한 영향력 가게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11일에는 서울 동작구에 있는 초등학교 근처에서 20여명의 아동과 청소년을 직접 만났다.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 가게에 대해 아는지” 혹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물었지만, 대부분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나마 아는 아이들도 “가게를 굳이 찾아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여기엔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다. 홀로 식당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선한 영향력 가게뿐만 아니라 일반 식당조차도 꺼려진다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혼밥’(혼자 밥 먹기)을 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편의점에서 먹어봤다”는 외의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한 아동은 “차라리 그냥 집에서 계란프라이를 해 밥 먹는 게 편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급식카드 소지자인 초등학교 6학년 최군은 “혼자 밥 먹으러 가는 건 부끄럽다”고 밝혔다.

급식카드 대상자 자녀를 둔 학부모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최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선한 영향력 가게를 방문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이가) 혼자 가게에 가는 건 쑥스러워서 힘들 것 같다”며 “어른들도 가게에서 혼자 식사하는 건 어려워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급식카드 소지자인 초등학교 6학년 최군. 최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스스로 급식카드를 들고 선한 영향력가게를 찾아가는 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김모씨는 “(선한 영향력 가게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것 아니냐. 그러다 보니 (선한 영향력 가게) 스티커가 붙어있어도 아이 혼자는 물론 부모랑 같이 들어가는 것조차 때론 망설여진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급식카드를 보여준다는 자체로도 아이들은 창피해한다”면서 “선한 영향력 가게를 알고 있어도 이용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급식카드를 갖고 선한 영향력 가게에 방문해 본 중학교 3학년 박군은 선한 영향력 가게를 아느냐는 질문에 “저기 초등학교 앞 꽈배기 집이 그렇다”며 “예전에 (급식카드를) 챙겨 간 적이 있었는데 떡볶이를 공짜로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군조차도 미리 정보가 있어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계산하기 위해 급식카드를 내밀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거의 안 갔다. 굳이 들르기도 좀 그렇고”라며 말을 흐렸다.

“급식카드 대신 학생층 내 IC칩 기능 등 부끄러움 덜 방법 나왔으면”
선한 영향력 가게를 처음 만든 오인태 대표. 오인태 대표 인스타그램 캡쳐

선한 영향력 가게 1호점인 ‘진짜 파스타’ 오인태 대표는 현재 ‘급식 카드’로 확인하는 것과 관련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급식카드 자체가 낙인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대표는 “현재 지자체별 급식카드의 명칭과 디자인이 다르다”며 “일부 지역은 급식카드가 없기도 하고, 일반 카드와 디자인이 너무 차이나기도 한다”고 짚었다. 이어 “지자체 말고 국가사업으로 전환해 디자인과 명칭을 통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그는 “학생층 내 IC칩 기능 등을 활용해 확인할 수 있는 식으로 바뀌면 낙인도 줄어들고 아이들이 좀 더 부담을 덜 것 같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국민일보DB

굿네이버스 고기증 아동권리사업팀장도 “급식카드로만 결식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아이들의 관점이 아닌 지극히 공급자적인 시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간 자영업자들의 선의에만 기대지 말고 정부와 지자체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학교-놀이터-집’과 같이 정해진 반경에서만 생활하는 ‘생활영역’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식당을 찾아가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 팀장은 “소상공인의 훈훈한 인정에만 호소하지 말고, 지역아동센터 등의 돌봄 기능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유림·이주연 인턴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