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비닐랩으로 싸맸지? 여의도 왕벚나무 '100년 만의 첫경험'

최은경 2021. 6.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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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옆 여의서로 왕벚나무가 비닐 랩으로 싸여 있다. 나무에 해충 방제 중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다. 최은경 기자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 여의서로. 봄이면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이곳 왕벚나무 수백 그루의 몸통이 모두 비닐 랩으로 싸여 있었다. 겨울철 동해(凍害)를 막기 위해 볏짚이나 뜨개질 옷을 입은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무 옆을 지나던 시민은 비닐을 쳐다보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나무를 일일이 랩으로 싸놓은 이유가 뭘까.

서울 영등포구에 따르면 병충해를 막기 위해서다. 특히 벚나무사향하늘소라는 벌레 때문이다. 벚나무사향하늘소 성충의 몸길이는 30~38㎜ 정도로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며, 앞가슴의 뒤쪽 등판 부분은 주황색이다. 벚나무를 포함한 장미과 수목, 참나무류, 중국굴피나무, 사시나무 등에 피해를 준다고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왕벚나무의 피해가 크다. 피해 시기는 성충이 활동하고 알을 낳는 7~8월이라 그 전에 방제작업을 해야 한다.

벚나무사향하늘소 성충. [사진 산림청]


벚나무사향하늘소는 나무줄기나 가지의 껍질 틈에 1.5㎜ 길이의 알을 낳는데 10일 정도 지나 유충이 부화하면 나무껍질 아래쪽(형성층)에 해를 끼친다. 시간이 지나 더 안쪽으로 파고들면 물과 양분 통로인 목질부를 갉아먹으며 수세(나무가 자라나는 기세나 상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유충이 활동하면서 많은 목설(나무에서 나오는 가루)을 배출해 피해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유충 한 마리가 40~160㎠ 정도 면적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영등포구는 6월 초 3일에 걸쳐 여의서로 왕벚나무 약 345그루를 비닐 랩으로 싸고 저독성 방제 약제를 랩 안에 주입했다. 구 관계자는 “현재 유충이 나무 안에 있는 상태”라며 “랩은 약이 나무에 잘 들어가 유충과 자라난 성충을 죽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약제가 제 효과를 낼 수 있게 나무에 오래 남도록 비닐로 감쌌다는 얘기다.


벚나무사향하늘소 피해 막기 위한 것

벚나무사향하늘소 유충 피해로 죽은 가지 모습. [사진 산림청]


영등포구가 이런 방식의 방제사업을 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서강나무병원과 국립산림과학원에 자문해 지난해 일부 나무에 실험한 결과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여의서로 왕벚나무는 길게는 100년의 수령이어서 자가방어 능력이 낮은 것도 대규모 방제사업을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벚나무사향하늘소에 관한 연구는 2019년 국립산림과학원이 경기도 고양시 등지에서 이 병해충으로 죽은 나무를 다수 발견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울 여의도, 경기 고양·여주, 충남 부여, 경북 안동, 경남 함안 등지에서 벚나무사향하늘소가 나오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옆 여의서로 왕벚나무들 줄기가 비닐 랩으로 싸여 있다. 최은경 기자


정종국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는 “나무에 구멍을 뚫는 천공성 해충은 나무껍질을 뜯어내고 잡을 수 없어 그나마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며 “보기에 썩 좋진 않지만 랩을 오래 두는 게 아니라면 나무가 썩거나 하는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강원도 영월, 대전시 등도 비슷한 방법의 방제작업을 한 적 있다.

영등포구는 나무마다 보행로 쪽에 천공성 병해충 방지 중이라는 작은 표찰을 붙이고 국회 주변에 방제사업 안내 현수막을 내걸었다. 비닐 랩은 7월 초쯤 풀 계획이다. 지자체의 안내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시민단체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의 최진우 대표는 “왜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것인지, 나무의 공기 순환에는 문제가 없는지 등 구체적 내용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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