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로 인간이 부른 재앙.. 미국 서부발 대가뭄

전웅빈 2021. 6. 19.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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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궈진 대기, 토양·식물 수분 뺏어
농업·수력발전 타격에 잦은 산불
미국 '열돔' 중동·유럽까지 영향
바짝 마른 미 서부 콜로라도강 모습. 과학자들은 미 남서부가 1200년 만의 대가뭄 시대에 진입했다고 전망했다. 남서부 지역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초대형 열돔 현상으로 40도를 훨씬 웃도는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저는 이미 긴 샤워를 삼가고, 물이 새는 수도를 고치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나 부족합니다. 신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신앙을 가진 모든 유타인들이 기도에 동참해 줄 것을 부탁드리는 이유입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스펜서 콕스 미국 유타주 지사가 트위터를 통해 남긴 호소는 아직 응답받지 못했다. 각 종교단체 지도자들이 합심해 비를 내려 달라는 기도를 드렸는데, 극심한 가뭄을 해소할 비는 여태 내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산불 등 화재가 잦아졌고, 기상청은 당분간 고온·건조한 날씨가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만 내놓고 있다.

콕스 주지사는 지난 11일 가뭄 행동 지침을 ‘극한 가뭄’ 상태로 상향하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잔디에 물을 주는 건 이제 ‘말라 죽지 않을 정도’의 소량만 가능하다. 이른바 ‘생존 급수’다. 유타주에 가뭄 비상사태 선포는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대가뭄의 시대

미국 서부가 ‘대가뭄의 시대’에 진입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대가뭄은 20년 이상 지속하는 장기 가뭄을 뜻한다. ‘미국의 정원’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는 2000년 이후 13년 동안 심각한 가뭄 상태를 경험했다. 21세기 전환 후 60%가 극심한 가뭄 상태라는 의미다.

캘리포니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리건,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 뉴멕시코 등 미국 서부의 96%가 가뭄 상태를 겪고 있다. 사이언스저널 연구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남서부는 적어도 지난 1200년 동안 두 번째로 건조한 기간이었다. 미국 가뭄 모니터에 따르면 거의 전체 주가 현재 ‘심각한 가뭄’ 범주에 속한다. 6단계 중 네 번째다. 4분의 3은 최고 단계인 ‘극단적 가뭄’(5단계) ‘예외적 가뭄’(6단계)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가뭄은 비정기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재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최근 미국의 대가뭄이 인간으로 인한 기후변화로 극렬해졌다고 보고 있다.


컬럼비아대와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우주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올봄 “미국 서부에서 역사상 기록적인 대가뭄이 2000년에 이미 시작했다”며 “가뭄은 자연현상이지만 기온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는 기후변화가 가뭄을 더욱 가속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인간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2000~2018년 남서부 가뭄을 자연적 현상보다 46% 강력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결국 지금의 대가뭄이 지구 온난화의 결과물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대체적인 결론이다.

온난화로 달궈진 대기는 식물과 토양으로부터 더 많은 수분을 빨아들인다. 그로 인해 건조해진 토양이 다시 수분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이 때문에 수분이 강이나 개울로 흘러 들어가지 못해 사용할 물이 줄어드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콜로라도강 물 감소의 약 절반은 대기의 더운 기온 때문이었다.

1930년 콜로라도강에 후버댐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미국 최대 인공 저수지 미드호는 수위가 이달 초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콜로라도강은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네바다, 뉴멕시코, 유타, 와이오밍주 주민 4000만명의 수원이다.

댐 수위가 낮아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 이후 42.7m가 낮아졌다. 네바다는 라스베이거스 지역 잔디밭의 약 3분의 1에 물주기를 금지했다.

가뭄이 바꾼 풍경

가뭄은 미국인의 삶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전 세계 아몬드의 80%를 재배하고 있는데, 올해는 농부들이 물 부족으로 값비싼 경작 나무를 뜯어내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외신들은 물 부족 사태가 500억 달러 규모의 캘리포니아 농업 산업을 축소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온난화로 인해 캘리포니아 지역의 수원(水源)인 시에라네바다 산맥 스노팩(눈덩이로 뒤덮인 들판)은 최근 두께를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녹아내렸다. 그로 인해 캘리포니아에는 6월 초 예상했던 것보다 수위가 50% 더 낮은 저수지가 500개가 넘는다고 데이비스 대학 연구진이 최근 전했다.

미국의 제4차 국가 기후 평가 보고서는 “미드호 수위 감소는 남서부 지역 물 부족 위험을 증가시키고 후버댐 수력발전소 에너지 생성을 감소시킨다”고 분석했다. 지표수 부족은 연어 등 캘리포니아 지역 강에서 서식하는 어종마저 위협하고 있다. 물이 급한 농부들이 지하수 대수층에서 더 많은 물을 퍼 올리면서 토지 침하 우려도 키우고 있다.

건조한 환경은 산불 위험도 증가시키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이미 지난해보다 산불 활동이 26% 증가하고, 연소 면적이 5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관들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지난 산불 시즌 동안 캘리포니아에서만 거의 1만건의 화재가 발생해 420만 에이커(170만㏊)를 태웠는데 이는 쿠웨이트와 거의 같은 면적이다. 전미 전국합동화재센터(NIFC)는 올해 들어 지난 11일까지 2만6800여건의 산불이 발생해 3373㎢가 넘는 면적이 불탔고 밝혔다.

전 세계가 시름

미국 남서부 지역은 열돔(heat dome·고기압에서 내려오는 뜨거운 공기가 돔에 갇힌 듯 지면을 둘러싼 모양) 현상으로 폭염까지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열돔은 중동 지역도 집어삼켰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 6일 최고기온이 51.8도까지 치솟았다. 이란, 쿠웨이트, 오만 등 다른 지역도 50도를 웃도는 폭염이 벌써 시작됐다. 유럽은 올봄 극한의 가뭄으로 고통을 받았다. 유럽의 가뭄은 지난 2000년 동안 최악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유역과학센터 제이 룬드 소장(데이비드대 교수)은 “가뭄이 지역 사회와 산업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학자인 빌 팻저르트는 “올여름 이른 폭염과 더 빈번한 불볕더위가 이미 심각한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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