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거부하던 소녀에서 환경운동가로, 그녀의 1년

장혜령 2021. 6. 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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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그레타 툰베리>

[장혜령 기자]

 
 영화 <그레타 툰베리>포스터
ⓒ 영화사 진진
 
며칠 전 선물로 받은 지리산 공기 캔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누가 물을 용기에 담아 파냐고 했던 게 이제는 당연해진 것이다. 몇 년이 지나면 캔에 담긴 공기를 사야 할지도 모른다. 나와 먼 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내 일이 되고 있었다. 이제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기후변화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도 친환경, 아니 필(必) 환경 생활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일회용품을 줄이기로 다짐한 지 몇 년째 장바구니와 텀블러는 삶의 일부가 되었고 배달음식은 단 한 번도 시켜 먹지 않았다. 외출할 때마다 짐은 늘어나고 부주의로 담긴 내용물이 흘러나와 난감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외부 음식을 포장해야 한다면 미리 포장 용기를 준비해 다녔다. 누구는 유난 떤다고 비아냥거렸고, 누구는 너 하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냐고 말했다.

일 년 전 그레타 툰베리를 여러 지면과 영상에서 확인했을 때 '아이 같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그 사람의 일부분만 보고 전체를 확대해석한 건 아닐까 부끄러웠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금요일의 아이 '그레타 툰베리'
  
 영화 <그레타 툰베리> 스틸컷
ⓒ 영화사 진진
 
2003년생 그레타 툰베리는 금요일마다 학교를 가지 않고 스웨덴 의외 앞에서 '기후 학교 파업'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지나가는 어른들은 "학교가야 할 시간이지 않냐"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학교에는 시간이 있지만 지구에는 시간이 없어요"라는 말로 응수했다. 그녀는 어른들은 4년 전에도, 8년 전에도 표를 얻기 위해 기후·환경문제를 이용할 뿐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일침을 놓았다. 

영화는 2018년 8월, 등교거부를 벌이며 학교 대신 거리로 나온 15세 소녀의 성난 외침을 시작으로 2019년 9월 유엔본부 기후행동 정상 회의에 참석하기까지 1년여의 기록을 담았다. 그해 스웨덴은 기상관측 262년 만에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되었으며, 스웨덴 선거에서 기후 위기를 핵심 의제로 올릴 것을 요구한 시위는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켜 700만 명 이상이 동참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파업 시위로 이어졌다.

그레타는 여덟 살 때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라는 말을 듣고 독학으로 환경 문제를 공부하던 중 열한 살에 아스퍼거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그 밖에도 고기능 자폐 장애, 우울증, 거식증, 강박 장애, 선택적 함구증으로 고통받으며 1년간 집에 머물게 된다. 이후 가족하고만 소통하던 소녀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꾸밈없는 솔직한 외침을 이어간 선한 영향력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10대 평범한 청소년이 어쩌다 전 세계인을 쥐고 흔드는 환경운동가가 되었을까. 영화에는 그녀의 일 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침없는 행동과 언변, 단호해 보이지만 어딘지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과 무뚝뚝한 성격만 보고 일각에서는 좋지 않은 목소리도 있는 게 사실이다. 왜 이렇게 화가 난 것인지 궁금해졌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사실 그레타는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기 때문에 표정이 늘 좋지 않았다. 게다가 한 가지에 꽂히면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독단적으로 보였고, 날로 심각해져 가는 환경문제에 웃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누가 이 소녀의 웃음을 앗아갔나
  
 영화 <그레타 툰베리> 스틸컷
ⓒ 영화사 진진
 
그레타는 전 세계적인 지지와 옹호를 얻기도 하지만 선진국인 스웨덴 출신이기 때문에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에서는 달갑지 않는 시선을 보낸다. 최근 트럼프까지 가세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졌지만, 그레타는 악플까지도 조용히 읽어나가면서 동요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를 보인다.

어른들은 그런 그레타를 보며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해 기후학자가 되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지금 당장 지구가 고장 났는데 미래의 기후학자가 된들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일침을 가한다. 2015년부터 탄소 배출이 많은 비행기를 타지 않는 탓에 수많은 곳에서 수상 소식이 와도 전혀 달갑지 않은 그녀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상을 받으러 갈 수 없으니 명단에서 빼달라는 요구도 서슴없다.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던 소녀는 급기야 2019년 미국 뉴욕 본부에서 진행된 기후행동 정상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태양열로만 구동되는 친환경 요트를 탄다. 그리고 꼬박 15일이 걸려 대서양을 횡단하는 기염을 토한다. 
  
 영화 <그레타 툰베리>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나비의 날갯짓에 비견되어 지구 반대편에서 허리케인으로 커졌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점점 심각해지고 길어지는 폭염과 장마, 연이은 미세먼지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걱정은 그때 뿐 쉽게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른들이 바뀌지 않기에 그레타는 오늘도 세상 밖으로 나가 외친다. 한창 공부하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미래를 꿈꿔야 할 나이에 세상 밖으로 나와 고난의 길을 걷는다.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외롭지 않다. 전 세계의 든든한 친구들이 함께 하고 있음을 그녀도 이젠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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